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GM, 정부에 손 벌리며 8개 회생안은 외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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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책은행인 KDB산업은행이 지난해 12월 제너럴모터스(GM)에 총 8개 조항으로 구성된 요구안을 전달하고 이행을 촉구한 것으로 확인됐다. 하지만 GM은 요구안에 대한 별다른 응답 없이 두 달 뒤 일방적으로 군산공장 폐업을 발표하면서 한국 정부의 지원을 요청했다. 이동걸 산업은행 회장이 카허 카젬 한국GM 대표에게 직접 전한 이 요구안은 정부의 자금 지원을 위한 전제조건이자 최소한의 가이드라인 역할을 할 전망이다.

정부, 산은 통해 두 달 전에 전달 #흑자전환 대책, 물량 확대 등 요구 #사실상 자금 지원 가이드라인 #엥글 사장, 대여금 주식 전환 시사 #정부 요구안 수용 의사는 안 밝혀

산업은행이 올해 2월 작성한 ‘한국GM 사후관리 현황’이란 자료에 따르면 이 회장은 GM 측에 ▶흑자 전환 대책 ▶자본잠식 해소 방안 ▶GM 본사 대출금 금리 인하 ▶생산물량 확대 ▶산은의 감사권 행사 약속 ▶중장기 경영계획 ▶산은의 소수주주권 강화안 ▶분기별 재무 실적 등 8가지 사항을 요청했다. 정부의 자금 지원을 받으려면 한국GM이 먼저 경영정상화 방안을 제시하고 재무 상황을 투명하게 공개하라는 의미다. 정치권도 이날 배리 엥글 GM 해외사업부문 사장과의 국회 면담을 통해 한목소리로 GM의 성실한 자세를 촉구했다.

그러나 한국 정부와 국회 요구를 GM이 수용할지는 미지수다. 익명을 요구한 한 소식통은 “GM은 산업은행의 요구안에 대해 수용의사를 명확히 하지 않고 있다”고 전했다. 엥글 사장은 이날 국회 면담에서 신차 2종을 창원·부평공장에서 생산하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또 홍영표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에 따르면 엥글 사장은 본사가 한국GM에 빌려준 돈을 주식으로 전환할 수 있다고도 했다. GM의 대출액은 27억 달러(약 2조9000억원)다. 하지만 자신들의 요구사항을 밝히지도, 정부의 요구를 수용하겠다는 의사도 표명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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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 GM은 경영컨설팅과 주주감사권 행사 등 산은의 경영 개선 요구나 협조 요청을 번번이 거부하기도 했다.

GM이 이처럼 산은 요구를 무시한 데는 갈팡질팡했던 한국 정부의 관리 전략도 한몫했다. 2012년 GM은 산은이 보유한 17%의 지분을 사들이겠다고 비공식적으로 제안했으나 당시 산은은 한국GM 철수 가능성 등을 들어 GM 측 제안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러나 2015년에는 한국GM의 산은 지분을 2018년까지 매각하는 방안을 추진했다. 철수 가능성을 인식하고도 한국GM에서 손을 떼려 했다는 비판을 부른 대목이다.

전문가들은 자금을 지원하기 전에 자금 회수장치를 둬야 한다고 조언한다. 주원 현대경제연구원 경제연구실장은 “국민 세금이 떼일 가능성에 대비해 담보 확보 등 자금 회수장치를 둬야 한다”고 강조했다.

박해호 한국GM 담당장은 “회사가 세운 자구계획을 이행하느라 산은 요구안에 대한 답변이 미진했을 순 있지만 나름대로 성실히 협의해 나가고 있다”고 해명했다.

김도년·문희철 기자 kim.donyu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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