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전선언 남북미 동상이몽

중앙일보

입력

북한이 7ㆍ27 정전협정 체결일을 앞두고 ‘약속 지키기’에 나섰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6ㆍ12 정상회담 때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에게 직접 약속한 동창리 서해 위성발사장 해체 수순에 들어갔고, 7월 27일 전후로 미군 전사자 유해도 일부 송환할 전망이다. 종전선언을 만들어내기 위한 분위기 조성 차원이다. 미국의 북한 전문매체 38노스가 23일(현지시간) 위성사진 분석을 근거로 동창리 발사장 해체 동향을 보도하자 김의겸 청와대 대변인은 “한ㆍ미 간에 관련 정보 공유가 이뤄지고 있고, 보도와 별도로 한ㆍ미 간에 파악하고 있었던 부분이 있다”고 곧바로 이를 확인했다. 북ㆍ미 간 비핵화 협상이 좀처럼 속도를 내지 못하는 가운데 북한의 선제적 조치가 이뤄지는 셈이다.

미국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과 북한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6월 12일(현지시간) 싱가포르 센토사 섬 카펠라 호텔에서 업무오찬을 마친 뒤 산책하고 있다.   오른쪽 사진은 지난 4월 27일 도보다리에서 산책 중인 문재인 대통령과 김 위원장. [연합뉴스]

미국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과 북한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6월 12일(현지시간) 싱가포르 센토사 섬 카펠라 호텔에서 업무오찬을 마친 뒤 산책하고 있다. 오른쪽 사진은 지난 4월 27일 도보다리에서 산책 중인 문재인 대통령과 김 위원장. [연합뉴스]

 북한이 정전협정 체결일을 맞아 동창리 시험장 및 미군 유해 문제에서 먼저 성의를 보이는 이유는 종전선언을 얻어내려는 의도라는 게 중론이다. 북한이 이달 초 마이크 폼페이오 미 국무장관의 3차 방북 직후 내놓은 미국과의 4대 협의 현안 중 하나가 종전선언 발표다. 북한이 종전선언에 몰두하는 이유는 이를 체제 보장의 출발점으로 간주하기 때문이다. 북한은 이른바 미국의 대조선 적대시 정책 때문에 한반도가 불안하다고 주장해 왔다. 북한은 따라서 종전선언이 향후 북ㆍ미 관계 정상화와 이에 따른 김정은 체제 보장을 확인할 첫 시험대로 여긴다. 정부 소식통은 “북한은 종전선언을 대북 적대시 정책 철회의 증거처럼 생각하는 것 같다”고 전했다.

 그러나 도널드 트럼프 정부는 종전선언이 아니라 확고한 제재 유지가 비핵화에 도움이 될 것이라는 입장이다. 미 국무부ㆍ재무부ㆍ국토안보부가 23일 대북제재 주의보를 발령한 것도 이 때문이다. 미국은 17쪽짜리 ‘대북제재와 단속주의보’에서 북한의 제재 회피 행태를 집중적으로 지적했다. 북한이 의류의 라벨을 중국산으로 바꿔 원산지를 속이고, 광물을 시세보다 떨이로 팔고 있다는 등 구체적인 사례를 제시했다. 청송회사 등 제재상 금지된 북한과의 합작회사 이름 230여 개도 공개했다. 비핵화를 거부하는 북한과 거래하지 말라고 국제사회에 경고장을 보낸 것이나 다름없다.

 정부뿐만 아니라 전문가들과 의회에서도 비핵화 조치 없는 종전선언에 대해 부담스러워하는 분위기가 역력하다. 미 육군 특수작전부 대령 출신으로 주한미군으로 다섯 차례 복무했던 데이비드 맥스웰은 본지와의 e메일에서 “북한은 종전선언을 주한미군 철수 주장에 활용할 것”이라며 “북한의 완전한 신고, 핵물질 제거, 검증 개시 등 구체적 조치가 취해진 뒤에 종전선언이 이뤄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미 외교전문지 더 디플로맷의 앤킷 판다 선임에디터도 본지와의 e메일에서 “북한이 폼페이오 장관의 3차 방북 뒤에 종전선언을 유독 부각하는 것도 종전선언 혹은 평화협정 뒤에 비핵화를 하겠다는 뜻”이라고 분석했다. 미 의회가 23일(현지시간) 주한미군 병력을 2만2000명 이하로 줄일 수 없도록 제한하는 2019 회계연도 국방수권법안에 합의한 것도 워싱턴 조야의 우려 섞인 기류를 반영했다는 해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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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은 판문점 선언에서 명시한 대로 연내 종전선언을 목표로 하고 있다. 조명균 통일부 장관은 24일 국회 외교통일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연내 종전선언을)하기 위해 남ㆍ북ㆍ미 간 협의가 진행 중”이라며 “(연내에)가능할 것으로 전망한다”고 말했다. 정부는 종전선언은 정치적 선언일 뿐 법적 구속력이 없으며, 조기에 종전선언을 해 북한을 안심시키는 것이 비핵화에 도움이 된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종전선언을 비핵화 뒤로 미루려는 미국과, “남조선은 종전선언을 수수방관해서는 안 된다”(20일 노동신문)는 북한 사이에서 만만치 않은 중재 역할을 맡아야 하는 상황이다.

유지혜 기자 wisepe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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