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 칼럼] 주민번호 변경, 4차 산업혁명의 첫걸음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경제 04면

홍준형 주민등록번호변경위 위원장

홍준형 주민등록번호변경위 위원장

우리 속담에 ‘호미로 막을 것을 가래로 막는다’는 말이 있다. 초기에 작은 힘으로 해결할 수 있는 일도 방치하면 나중에 큰 문제로 번질 수 있다는 의미이다. 이러한 교훈은 개인정보 보호에 대해서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개인정보의 침해가 급진·누적적으로 사회 전체를 위협하는 리스크로 퍼질 수 있기 때문이다.

4차 산업혁명의 물결 속에 개인정보 활용이 그 어느 때보다 확산하며 개인정보의 오남용과 유출의 위험도 전례 없이 커지고 있다. 특히, 주민등록번호의 불법 유출은 개인의 사생활뿐만 아니라 생명·신체·재산의 침해로 이어질 소지가 크다. 실제로 유출된 주민등록번호가 다른 개인정보와 연계돼 보이스피싱, 스미싱 등 각종 사기와 신분도용, 가정폭력, 데이트 폭력 등 범죄에 악용되고 있다.

주민등록번호는 개인정보의 중핵이다. 주민등록번호 유출로 인한 피해와 악순환을 외면한다면 이는 정부 본연의 소임을 저버리는 일이다. 이러한 인식에 따라 정부는 개인정보 유출에 대한 징벌적 손해배상제 도입 등 국민의 개인정보 보호를 위해 노력하는 한편, 지난해 5월부터는 주민등록번호변경위원회를 설치해 번호 유출로 피해를 본 국민의 피해 구제와 불안감 해소를 위해 온 힘을 기울여 왔다. 지금까지 위원회는 약 1000여건의 주민등록번호 변경신청을 받아 그 중 번호 유출 피해를 본 것으로 인정된 약 500여명의 주민등록번호를 변경했다.

주민등록번호의 변경은 1968년 주민등록번호 도입 후 50년 만에 처음 이루어졌다. 유출된 주민등록번호가 악용되어 또 다른 피해로 이어지는 악순환을 막는 안전조치가 가능해졌다는 점이 훨씬 더 중요하다. 주민등록번호가 유출되면 마치 ‘깨진 유리창(broken window)’ 사례처럼 개인정보 환경이 급진적으로 악화할 수 있다. 주민등록번호 변경제도는 이 악순환의 고리를 끊는 방법이다.

그동안 주민등록번호변경위원회 위원장으로 1년 넘게 일해 오면서 번호 유출로 인해 재산피해는 물론 가정폭력 심지어 성폭력 피해를 보고 불안에 떨고 계신 분들을 볼 때마다 안타까움을 금할 수 없었다. 번호 유출로 피해를 보거나 불안해하는 분들에게 최소한의 방어수단으로 주민등록번호를 변경할 수 있는 길이 열려 있음을 알려드리고 싶다.

개인의 정보가 곧 그 사람이 되는 4차 산업혁명과 지능 정보화 시대에 주민등록번호변경제도는 개인정보 보호를 위한, 작지만 의미 있는 첫걸음이다. 앞으로도 위원회는 주민등록번호 유출로 인한 피해 예방과 구제에 앞장서 국민의 개인정보가 철저히 보호되는 안전한 사회를 실현하는 데 기여하고자 한다. 국민 여러분께 필요한 경우 주민등록번호 변경을 통해 개인정보가 보호되는 안전한 세상을 만드는 작은 변화에 적극 동참 지지해 주시기를 부탁드린다.

홍준형 주민등록번호변경위 위원장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