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분수대

처칠의 주미 대사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35면

고정애 기자 중앙일보
고정애 중앙SUNDAY 정치에디터

고정애 중앙SUNDAY 정치에디터

“윈스턴 처칠은 영어를 동원해 전쟁터로 보냈다.”

세상엔 존 F 케네디가 1963년 처칠을 두고 한 말로 알려졌다. 처칠의 언어가 제2차 세계대전 중 영국인들에게 히틀러의 나치 독일에 맞설 힘을 불어넣었다는 의미다. 하지만 원작자는 따로 있는데 미국 CBS 방송의 에드 머로다. 54년 발언했다.

영화 ‘다키스트 아워’는 이를 처칠의 정적(政敵)이 한 토로로 각색했다. 40년 6월 처칠이 하원에서 “해변, 들판, 거리에서 싸우겠다”는 연설을 마치자 패배를 자인한 듯 내뱉도록 했다. 영화적 설정이다.

정적 자체는 실존 인물인데 외무장관인 핼리팩스 자작이다. 나치 독일을 향한 유화책을 설계했고 네빌 체임벌린 총리와 함께 집행했으며 히틀러의 의도가 분명해진 후에도 히틀러와 협상해야 한다고 처칠을 압박했었다. 영화 속에선 처칠이 이끄는 거국내각을 무너뜨릴 음모까지 꾸민 비열한 정치인으로 묘사됐다.

그와 처칠 사이가 끝장났겠다고 상상할 수 있겠다. 히틀러에 대한 판단 미스는 전시 외무장관에겐 용납되지 않은 귀책일 수 있어서다. 현실은 달랐다. 핼리팩스는 장관직을 유지했고 상원의 지도자까지 됐다. 그해 말 비로소 내각을 떠났는데 주미 대사로 부임하면서다. 영국엔 절체절명의 과제였던 미국의 참전을 끌어내는 일을 맡았다. 그는 종전 후인 46년까지 주미 대사로 머물렀다. 잘해냈다는 의미다.

따지고 보면 그의 전임 주미 대사인 로디언 경도 유화론자로, 처칠과 맞서던 이였다. 하지만 그 역시 미국의 원조를 끌어내느라 열과 성을 다했고, 끝내 성공했다. 그 자신은 58세의 나이로 급사했다.

우리네 외교안보 라인이 겹쳐 보이지 않나. ‘병세족’(윤병세 전 장관이 중용한 외교관)이라고 해서, 이전 대화·협상에 참여했다고 하여 이런저런 이유를 들어 북미·북핵 라인을 실무급까지 갈아치웠다. 잘한다는 이도 예외일 수 없었다. 미국을 안다는 전문가들은 “현 라인은 미국의 화법을 이해하지 못한다”고 한탄하는데 정부는 “한·미 동맹은 굳건하다”고 되뇔 뿐이다. 북한·중국엔 매사 애면글면하면서 미국엔 대범하기 이를 데 없다. 오죽하면 “미국을 몰라서 용감한 것”이란 해석까지 나온다. 안보·통상에서 미국발 파도가 몰려오는데 왜 오는지, 얼마나 올지, 또 셀지 모르는 걸 보면 딱히 부인하기도 힘들다.

영화 제목과 달리 영국인들은 당시를 ‘좋았던 시절(This was their finest hour)’로 곱씹곤 한다. 함께 위기를 극복했다는 의미에서다. 우린 과연 그러고 있나.

고정애 중앙SUNDAY 정치에디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