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한 가족] 독립운동가 후손 치과 진료비 지원, 나라사랑 실천 앞장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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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디치과 ‘잊혀진 영웅 찾기’ 치과 치료는 상대적으로 문턱이 높은 편이다. 진료비가 비싸다는 인식 때문이다. 그래서 경제적으로 넉넉지 않은 경우엔 치료를 포기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 유디치과는 광복 73주년을 맞아 어려운 형편에 있는 독립운동가 후손에게 치과 치료비를 지원하는 캠페인을 진행한다. 유디치과협회 진세식 회장은 “그동안 치과 치료를 잘 받지 못한 독립운동가 후손을 돕기 위해 비급여 치과 진료비용을 지원하고 있다”며 “그분들의 희생 덕에 지금의 우리가 있다는 것을 잊은 채 사는 것 같아 안타깝다”고 캠페인 배경을 설명했다.

진세식 협회장이 김갑곤 독립운동가의 장남 김길문씨의 구강을 점검하고 있다. 김씨는 어금니 3개에 임플란트 치료를 받을 예정이다. 프리랜서 김동하

진세식 협회장이 김갑곤 독립운동가의 장남 김길문씨의 구강을 점검하고 있다. 김씨는 어금니 3개에 임플란트 치료를 받을 예정이다. 프리랜서 김동하

“독립운동가의 후손은 3대가 어렵게 산다는 말이 있어요. 임플란트 치료비가 부담돼 선뜻 치과 치료를 받지 못하는 독립운동가 후손이 주변에 많습니다.”

광복회 회원·가족 #전국 120여 유디치과서 #의료비 경감 혜택 받아

 지난 7일 오전 독립운동가 김갑곤 애국지사의 장남인 김길문(82·서울 성동구)씨가 구강 검진을 위해 강남유디치과를 찾았다. 그는 생활 형편이 넉넉지 않아 임플란트 치료를 선뜻 결정하기엔 부담이 앞서 기능을 잃은 어금니 3개를 방치한 채 생활해왔다. 당연히 구강 상태는 좋을 리 없었다. 치주 질환을 제때 치료받지 못해 잇몸 뼈에 염증이 생겨 녹아내렸다. 잇몸 뼈의 높이와 두께가 부족해 임플란트를 시술하기엔 유착에 실패하거나 이탈할 위험이 있었다.

김씨는 다행히 뼈 이식을 받아 부족한 잇몸 뼈를 충분히 보충한 뒤 오른쪽 큰 어금니 2개와 왼쪽 큰 어금니에 임플란트를 이식받으면 된다는 진단을 받았다. 6개월 정도 뒤면 김씨는 건강한 어금니를 되찾게 된다. 김씨는 “잇몸에 염증이 심해 발치를 해야 하는 상태였다”며 “어금니 기능이 온전치 못해 잘 씹지 못하고 불편했는데 임플란트 치료를 지원받을 수 있게 돼 감사하다”고 말했다. 김씨는 유디남영치과에서 치료를 받고 있다.

 김씨가 치료를 받게 된 것은 독립운동가 후손의 치과 치료비를 지원하는 유디치과의 ‘나라사랑 실천 캠페인’의 일환인 ‘잊혀진 영웅 찾기 캠페인’을 통해서다. 이 캠페인은 국가를 위한 공적이 뚜렷하지만 잘 알려지지 않은 독립운동가를 찾아내 알리고 어려운 형편에 놓인 독립운동가 후손의 구강 건강을 지원하는 사업이다. 광복회 소속 회원과 가족은 전국 120여 곳의 유디치과에서 진료비 경감 혜택을 받을 수 있다.

 김씨가 캠페인 대상으로 선정된 것도 바로 그의 아버지 김갑곤 애국지사가 캠페인 취지인 ‘잊혀진 영웅 찾기’에 꼭 들어맞았기 때문이다. 김갑곤 지사는 전남 광양에서 1931년 ‘전남적색농민조합’을 결성해 활동한 독립운동가다. 김씨는 “아버지와 함께 독립운동을 했던 숙부는 전기 고문 후유증으로 정신착란 증세를 보였고, 아버지 역시 전신마비 후유증을 앓으셨다”고 말했다. 김갑곤 지사는 당시 공산주의·절도·강도 등의 죄명으로 실형을 산 기록 탓에 독립운동가로 인정받지 못했다. 2005년이 돼서야 잘못된 재판 기록에 대한 증언과 입증서를 통해 공적을 인정받아 건국포장을 수여받았다. 김씨는 “아버님이 독립운동을 한 뒤 재산을 뺏기고 빚도 지면서 몰락했다”며 “마을에서 가장 큰 집에 살다가 가장 작은 오두막으로 쫓겨가 비참하게 생활했다”고 말했다.

전·현직 소방공무원 구강 건강 챙겨

유디치과가 독립운동가 후손에게 의료 지원을 하는 배경엔 현재 국가보훈처의 독립유공자 의료비 지원 혜택이 제한적이란 이유도 있다. 지원 대상을 독립유공자 본인이나 유족(가족 중 1인)만 인정하고 있는데다 지원받을 수 있는 의료비는 건강보험급여 항목 중에서만 가능하다. 실질적인 의료 혜택을 기대하기에 어려움이 있는 것이 사실이다. 이에 따라 유디치과는 광복회와 지난해 2월 독립유공자 가족의 구강 건강을 증진하고 진료비를 지원하는 내용의 협약을 체결했다. 진세식 협회장은 “독립운동가 후손분을 진료해보니 같은 연령대의 다른 환자보다 구강 건강 상태가 더 좋지 않다”며 “어려운 형편으로 치과 치료를 제대로 받지 못한 분들이 적지 않다”고 말했다. 독립운동가의 후손 중 많은 이가 김씨처럼 노인 환자다. 어느 때보다 구강 건강을 잘 관리해야 하는 연령대다. 치아가 없으면 영양 섭취가 부실해져 건강이 안 좋아지고 외모에 자신감이 떨어져 위축되기 쉽다. 진 협회장은 “광복회를 통해 진료를 받고 있는 후손분의 구강 상태를 보면 치아가 많이 빠져 있고 잇몸 질환이 심각해 음식을 제대로 먹지 못하고 지병이 많은 경우가 적지 않다”고 말했다.

유디치과의 의료 지원은 나라를 위해 희생한 독립운동가와 후손에 그치지 않는다. 전·현직 소방공무원에게도 치과 진료를 지원하고 있다. 지난 3월 대한민국 재향소방동우회와 ‘전·현직 소방공무원의 구강 건강 증진과 의료 지원’을 골자로 하는 업무 협약을 체결했다. 그동안 유디치과는 지역별로 소방서와 협약을 맺고 소방관의 구강 건강을 지원해왔다. 하지만 이번 협약으로 현직 소방관뿐 아니라 퇴직 소방관까지 6만여 명 이상의 소방공무원이 전국 유디치과에서 혜택을 받을 수 있게 됐다.

유디치과의 ‘나라사랑 실천 캠페인’ 시작은 2015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독도사랑회와 협약을 체결하고 독도 경비대원에게 구강 건강용품을 후원하며 독도를 홍보하는 후원과 캠페인을 진행한 것이 계기가 됐다. 이후 지원 대상을 소방공무원과 독립운동가 후손으로까지 확대했다. 진 협회장은 “국민의 안전과 건강을 위해 힘쓰는 분들이 건강해야 국민의 삶의 질도 높아진다”며 “나라사랑 실천 캠페인 등을 통해 치과의 문턱을 없애고 구강 건강을 지키는 활동을 이어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이민영 기자 lee.minyou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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