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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분수대

난민, 거짓말, 옳은 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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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안혜리 기자 중앙일보 논설위원
안혜리 논설위원

안혜리 논설위원

구글 트렌드에서 최근 30일 기간으로 ‘난민’을 검색하면 ‘제주’나 ‘예멘’ 같은 지명을 제외하고 가장 많이 따라붙는 관련 주제어가 ‘범죄’와 ‘강간’ 등 부정적 단어들이다. 네이버에서도 ‘난민’을 검색하면 ‘성폭행’이 자동 완성될 만큼 난민은 이미 대한민국에서 기피 단어가 돼버렸다. 우리가 제도적으로나 심적으로 아무런 준비를 못 한 새 예멘 난민 500여 명이 제주에 상륙하면서 벌어진 일이다.

많은 이가 들끓는 난민 수용 반대 여론을 단순히 대중의 무지나 혐오에서 찾는다. 공포를 부풀린 가짜뉴스에 휘둘리거나 인류 보편적 가치에 아직 눈뜨지 못한 후진적 시민의식 탓이라는 식이다. 가령 유엔난민기구 친선대사인 배우 정우성은 “근거가 빈약하거나 과장된 정보로 본질에서 벗어나면 안 된다”며 “타민족·타 종교를 배타적으로 대하면서 어떻게 우리 아이에게 ‘세상을 사랑하라’ 얘기하겠느냐”고 말한다. 김종대 정의당 의원과 강우일 천주교 제주교구장은 각각 “천민자본주의”라거나 “인간의 도리를 거부하는 범죄”라고 강한 어조로 꾸짖는다. 박원순 서울시장 등 유력 인사들도 한마디씩 보태며 관용을 보이라고 대중에게 호소한다. 그런데 웬일인지 이런 목소리가 터져 나올 때마다 반대 여론이 수그러들기는커녕 오히려 흉흉한 민심만 더 자극한다.

하버드대 경제학 박사 세스 스티븐스 다비도위츠가 쓴 『모두 거짓말을 한다』에 등장하는 2015년 미국 캘리포니아 총기난사 사건에서 답을 찾을 수 있다. 언론이 이슬람계로 보이는 용의자 이름을 공개하자마자 지역사회에 이슬람포비아(이슬람 혐오)가 걷잡을 수 없이 퍼졌다. 오바마 대통령이 나서서 대국민 연설을 했다. 문제는 이슬람을 존중해야 한다고 역설할 때마다 성난 민심을 달래기보다 오히려 격앙시켰다는 점이다. 연설 동안 ‘이슬람을 죽이자’는 구글 검색이 오히려 세 배로 늘었으니 말이다. 소위 명망가들이 정치적 올바름을 과시할수록 불안한 대중은 거꾸로 더 반발한다는 걸 이 사례가 잘 보여준다.

그렇다면 대중의 분노를 그저 지켜보기만 해야 할까. 이 답도 위 사례에서 찾을 수 있다. 오바마는 두 달 뒤 연설에서는 아량을 베풀라고, 다시 말해 당신들이 달라져야 한다고 말하지 않았다. 대신 미국에 기여한 이슬람계 스포츠 영웅과 군인, 건축가 등을 언급하며 다른 시각을 제시했다. 그제야 분노에 찬 검색이 줄었다.

불안한 마음에 다가가는 전략 없이 옳기만 한 말이 때론 거짓말만큼 위험하다. 이번 난민 문제가 던져준 의외의 교훈이다.

안혜리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