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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가베와 김정은, 중국의 신외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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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신경진 기자 중앙일보 베이징 총국장
신경진 베이징 특파원

신경진 베이징 특파원

15일 새벽 짐바브웨 군부가 움직였다. 수도 하라레로 진격한 탱크가 국영 방송을 접수했다. 군은 37년간 철권통치로 왕좌를 차지했던 로버트 무가베(93)의 신병을 확보했다.

중국 관영 신화사는 같은 날 “시진핑(習近平) 특사 쑹타오(宋濤) 중앙 대외연락부장 17일 북한 방문” 뉴스를 타전했다.

이날 오후 중국 외교부 남쪽 청사 2층 블루룸 브리핑장. 먼저 영국 신문의 중국계 기자 질문이 창처럼 날았다. “짐바브웨 부통령(에머슨 므난가그와)이 이미 중국으로 도주했다는 소식이 있다. 진위를 확인해 달라.” 겅솽(耿爽) 대변인의 방패가 받았다. “짐바브웨는 중국의 우호 국가다. 정세를 예의 주시하고 있다”며 예봉을 꺾었다. “부통령 소재는 그가 중국에 오지 않았다고 확언한다”며 부인했다. 잘 다듬어진 답변이었다. “중국 국방부 사이트에 따르면 콘스탄틴 치원가 국방부 장관이 지난주 방문했다. 중국에 거사 계획을 알렸나?” 질문이 이어졌다. 겅솽 대변인은 “치원가 장군의 방중은 정상적인 군사 교류”라며 즉답을 피했다. 부정하지도 않았다. 여운이 남았다. 창과 방패의 공방은 이틀 뒤 이어졌다. “중국은 무가베를 줄곧 ‘라오펑유(老朋友·오랜 친구)’라 불렀지만, 그는 자산 국유화 정책을 추진했다. 대규모 투자국으로 우려는 없었나?” 경제정책을 이유로 쿠데타 사주 여부를 묻는 완곡한 질문이었다. “짐바브웨에 대한 우호 정책은 명확하다. 평등 호혜·협력 공영 원칙에 따라 우호 협력을 계속할 것”이라고 대답했다. 방패는 견고했다.

CNN 등 외신은 중국 배후설을 타전했다. 군 최고사령관 치원가 장군과 리쭤청(李作成) 연합참모장의 지난 8일 회동 시점은 그만큼 절묘했다. 짐바브웨 군부는 “대통령 주변의 범죄자를 겨냥한 작전이지 정권 찬탈은 아니다”고 주장했다. 부부 세습을 도모해 무가베 축출의 도화선이 된 부인 그레이스 무가베 역시 베이징 인민대를 졸업한 지중파다. 중국 사주설이 사실이라면 중국식 화평연변(和平演變·평화적인 체제 전환)의 시작이다.

한반도 나비효과는 가능할까. 쑹타오 방북 시점이 흥미롭다. 설명처럼 당대회 직후 특사 교환은 사회주의권의 전통이다. 하지만 무가베 축출을 고려하면 쑹타오가 들고 간 무언의 메시지는 분명하다. 쑹타오는 정치국원 양제츠(楊潔篪)와 함께 시진핑 2기 ‘신외교’의 양대 키맨이다.

물론 김정은은 무가베와 다르다. 연안파 숙청의 전통을 계승해 친중파 장성택을 처형하며 시진핑 1기 내내 맞섰다. 신시대 대국 외교를 내세운 시진핑과 김정은의 2라운드가 시작됐다. 한·미는 남 손만 빌리려 하지 말고 북·중의 동상이몽을 역이용하는 발상의 전환이 필요한 때다.

신경진 베이징 특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