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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리트 특권층의 영지 옥스브리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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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6면

김성탁 기자 중앙일보 논설위원
김성탁 런던특파원

김성탁 런던특파원

영국 양대 명문 옥스퍼드대와 케임브리지대를 함께 일컫는 ‘옥스브리지’에 어떤 학생이 입학하는지에 대한 자료가 최근 공개됐다. 데이비드 라미 하원의원이 2010년과 2015년의 입학 자료를 입수한 데 따르면 옥스브리지 입학생의 80%가량은 부모가 의사나 변호사, 고위 관리직 등 고소득층인 것으로 나타났다. 전국적으로 해당 고소득층은 31%인데, 옥스브리지의 관문을 뚫는 비율은 이보다 훨씬 높은 것이다. 이 비율은 2010년 79%에서 2015년 81%로 높아졌다.

옥스브리지 입학생을 배출하는 지역별 편차도 예상을 훨씬 뛰어넘는 수준이었다. 두 대학 모두 상위 8개 카운티에서 배출된 입학생이 전체의 25%가량을 차지해 쏠림 현상이 극심했다. 이들 상위 지역에는 런던시티를 비롯해 리치먼드 등 영국의 대표적인 부촌이 줄줄이 포함됐다. 옥스브리지 신입생 중 런던 등 잉글랜드 남동부 출신은 48%인 반면 잉글랜드 북부 등에선 입학생을 찾아보기 힘든 지역이 허다했다.

옥스브리지 출신은 영국 국민의 1%가 되지 않지만 총리나 판사, 공무원, 언론인 등 사회 주요 분야에 진출해 국가 운영에 큰 영향을 끼친다. 이런 대학의 합격률이 잘사는 지역과 못사는 지역에서 극명하게 엇갈리자 비판의 목소리가 터져나오고 있다. 라미 의원은 “소름 끼치는 입학 결과”라며 “옥스브리지가 여전히 특권층의 영지이자 오래된 사립학교 연합의 마지막 성으로 남아 있음을 보여준다”고 지적했다. 그는 “두 대학은 전국 모든 도시와 마을로부터 거둔 세금으로 매년 8억 파운드(약 1조1600억원)를 지원받는데, 지역별 불균형을 개선하지 않으면 그 많은 세금을 줄 이유가 없다”고 주장했다. 영국에선 명문 사립학교와 공부 잘하는 학생들이 모인 공립 그래머스쿨 출신 등이 상위 대학에 진학하는 구도가 굳어져 왔다. 사회계층의 형성과 유지에 일조한 측면이 있지만 영국 대학의 귀족적 배타주의와 엘리트주의는 수술대에 오르고 있다.

변화의 싹도 트고 있다. 옥스퍼드대에서 규모가 가장 작은 맨스필드칼리지는 올해 신입생 10명 중 9명을 공립학교 출신으로 채웠다. 재학생의 25%가 백인이 아니고, 25%는 잉글랜드 북부 출신이다. 이 칼리지가 전국 공립학교로 우수한 학생을 찾아나선 결과다. 이 칼리지는 기부금이 별로 없어 가난한 곳이지만, 기차표 비용이 없어 입학 전 학교를 방문할 기회를 못 갖는 낙후 지역 학생들을 위해 기금을 모금 중이다. 지진으로 수능이 연기된 한국에서도 특목고와 자사고, 강남 등 일부 지역 고교 출신의 상위 대학 합격률이 높다. 계층 이동을 돕는 사다리를 잘 만드는 일은 이제 대다수 국가에서 시급한 과제가 됐다.

김성탁 런던특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