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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북 공동의 3·1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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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고정애 기자 중앙일보
고정애 중앙SUNDAY 정치에디터

고정애 중앙SUNDAY 정치에디터

3·1절과 임시정부. 대한민국 헌법상 명시된 국가적 정통성의 출발점이다. 1948년 건국을 주장하는 이들도 다르지 않다.

하지만 북한은 아니다. 항일투쟁, 그중에서도 무장투쟁을 근거로 삼는다. 김일성 가계가 주도했다고 주장하면서다. 『조선노동당약사』엔 “우리 당과 인민은 항일무장투쟁의 빛나는 혁명전통을 가지고 있고… 수많은 우여곡절을 겪으면서 형성된 ‘혁명전통’은 또한 수령에 의해 형성되고 발전·풍부화되어지고, 수령의 후계자에 의해 계승발전되어진다”고 기술돼 있다.

3·1절은 그나마 평가라도 한다. 대신 ‘자유를 위해 고귀한 피를 흘린’ 봉기(蜂起)로 본다. “경애하는 수령 김일성 대원수님께선 여덟 살 되시는 어리신 몸으로 반일 시위에 참가하시어 삼십리나 되는 평양 보통문 밖까지 가시었다”(『근대조선역사』)고 한다. 하지만 실패로 여긴다. 이른바 ‘부르주아 민족주의 운동’의 종말이다. 김일성은 “3·1운동 후 자산계급 출신의 민족운동가들은 그들의 정치적 동요와 일제의 매수정책으로 하여 근로대중의 혁명적 진출에 겁을 먹은 나머지 대부분 ‘원쑤’들의 충실한 앞잡이가 되었다”고 주장했다. 이후에야 비로소 본격적인 항일운동이 시작됐고, 이는 조선공산주의운동 덕분이라고 못 박는다. 이러니 임정(臨政)에 대한 북한의 인식은 물으나 마나일 게다. ‘사대매국노’란 표현까지 동원한다.

사학자 정두희는 2001년 “남북이 공유하는 건 역사가 아니라 과거일 뿐이다. 텔레비전에 비치는 (화해) 화면만으로 모든 문제가 풀리기엔 남북 간 이질성이 너무도 크다”(『하나의 역사, 두 개의 역사학』)고 개탄했다. 그러곤 “(북한의 변화 없이) 남한의 역사학자들이 민족주의적 감정에 근거하여 북한의 역사를 포용하거나 수용하는 것 역시 진정한 의미의 ‘통합’은 될 수 없다”고 했다. 지금이라고 다를까.

문재인 대통령이 3일 “김정은 위원장과 3·1운동 100주년 남북 공동기념사업 추진을 논의했다”며 “남과 북이 독립운동의 역사를 함께 공유하게 된다면 서로의 마음이 가까워질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3·1’ 외엔 다 다른데 무엇을 공동 기념할 수 있을까 의아하다. 과연 남북이 독립운동 역사를 공유할 수 있을지부터 궁금하다. ‘임정=건국’이 소신인 대통령에겐 ‘임정은 명목상 정부였을 뿐이고 공화국 창건은 48년’이란 북한의 건국관은 문제되지 않나 의문도 든다. 낭만적이어도 너무 낭만적이고 관대해도 너무 관대하다. ‘임정=건국’ 주장에 반대 또는 유보적인 남한 내 그룹을 향한 그의 시선과 비교하면 말이다.

고정애 중앙SUNDAY 정치에디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