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청와대의 통계 꿰맞추기에 KDI마저 최저임금 우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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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지난달 31일 “소득 주도 성장과 최저임금 인상의 긍정적 효과가 90%”라고 밝힌 문재인 대통령의 발언이 끝없는 논란을 일으키고 있다. 청와대가 통계 분석의 원칙을 뒤엎고 자의적 해석을 계속 내놓으면서다. 어제 김의겸 대변인은 “(문 대통령은) 근로자 가구와 비근로자 가구를 분명히 나눠서, 근로 가구에 대해 90%가 긍정적 효과가 있다고 말했다는 점을 다시 설명해 드린다”며 청와대가 잘못된 통계를 제시하지 않았다는 점을 또다시 강조하고 나섰다.

김 대변인의 이날 설명은 전날 홍장표 경제수석의 기자간담회 내용을 사실상 되풀이했다. 홍 수석이 “대통령 발언의 근거는 ‘가구별’ 근로소득이 아닌 ‘개인별’ 근로소득을 기준으로 분석한 결과”라고 해명했는데, 부정적 여론이 수그러들지 않자 통계에는 오류가 없다고 반박한 것이다. 하지만 청와대의 주장은 ‘견강부회’ ‘아전인수’ ‘꿰맞추기 통계 해석’이라는 비판이 계속되고 있다.

이 논란은 1분기 가계소득 동향에서 하위 20%(1분위)의 소득이 8% 감소했다는 통계와 부합하지 않으면서 시작됐다. 최저임금 인상 충격으로 취약계층이 일자리를 잃고 소득까지 감소했는데 “긍정적 효과가 90%”라고 하니 의심을 살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청와대는 최저임금 인상의 피해자들인 실업자와 683만 명에 달하는 자영업자는 쏙 빼놓고 임금근로자들의 소득만 선택적으로 분석해 긍정적 효과가 90%라는 주장을 펴고 있다.

이제라도 청와대는 장밋빛 해석을 멈춰야 한다. 아무리 지방선거를 앞둔 정치의 계절이라 해도 경제 통계를 왜곡시켜선 안 된다. 그리고 한국개발연구원(KDI)마저 사실상 최저임금 실험에 ‘파산선고’를 내렸다는 현실을 직시해야 한다. KDI는 어제 “올해 최저임금 인상으로 고용 감소가 최대 8만4000명에 달할 것”이라며 “내년과 후년에도 15%씩 인상된다면 내년 9만6000명, 2020년 14만4000명의 고용이 감소한다”고 경고했다. 게다가 “최저임금이 계속 인상되면 서비스업 저임금 일자리가 줄어들어 단순기능 근로자의 취업이 어려워지고, 하위 30%의 근로자가 동일한 임금을 받아 근로자의 지위 상승 욕구가 약화하며, 정부 지원 규모가 급속히 증가하는 등 노동시장의 임금질서가 교란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것이 최저임금 실험의 민낯이다. 청와대 경제팀은 국민을 볼모로 한 정책 실험을 즉각 중단해야 한다.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릴 수는 없는 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