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 대통령도 '폭염=재난'이라는데 관련법은 왜 감감무소식이었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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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염의 기세가 꺾일 줄 모르고 계속되는 24일 오후 대구 북구 칠곡 3지구 주변 도로가 뜨거워져 아지랑이가 피어오르고 있다. [뉴스1]

폭염의 기세가 꺾일 줄 모르고 계속되는 24일 오후 대구 북구 칠곡 3지구 주변 도로가 뜨거워져 아지랑이가 피어오르고 있다. [뉴스1]

 1994년 이후 최악의 폭염 공포가 한반도를 뒤덮으면서 국회에 계류된 폭염 대책 법안이 재조명되고 있다. 폭염을 자연재난으로 보고 대응책을 마련해야 한다는 취지의 법안이 여러 차례 발의됐지만, 국회에서 깊이 있게 논의되지는 못했다.

질병관리본부에 따르면 올여름 폭염으로 인한 사망자는 23일 기준 14명으로 전년 동기간(5명)과 비교하면 3배에 가깝다. 사망자가 17명이나 발생했던 2016년에도 23일까지의 사망자는 3명이었다. 또 사망을 포함한 올해 온열 질환자 수는 21일 기준 1043명으로 작년 같은 기간 646명에 비해 61%포인트나 증가했다.

질병관리본부(본부장 정은경)는 23일 「온열질환 응급실감시체계」운영 결과, 올해 발생한 온열질환자는 1043명으로 전년 동기간(5.20~7.21) 대비 61%(397명) 증가했다고 밝혔다.

질병관리본부(본부장 정은경)는 23일 「온열질환 응급실감시체계」운영 결과, 올해 발생한 온열질환자는 1043명으로 전년 동기간(5.20~7.21) 대비 61%(397명) 증가했다고 밝혔다.

심상치 않은 기류에 정부도 분주해졌다. 문재인 대통령은 이날 국무회의에서 “정부가 폭염 대책을 수립해 대비하고 있지만 장기화하는 폭염을 특별재난 수준으로 인식하고 관련 대책을 다시 한번 꼼꼼히 챙겨주기 바란다”고 당부했다. 행정안전부는 지난 22일 “폭염도 자연재난에 포함해야 한다는 결론을 내부적으로 내렸다”며 “국회에서 관련법을 심의할 때 찬성의견을 낼 것”이라고 밝혔다.

2016년 김두관·이명수·정병국 의원, 2017년 윤영석 의원 등은 폭염도 자연재난으로 보는 내용의 ‘재난 및 안전관리 기본법 개정안’을 각각 발의했다. 지난해 8월 행안위 법안심사 소위에서 한차례 심의가 이뤄졌지만, 정부는 신중한 입장이었다.

속기록에 따르면 당시 류희인 행안부 재난 안전관리본부장은 “폭염은 국민이 어느 정도 예측할 수 있고, 개인의 건강이나 주변 환경 등에 따라 피해 정도가 매우 다르게 나타나 피해 원인 규명이 현실적으로 어려운 측면이 있다”며 “현재는 (개정안을) 수용하기 어렵다”는 의견을 냈다.

이채익 자유한국당 간사가 24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 행정안전위원회 전체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뉴스1]

이채익 자유한국당 간사가 24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 행정안전위원회 전체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뉴스1]

행안부가 최근 입장이 바뀐 이유는 뭘까. 이에 대해 국회 안행위 한국당 간사인 이채익 의원이 서면 질의하자 행안부는 “기후 변화로 인해 매년 폭염이 증가 추세에 있고, 향후에는 기존에 없는 극한기상이 발생할 가능성이 있어 재난으로 규정하고 체계적인 관리가 필요하다고 봤다”고 답변했다.

25일 국회 행안위에서 행안부 업무보고가 이뤄지면, 8월 초에는 속도감 있게 관련법을 처리할 수 있을 거라는 전망이 나온다. 폭염을 재난으로 규정하는 법안이 통과되면 온열 질환으로 인한 사망자에게 1000만원, 부상자는 정도에 따라 250만원~500만원을 지원하는 방안 등이 검토되고 있다. 행안부는 추후 질병관리본부와 협의해 구체적인 보상 기준을 마련하겠다는 방침이다.

최근5년(2013~2017년) 온열질환자 발생 현황 [자료 질병관리본부]

최근5년(2013~2017년) 온열질환자 발생 현황 [자료 질병관리본부]

한편 국회 보건복지위 소속 김세연 자유한국당 의원이 질병관리본부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온열질환 감시체계를 구축한 2011년이후 지난해까지 집계된 '폭염 사망자' 수가 75명에 달한다. 사망을 포함한 온열 질환자 수는 약 8000명이다. 2015년부터 집계한 직업별 피해 현황을 보면 농ㆍ어업 종사자가 677명으로 가장 많았고, 이어 기능직(646명), 노숙인을 제외한 무직자(644명), 학생(341명), 주부(326명) 순이었다.

김경희 기자 amato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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