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원 삼킨 유독가스, 밀양 37명 참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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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 밀양시 가곡동에 있는 세종병원에서 26일 오전 7시25분 큰불이 나 37명이 숨지고 143명이 다쳤다. 불이 처음 난 곳으로 추정되는 병원 1층 응급실에서 한 소방관이 진화작업을 하고 있다. [송봉근 기자]

경남 밀양시 가곡동에 있는 세종병원에서 26일 오전 7시25분 큰불이 나 37명이 숨지고 143명이 다쳤다. 불이 처음 난 곳으로 추정되는 병원 1층 응급실에서 한 소방관이 진화작업을 하고 있다. [송봉근 기자]

시설은 허술했고 대응은 서툴렀다. 그 빈틈을 파고든 화마에 중소병원은 속수무책이었다.

세종병원 화재 사망자 중 34명이 60대 이상 … 대부분 질식사 #중소병원, 스프링클러·방염재 쓸 의무 없어 불나면 속수무책

26일 오전 7시25분 경남 밀양시 가곡동에 있는 의료법인 효성의료재단의 세종병원에서 불이 나 37명이 숨지고 143명이 다쳤다. 이 중 중상자가 7명이다. 사망자는 대부분 질식해 숨졌다. 거동이 불편하고 호흡기 기능이 저하된 노년층의 피해가 컸다.

사망자 중 2명이 30대, 1명이 40대, 그리고 나머지 34명이 60대 이상이었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 따르면 이 병원 환자의 70%가 70세 이상이다. 대개 폐렴과 천식, 호흡곤란, 고혈압을 앓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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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방 당국은 이날 불이 1층 응급실에서 시작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폐쇄회로TV(CCTV) 확인 결과 이 불은 1분도 안 돼 건물 내부의 내장재로 옮겨붙으면서 앞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맹렬한 화염과 연기를 내뿜었다. 최만우 밀양소방서장은 “화재 신고 3분 만에 첫 구조대가 도착했지만 대원들이 진입할 수 없을 정도였다”고 말했다. 연기와 유독가스는 중앙계단을 타고 건물 전체로 퍼졌다.

이 때문에 1층뿐 아니라 2~5층 입원실에서도 다수의 사상자가 났다. 세종병원은 철근 콘크리트 구조의 지상 5층(연면적 1489㎡) 건물로 1층에 응급실, 2~5층엔 입원실과 중환자실이 있다. 바로 옆에는 6층(연면적 1285㎡)짜리 세종요양병원이 있다. 당시 세종병원에 83명, 세종요양병원에 94명의 의료진과 입원 환자가 있었다. 이날 현장에서 사망한 환자는 14명으로 추정된다. 나머지는 병원 후송 중 사망했다. 소방 당국은 대부분 질식사로 숨진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1층에서 시작된 연기가 엘리베이터와 계단을 통해 위로 올라갔지만 고령 환자들이 제때 대피를 못해 피해가 커졌다. 화재 당시 독감으로 203호에 입원해 있던 김순남(68·여)씨는 “불이 난 뒤 간호사들이 1층으로 계속 내려오라고 했다. 하지만 이미 거기는 연기가 자욱했다”고 기억했다.

인명 피해가 커진 것은 세종병원과 같은 중소형 의료기관이 제도적으로 화재에 속수무책이기 때문이다. 세종병원엔 스프링클러가 없었다. 소방법상 4층 이상, 바닥 면적 1000㎡ 이상일 때만 설치하게 돼 있기 때문이다. 100병상 이상을 갖춘 종합병원과 달리 벽지 등 실내 내장재에 방염자재를 써야 할 의무도 없었다.

이 때문에 응급실에서 시작된 불이 급속히 유독가스를 내뿜어 피해를 키운 것으로 당국은 보고 있다. 건물 외벽은 제천 화재 때처럼 드라이비트 공법을 쓴 것으로 나타났다. 소방관들이 신고 3분 만에 도착해 진화작업을 하지 않았다면 훨씬 더 큰 참사로 이어질 수 있었다.

병원 측의 대응도 서툴렀다. 오전 7시25분에 화재가 난 뒤 직원 몇몇이 자체적으로 불을 끄려고 하다 7분이 지난 오전 7시32분에야 119 신고를 했다. 직원들이 대피하며 중앙통로로 연결되는 방화문을 닫지 않은 것도 희생자가 늘어난 원인이라고 소방 당국은 보고 있다. 손경철 효성의료재단 이사장은 “그동안 소방점검을 받아 왔고 병원 내 소화기 비치와 대피훈련 등 법령을 따라왔다”고 말했다.

밀양=위성욱·최은경·조한대 기자, 정종훈 기자 w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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