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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이비트는 외벽 마감 공법 … 값싼 스티로폼 쓴 게 문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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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29명이 숨지고 31명이 다친 충북 제천시 복합상가(노블 휘트니스 앤 스파) 화재는 ‘안전관리 후진국’의 민낯을 총체적으로 드러낸 참사였다. 불난 건물 내·외장재는 불쏘시개나 다름없었다. 행정기관은 관리·감독을 제대로 하지 않았다. 정권마다 ‘안전 한국’을 외치지만 이번 화재 참사 현장을 보면 또 헛구호로 드러났다.

‘6층 이상’은 불 잘 붙는 단열재 못 써 #제천 건물, 규제 전 건축 신청해 예외 #규제 뒤 7층 → 9층 리모델링 과정 의문 #알루미늄 천장도 플라스틱으로 바꿔

화재 참사가 발생한 제천시 복합상가 건물은 건축법에 따라 지정된 ‘방화 지구’에 있다. 방화유리·창호 설치 등과 함께 외벽의 내화(耐火)재료 설치 등을 의무적으로 해야 한다. 건축법상 운동·위락시설 용도의 건축물, 6층 이상 또는 높이 22m의 건축물 외벽 마감재는 불에 잘 타지 않는 자재를 써야 한다. 하지만 이 상가 건물은 관련 규정이 시행(2010년 12월)되기 5개월 전에 건축허가 신청서를 제출했다는 이유로 법망을 피해 갔다.

[그래픽= 박경민·차준홍 기자 minn@joongang.co.kr]

[그래픽= 박경민·차준홍 기자 minn@joongang.co.kr]

이 건물 외벽은 ‘드라이비트(drivit)’ 공법을 적용했다. 이 공법은 건물의 외벽 공사를 마감할 때 단열재 위에 모르타르(시멘트 등의 회반죽) 등을 덮은 뒤 외장을 마감한다. 한국에선 1987년 한 업체가 미국의 드라이비트사와 합작해 이 공법을 처음 들여왔다. 이후 회사 이름인 ‘드라이비트’가 일반명사처럼 사용되고 있다.

한국에서 드라이비트 공법이 문제가 되는 것은 스티로폼이라고 불리는 ‘발포폴리스티렌’ 등 석유제품을 단열재로 많이 쓰기 때문이다. 화재가 난 복합상가도 스티로폼을 사용했다. 한 단열재 업체 관계자는 “미국 등은 내연성 단열재 사용 비중이 70%를 넘는데 한국은 가격이 3분의 1 수준으로 싸다는 이유로 유기 단열재를 대부분 사용한다”고 말했다.

공하성 경일대 소방방재학과 교수는 “국내엔 스티로품 같은 단열재로 지어진 건축물이 대부분인데, 법 적용 이전에 지어진 건물도 내연성 내장재로 바꾸도록 규제를 강화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국토교통부 관계자는 “문제를 알고 있지만 정부가 비용을 들여 기존 건물을 모두 개조할 수는 없어 난처하다”고 해명했다.

안전 규제를 더 강화해 5층 이하 건물 역시 가연성 단열재를 사용하지 못하게 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한 건설업체 관계자는 “5층 이하 건축물 단열재는 거의 모두 스티로폼이다. 안전성 측면에선 5층 이하 건축물도 불연재를 쓰도록 의무화하는 게 맞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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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이 처음 발생한 이 건물 1층 작업 환경의 후진성도 도마 위에 올랐다. 소방당국에 따르면 불은 1층 주차장 천장에 배관 열선 설치작업을 하던 도중 튄 불꽃이 방습을 위해 설치된 11mm 스티로폼에 옮겨붙었다. 이로 인해 불 붙은 스티로폼이 아래 주차장에 있던 차량으로 떨어지면서 옮겨붙어 불길이 번졌다. 하지만 작업 도중에 별다른 안전조치를 하지 않은 상태였다고 한다. 불은 주차장 내부 차량 15대와 외부 차량 1대를 태우고 가연성 외장재인 건물 외벽 드라이비트를 타고 순식간에 9층까지 옮겨붙었다. 당국은 이런 상황을 폐쇄회로TV(CCTV)를 통해 확인했다.

주민들은 1층 주차장에서 화염과 유독가스가 급격히 위층으로 확산된 이유에 대해 “애초 알루미늄 재질이던 천장 마감재를 최근 리모델링 과정에서 플라스틱 재질로 바꿨다”고 주장했다. 이 건물의 리모델링 과정도 석연찮은 구석이 있다. 이 건물은 2010년 8월 9일 사용 승인이 났다. 애초 7층이었던 건물은 2012년과 2013년 두 차례 증축을 거쳐 8층과 9층으로 각각 높아졌다. 이 건물은 몇 달간 문을 닫았다가 지난 10월 재개장했다. 공주대 건설환경공학부 정상만 교수는 “안전을 국가 정책의 최우선 순위에 둬 적극적으로 투자하고, 안전을 국민 생활 속 문화로 확산해야 한다”고 말했다.

제천=김방현·신진호·송우영 기자 kim.banghyu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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