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오피니언 분수대

평창은 뭘로 기억될까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안혜리 기자 중앙일보 논설위원

'최악의 교통체증으로 관람 포기 속출''살인적인 물가로 관광객 고통''최고 40배 암표 극성''막대한 적자로 경제가 휘청'….
1994년 노르웨이 릴레함메르 겨울올림픽 당시 연일 전 세계 언론들이 쏟아낸 부정적 기사들이다. 하지만 24년이 지난 지금 릴레함메르 대회는 동하계를 통틀어 역사상 가장 성공한 올림픽 중 하나로 기억된다. 최악의 환경파괴대회라는 오명을 뒤집어쓴 1992년 프랑스 알베르빌 겨울올림픽(92년까지는 여름올림픽과 같은 해에 열림)을 반면교사 삼아 환경(그린)이라는 비전을 올림픽에 훌륭하게 담아내며 아예 올림픽의 정체성을 바꿔버렸기 때문이다.

릴레함메르 동굴 경기장 조감도.

릴레함메르 동굴 경기장 조감도.

릴레함메르는 생태계 보호를 위해 산 속에 동굴을 파 아이스하키 경기장을 지은 것을 비롯해 포크와 접시 등 소소한 일회용품조차 전분으로 만들어 미생물에 분해되도록 고안했다. 심지어 스키 점프대를 만들며 생긴 화강암 쓰레기는 픽토그램을 새긴 돌맹이 기념품으로 만들어 팔아 완벽한 그린 올림픽을 구현했다. 당연히 예산은 더 들었다. 동굴 경기장만 해도 일반 건축비에 비해 두 배 이상 돈이 들어갔다. 냉난방 등 관리비가 거의 들어가지 않아 장기적으로는 절감효과가 오히려 크지만 당시로선 큰 결단이었다. 하지만 1988년 서울 IOC총회에서 개최지로 선정되자마자 바로 다음해 '올림픽 시설 사용과 발전추진위원회'를 출범해 철저한 계획을 세우고, 환경이라는 미래에 대한 비전을 전 세계에 보여준 덕분에 대회기간 중 튀어나온 불만은 모두 묻히고 새로운 그린 올림픽 시대를 연 대회로만 기억된다. 릴레함메르의 성공 이후 IOC는 2000년부터 환경보호 계획 제출을 의무화해 개최지 선정의 주요 평가 기준으로 삼고 있다.
그렇다면 평창올림픽은 어떨까. 문화·경제·친환경·정보통신기술(ICT)·평화의 다섯 가지 목표 가운데 정부가 지나치게 평화 메시지에 집착해 무리수를 두느라 개막 전 여러 우려가 있었다. 하지만 막상 개막 후엔 선수들이 보여주는 감동적인 올림픽 정신에다 철저한 조직위의 준비, 자원봉사자들의 노력이 더해져 찬사로 바뀌었다. '평창의 문제점은 문제가 없다는 것'이라는 한 캐나다 일간지 보도를 비롯해 외신도 호평 일색이다. 토마스 바흐 IOC위원장은 점검을 위한 정례 일일 회의마저 건너뛸 정도로 유례없이 높은 만족도를 표시하기도 했다.
그럼에도 현장에 가보면 아쉬움이 남는다. 5가지 목표 중 세계인에게 각인될 비전이 뭔지 잘 드러나지 않아서다. 가령 강릉 올림픽파크 남문 쪽으로 들어가면 경기장보다 먼저 환경올림픽을 홍보하는 '친환경 홍보관'을 만나게 된다. 그런데 바로 인근 관중 식당에 들어가면 접시와 수저 등 온통 플라스틱 일회용품 투성이다.

평창올림픽 식당에선 일회용 식기와 수저를 쓴다. [SNS 캡처]

평창올림픽 식당에선 일회용 식기와 수저를 쓴다. [SNS 캡처]

비단 위생문제 때문만이 아니라 임시로 지은 천막 식당이라 땅을 파서 따로 수도관을 만드는 게 환경엔 더 안좋기에 IOC가 차라리 일회용품 사용을 가이드라인으로 제시했다고 한다. 설명을 들으면 수긍이 가면서도 릴레함메르가 전분 식기로 그린 올림픽에 대한 의지를 보여준 것같은 창의적인 발상이 없어 조금 아쉽다. 조직위는 평창 대회가 올림픽 사상 처음으로 '온실가스 배출 제로'를 달성하는 올림픽이 될 것으로 전망했다. 조직위 희망대로 그린 올림픽을 완성한 첫 도시로 남을 수 있을까. 과연 평창은 뭘로 기억될지 궁금하다. 안혜리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