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주열 한은 총재 40년 만의 연임 … 안전운전 택한 문 대통령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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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8면

이주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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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보운전’보다 ‘안전운전’을 택했다.

정권 바뀌면 총재 교체 관행 깨져 #통화스와프 확대 외환 안정 기여 #국회 청문회 거쳐 내달 새 임기 #1450조 가계 빚 관리가 최대 숙제 #미국에 맞춰 금리 인상도 딜레마

문재인 대통령이 2일 한국은행 차기 총재 후보로 이주열(66·사진) 현 총재를 낙점했다. 한국은행 역사상 세 번째 연임이다. 김성환 전 총재(1970∼78년) 이후 40년 만의 연임이다. 한은 총재가 금융통화위원회 의장을 겸임하게 된 98년 이후로는 첫 연임이다.

김의겸 청와대 대변인은 “문재인 대통령이 다른 나라는 중앙은행 총재가 오랫동안 재임하면서 통화정책을 이끄는 만큼 우리나라도 적용 가능한지 살펴보라고 했다”며 “이 총재의 연임은 한국은행의 중립성과 자율성을 보장하겠다는 문 대통령의 의지가 반영된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이 총재는 거시경제와 금융시장에 대한 풍부한 경험과 식견을 지니고 있는 데다 한·중, 한·캐나다, 한·스위스 통화스와프 체결 등 국제금융 분야의 감각과 역량을 갖췄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고 덧붙였다.

이 총재는 박근혜 정부 때인 2014년 4월 한은 총재에 취임했다. 이달 말 4년의 임기가 끝난다. 전 정부에서 임명한 만큼 연임은 어려울 것이란 관측이 많았다. 일반적으로 정권이 바뀌면 총재도 교체됐기 때문이다.

이 총재도 이날 한은 본관에서 지명소감을 발표하면서 “총재 연임은 이전에 거의 전례가 없었던 만큼 저도 큰 영광이지만 중앙은행의 중립성과 역할의 중요성을 인정받았다는 면에서 명예스러운 일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는 “4년 전 처음 명을 받았을 때보다 훨씬 더 무거운 책임감을 느낀다”며 “국회 청문 절차 준비에 차질이 없도록 하겠다”고 했다.

정부는 6일 국무회의에서 심의를 거친 뒤 국회에 인사청문회 요청안을 제출할 예정이다. 국회는 청문 요청을 받고 20일 이내에 청문회를 연 뒤 3일 이내에 경과보고서를 본회의에 보고해야 한다. 청문회를 거치면 이 총재는 4월 새 임기를 시작한다.

이 총재는 강원도 원주 출신으로 연세대 경영학과, 미국 펜실베이니아주립대(경영학 석사)를 졸업했다. 77년 한국은행에 입행해 해외조사실장과 조사국장, 정책기획국장, 부총재보, 부총재를 지냈다. 2012년 한은법 개정에 따라 이 총재가 처음으로 국회 인사청문회를 치렀다.

4년간 더 통화정책 지휘봉을 잡게 된 그의 앞에 놓인 과제는 만만치 않다. 먼저 한국 경제의 시한폭탄으로 여겨지는 가계부채다. 지난해 말 1450조원을 돌파했다. 이 총재는 지난 4년간 완화적 통화정책을 펼쳐 가계부채가 쌓이는 데 한 역할을 했다는 지적이 나온다.

게다가 주요국 중앙은행은 서서히 긴축으로 기수를 돌리고 있다. 그 최전선에 미국이 있다. 미 연방준비제도(Fed)는 20~21일(현지시간) 열리는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 정례회의에서 기준금리를 인상할 것으로 예상된다. 현재 미국 기준금리(연 1.25~1.5%) 상단은 한국 기준금리(연 1.5%)와 같지만 미국이 금리를 올리면 정책 금리가 역전된다. 자본 유출 우려가 커지는 이유다.

한은 금통위가 금리를 따라 올리자니 부담도 만만찮다. 자본 유출과 가계부채 증가를 막기 위해 금리에 손을 대면 대출받은 가계의 이자 부담은 늘어난다. 가계의 주머니가 얇아지면 소비심리가 움츠러들게 된다. 그 결과 경기가 가라앉을 수 있고 생산 감소에 따른 일자리 부족과 소득 하락 등의 악순환이 이어질 수 있다. 국내 경기에 아직 완전히 온기가 돌지 않는 상황에서 거세지는 미국의 통상압박과 GM 사태도 경제의 불안요인이다.

이 총재는 이러한 장애물을 피해 가며 경기를 냉각시키지 않는 선에서 금리를 적절히 조절하는 절묘한 운전 실력을 발휘해야 하는 셈이다. 이 총재는 이날 “우리 경제를 둘러싼 여러 가지 대내외 여건이 워낙 엄중하기 때문에 이를 헤쳐 나가는 데 최선을 다하겠다”고 했다.

공동락 대신증권 연구원은 “시장 입장에선 신임 총재에 적응할 시간이 필요 없다는 점에서 긍정적이지만 이 총재는 완화적 통화정책의 정상화 과정에서 자신이 벌인 일을 수습하는 책임을 맡았다는 점에서 ‘독이 든 성배’를 쥔 것으로도 볼 수 있다”고 말했다.

하현옥·위문희 기자 hyunoc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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