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한국 반도체 압박하는 중국, 정부 대책이 안 보인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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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갈수록 활력을 잃고 있는 한국의 주력 산업 중 그나마 버티는 것이 반도체다. 이마저도 ‘반도체 굴기(崛起)’의 꿈을 꾸는 중국의 추격으로 미래를 장담할 수 없는 형편이다. 이런 와중에 중국 반독점 당국이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미국 마이크론 등 반도체 3사의 가격 담합 조사에 착수했다. 자국 반도체 산업 육성을 위해 외국 업체에 대한 노골적 견제에 나섰다는 우려 섞인 분석이 나오고 있다.

최근 중국의 반도체 집념은 무서울 정도다. 미국 월스트리트저널(WSJ)에 따르면 중국 정부는 반도체 산업 육성을 위해 3000억 위원(약 51조원) 규모의 펀드 조성 계획을 세웠다. 중국은 세계 최대 반도체 소비국이지만 자급률은 10%대에 머무르면서 매년 2000억 달러 규모의 반도체 무역적자를 기록하고 있다. 반도체의 자급률을 2025년까지 70%로 끌어올린다는 것이 중국의 목표다. 중국이 야심차게 추진하고 있는 미래산업 전략 ‘중국제조 2025’를 위해서도 반도체는 필수이기 때문이다. 시진핑 국가주석도 주요 행사 때마다 “천하의 인재를 모으라”며 첨단 핵심 기술의 국산화를 독려하고 있다.

중국이 반도체를 비롯한 중간재 자급에 성공할 경우 한국 경제가 받을 타격은 불을 보듯 뻔하다. 지난해 중국 시장은 우리 수출의 4분의 1을 차지했는데, 대중 수출의 80% 가까이가 반도체·디스플레이·화학제품 같은 중간재였다. 반도체만 놓고 보면 수출의 40%를 중국에 의존하고 있다. 설상가상으로 우리 수출의 양대 시장인 미국마저 트럼프 행정부가 수입 자동차에 25% 관세 부과를 검토하는 등 통상 압력을 강화하고 있다. 상황이 이런데도 반도체와 자동차의 자리를 넘겨받을 후발 품목은 보이지 않는다. 효과도 불확실한 경제 정책 방향을 놓고 입씨름만 벌이는 사이 우리 경제의 버팀목인 수출 산업의 입지는 점점 좁아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