이재만 행세로 1년간 대우건설 부장…靑사칭범죄 보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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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1957년 8월 경주 경찰서에 한 청년이 찾아와 서장에게 자신이 이승만 전 대통령 양아들 이강석이라며 “경주 지방 수행상황을 살피러 왔다”고 말했다. 자식이 없던 이 전 대통령은 같은해 3월 이기붕 전 총리의 아들인 이강석을 양자로 들였던 참이었다. 경주서장은 이 청년을 극진히 접대했다. 그러나 이강석의 실제 얼굴을 아는 경북지사에 의해 사흘만에 사기라는 게 들통나 이 청년은 경찰에 체포됐다.

역대 정부마다 반복되는 청와대 사칭범죄 #양아들ㆍ양엄마 사칭부터 셀프 취업 사기까지

#2. 2014년 10월 자신을 박근혜 전 대통령의 양엄마로 사칭한 70대 여성이 사기혐의로 구속 기소됐다. ‘박근혜 대통령 상임특보’라고 적힌 명함을 가지고 다니며 해결사 행세를 하는 이 여성에게 사람들이 속아 넘어가 수억원의 피해가 발생했다. 이 여성은 자신의 생일날에 대통령 축하 화분을 직접 만들어 본인 사무실에 전시하기도 했다.

김의겸 청와대 대변인이 22일 오후 청와대 춘추관에서 대통령과 그 친인척, 청와대 재직 인사를 사칭한 범죄 사례와 관련한 대통령 지시사항을 발표하고 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김의겸 청와대 대변인이 22일 오후 청와대 춘추관에서 대통령과 그 친인척, 청와대 재직 인사를 사칭한 범죄 사례와 관련한 대통령 지시사항을 발표하고 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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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와대는 22일 대통령과 친인척, 청와대 고위 인사를 사칭하여 돈을 가로채는 범죄가 잇따르자 피해를 막기 위해 문재인 대통령 지시로 해당 사례를 공개했다. 위 사례들을 보면 대통령이나 청와대 고위인사 측근을 사칭하는 범죄는 60여 년 넘게 역대 정부에서 매년 반복돼 온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청와대가 이번에 공개한 사례 가운데서도 문 대통령 측근을 사칭한 사례가 포함돼 있다. 문 대통령 명의로 ‘도와주라’는 취지의 가짜 문자메시지를 보내 지방 유력자 다수에게서 수억 원을 가로챈 사건이다. 청와대는 이 사건에 대해 현재 수사가 진행중이라고 밝혔다.

 해당 정부 실세의 측근을 사칭하는 범죄도 잦다. 이명박 정부 시절엔 대통령 친형인 이상득 전 의원의 측근을 빙자한 범죄가 많았다. 2008년 경찰은 이상득 전 의원을 사칭해 국회의원 10여 명에게 “국감 중이라 통화는 힘들고 급전이 필요하니 300만 원만 보내달라”는 문자메시지를 계좌번호와 함께 발송한 혐의로 10대 가출 청소년 2명을 입건했다. 실제 돈을 송금한 의원은 없는 것으로 파악됐다.

 2013년 박근혜 정부에선 이재만 청와대 총무비서관을 사칭해 대우건설에 1년간 셀프 취업한 50대 조모씨 사례도 있다. 조씨는 당시 박영식 대우건설 사장에게 전화를 걸어 이 비서관 행세를 하면서 “조씨를 보낼테니 일자리를 주면 좋겠다”고 요청했다. 그런뒤 다음날 본인이 사장실로 찾아가 입사 원서를 제출하는 등 1인 2역을 맡아 사기 행각을 벌였다. 대우건설은 청와대에 확인도 하지 않고 조씨를 부장직급에 채용했다. 조씨는 경찰 조사에서 “교회 행사에서 ‘요새 이재만이 제일 잘나가는 실세다’라고 하는 얘기를 듣고 이재만을 사칭하면 되겠구나 생각했다”는 취지로 진술했다.

 노무현 정부 시절에도 청와대 사칭범죄가 끊이지 않아 대통령 친인척 관계를 빙자한 사기 사건 59건을 공개하고 국민들에게 주의를 당부하기도 했다. 2004년에도 권양숙 여사 친척을 사칭해 국회의원 공천을 받게 해주겠다며 건설업자들에게 돈을 받은 혐의로 40대 권모씨가 경찰에 적발됐다. 당시 청와대는 가해자들이 ▶대통령 등 유력 인사의 ‘특보’나 ‘보좌관’ 등의 직함을 사용하거나 ▶‘민정’, ‘사정’등 힘 있어 보이는 부서 명칭을 사칭하고 ▶휴대전화에 입력한 전화번호가 유력 인사의 번호인 것처럼 속여 문자 메시지를 주고 받으며 ▶봉황 문양이 들어간 청와대 방문 기념품 등을 나누어 주는 등의 행태를 보인다며 각별한 주의를 당부했다.
위문희 기자 moonbright@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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