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원 실수로 28억주 배당 사고 … 주식 수 부풀려도 못 막는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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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김용범 금융위원회 부위원장(가운데)이 8일 삼성증권 사태와 관련한 현안 점검회의를 주재하고 있다. 금융감독원은 9일 삼성증권을 특별점검한다. [연합뉴스]

김용범 금융위원회 부위원장(가운데)이 8일 삼성증권 사태와 관련한 현안 점검회의를 주재하고 있다. 금융감독원은 9일 삼성증권을 특별점검한다. [연합뉴스]

지난 6일 오전 9시30분. 삼성증권의 한 주니어급 직원이 실수를 저지른다. 우리사주를 가진 직원에게 배당을 지급하면서 단위로 ‘원’ 대신 ‘주’를 입력했다. 주당 현금 1000원이 아닌 삼성증권 주식 1000주가 각 계좌로 입고됐다. 우리사주를 가진 약 2000명의 직원에게 나가야 할 28억원의 현금 배당이 28억 주로 바뀌어 입금됐다. 금액으로는 110조원이 넘는다.

1000원 배당을 1000주로 잘못 입력 #직원 16명, 주식 2000억 어치 팔아 #삼성증권, 해당자 대기발령 내기로 #금감원 “모든 증권사 시스템 점검” #관련자 절도죄 적용 가능성도 시사

잘못 배당받은 약 2000명의 삼성증권 임직원 가운데 16명이 501만3000주를 매도했다. 액수로는 약 2000억원에 달한다. 주식을 판 직원 중엔 부서장급과 애널리스트도 있다. 이로 인해 삼성증권 주가가 순간적으로 11% 넘게 폭락했다. ‘잘못 입고된 주식을 팔지 말라’고 공지하는 등 삼성증권 내부에서 문제를 깨닫고 사태 수습을 시작한 건 이날 오전 9시50분을 전후한 시점이다.

삼성증권 전체 상장 주식보다 많은 ‘유령’ 주식이 실제 계좌와 주식시장을 오가는 20여 분간 삼성증권 내부는 물론 금융 당국에서도 이를 막지 못했다. 기본적인 통제 장치 자체가 없었다. 황세운 자본시장연구원 연구위원은 “그동안 금융상품과 그 거래 양상이 복잡해지고 있는데도 증권사 내부 통제와 당국의 규제 준수 수준이 현장의 눈높이를 맞추지 못하고 있다”며 “이번 사고로 허점이 고스란히 드러났다”고 말했다.

삼성증권 배당 오류 사태는 황당한 실수와 내부 검증 시스템 부재가 빚은 참사다. 김용범 금융위원회 부위원장은 8일 삼성증권 사태 관련 자본시장 현안 점검회의를 열고 “다른 증권사 등에서도 유사한 사고가 발생할 수 있는지 증권계좌 관리 실태를 점검하고 문제가 발견되면 신속히 보완하겠다”고 말했다. 금융감독원은 9일 삼성증권을 대상으로 한 특별점검에 들어간다. 금감원은 모든 증권사의 계좌관리 시스템을 점검할 계획이다. 하지만 사고가 터진 후의 급한 처방에 불과하다.

[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삼성증권 측은 “일부 직원 계좌에서 매도됐던 주식은 시장에서 매수하거나 일부 빌리는 방식으로 전량 확보해 정상화했다”고 밝혔다. 하지만 시장 반응은 ‘정상화’와 거리가 멀다. 전체 상장 주식 수보다 훨씬 많은 주식이 배당으로 입고됐는데도 내부적으로 이를 막는 사전 통제 시스템은 없었다. 금융위·금감원·한국거래소·한국예탁결제원 등 관련 당국도 책임에서 벗어날 수 없다. 상장 주식보다 더 많은 주식이 배당됐는데도 이를 막을 사전 규제는 없었다.

삼성증권은 해당 직원의 증권계좌를 동결했다. 주식 매도 주문을 내더라도 결제가 이뤄질 때까진 3거래일(이번 경우엔 10일이 결제일)이 걸린다. 삼성증권은 또 입력 착오를 저지른 직원과 잘못 입고된 주식을 판 직원 16명을 9일부터 업무에서 배제하는 대기발령을 내기로 했다. 금감원은 잘못 입고된 주식을 판 직원에 대해 법적 처벌이 불가피하다는 입장이다. 금감원 관계자는 “만일 내 은행계좌에 1억원이 잘못 들어왔는데 이걸 빼 썼을 경우 절도죄에 해당한다”며 “주식 역시 자기 주식이 아닌데 팔았다는 것은 법적으로 문제가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이 사태는 주식을 빌려서 파는 공매도 반대 여론에도 불을 붙였다. ‘삼성증권의 시스템 규제와 공매도 금지’에 대한 청와대 국민청원에 8일 오후 5시 현재 13만 명이 넘는 사람이 동의했다. 비슷한 내용으로 삼성증권과 공매도를 규제하라는 다른 국민청원도 270건 넘게 올라와 있다.

이날 삼성증권은 구성훈 대표이사 명의로 “투자자의 피해에 대해 최대한의 방법을 찾아 구제하고 도덕적 문제가 발생한 해당 직원과 관련자는 엄중히 책임을 묻겠다”는 사과문을 냈다.

조현숙·이새누리 기자 newea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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