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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분수대

릴레함메르의 추억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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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안혜리 기자 중앙일보 논설위원
안혜리 논설위원

안혜리 논설위원

‘최악의 교통체증으로 관람 포기 속출’ ‘살인적인 물가로 관광객 고통’ ‘최고 40배 암표 극성’ ‘막대한 적자로 경제가 휘청’….

1994년 노르웨이 릴레함메르 겨울올림픽 당시 연일 전 세계 언론들이 쏟아낸 부정적 기사들이다. 하지만 지금 릴레함메르 대회는 역사상 가장 성공한 올림픽으로 기억된다. 최악의 환경 파괴 대회라는 오명을 뒤집어쓴 92년 프랑스 알베르빌 겨울올림픽을 반면교사 삼아 환경이라는 비전을 올림픽에 훌륭하게 담아내며 아예 올림픽의 정체성을 바꿔버렸기 때문이다.

릴레함메르는 생태계 보호를 위해 산속에 동굴을 파 아이스하키 경기장을 지은 것을 비롯해 포크와 접시 등 소소한 일회용품조차 전분으로 만들어 미생물에 분해되도록 고안했다. 심지어 스키점프대를 세우며 생긴 화강암 쓰레기는 기념품으로 만들어 팔아 완벽한 ‘그린 올림픽’을 구현했다. 당연히 예산은 더 들었다. 동굴 경기장만 해도 일반 건축비에 비해 두 배 이상 돈이 들어갔다. 냉난방 등 관리비가 거의 들어가지 않아 장기적으로는 절감 효과가 오히려 크지만 당시로선 큰 결단이었다. 그럼에도 환경이라는 미래에 대한 비전을 전 세계에 보여준 덕분에 대회 기간 중 튀어나온 불만은 모두 묻히고 새로운 그린 올림픽 시대를 연 대회로만 기억된다.

그렇다면 평창올림픽은 어떨까. 문화·경제·친환경·정보통신기술(ICT)·평화의 다섯 가지 목표 가운데 정부가 평화 메시지에 집착하느라 개막 전 여러 우려가 있었다. 하지만 개막 후엔 선수들이 보여주는 감동적인 올림픽 정신에다 철저한 조직위의 준비, 자원봉사자들의 노력이 더해져 찬사로 바뀌었다. ‘평창의 문제점은 문제가 없다는 것’이라는 한 캐나다 일간지 보도를 비롯해 외신도 호평 일색이다.

그럼에도 현장에 가보면 아쉬움이 남는다. 다섯 가지 목표 중 세계인에게 각인될 비전이 잘 드러나지 않아서다. 가령 강릉 올림픽파크엔 환경올림픽을 홍보하는 ‘친환경 홍보관’이 있다. 그런데 바로 인근 관중 식당에 들어가면 접시와 수저 등 온통 플라스틱 일회용품 투성이다. 비단 위생 문제 때문만이 아니라 임시로 지은 천막 식당이라 땅을 파서 따로 수도관을 만드는 게 환경엔 더 안 좋기에 IOC가 차라리 일회용품 사용을 가이드라인으로 제시했다고 한다. 몇 가지 아쉬운 점에도 불구하고 조직위 희망대로 올림픽 사상 처음으로 ‘온실가스 배출 제로’를 달성하는 진정한 그린 올림픽 도시로 남을 수 있을까. 과연 평창은 뭘로 기억될지 궁금하다.

안혜리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