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방과후 영어 재검토 … 교육이 실험 대상인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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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교육부가 유치원·어린이집 방과후 영어 수업 금지 방침을 원점에서 재검토해 내년 초 시행 여부를 최종 결정키로 했다. 여론 수렴 과정도 없이 설익은 정책을 밀어붙이다가 거센 반발에 부딪혀 한발 물러선 것이다. 교육부는 당초 ‘선행교육 금지법’에 따라 올 3월부터 초등학교 1, 2학년 방과후 영어 수업이 금지되기 때문에 유치원·어린이집도 영어 수업을 금지한다고 밝혔다. 정책의 일관성을 이유로 내세웠다. 그러나 유아 영어 사교육을 부추기고 교육 격차가 더 벌어질 거란 우려가 쏟아졌다. 다급해진 여당이 브레이크를 걸었고 교육부는 황망히 백기를 드는 꼴이 됐다.

교육부의 갈팡질팡 행보는 비단 이번만이 아니다. 지난해 8월엔 수능 절대평가 개편안을 여론의 반발에 밀려 유예했다. 준비가 덜 된 상태에서 정책을 밀어붙이다 자초한 결과다. 2014년부터 찬반 논란을 거쳐 마련한 초등 한자 표기 정책도 올 들어 은근슬쩍 폐기했다. 교육부 정책이 ‘불쑥 정책’ 아니면 ‘슬그머니 정책’이란 비아냥이 나오는 이유다. 오죽하면 여권에서조차 교육부의 잇단 헛발질에 피로감을 호소하겠는가. “교육이 탁상행정의 표본”이라며 “교육부 장관은 정신 차려라”고 대놓고 질타할 정도다.

모두를 만족시키는 교육정책은 결코 쉬운 일은 아니다. 그런 만큼 충분한 여론 수렴과 당사자 간 협의가 긴요하다. 그런데도 교육부는 영어 수업 금지를 놓고 학부모 의견 수렴은커녕 부처·당정 간 협의도 제대로 거치지 않는 우를 범했다. 그러니 정책을 휴지로 만드는 사달이 나는 건 당연한 귀결이다. 교육부는 차제에 내년 초까지 영어교육 전반의 내실화 방안을 마련하겠다고 했다. 이번에도 어물쩍 ‘간보기’식 정책을 내놔선 곤란하다. 백년대계인 교육정책은 아니면 말고 식 실험 대상이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