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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글로벌 아이

시의원 워킹맘의 눈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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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윤설영 기자 중앙일보 도쿄 특파원
윤설영 도쿄 특파원

윤설영 도쿄 특파원

세계 곳곳에서 워킹맘들의 투쟁 소식이 들려온다. 이번엔 오가타 유카(緖方夕佳) 일본 구마모토 시의원이다. 그는 지난 22일 시 의회 회의장에 7개월 된 아들을 안고 들어왔다. 호주와 아르헨티나 여성 의원이 아이를 안고 발언대에 서거나 회의장에서 수유를 했던 것과 달리 오가타 의원은 다른 의원들의 항의를 받고 쫓겨나야 했다. 40분 뒤 회의장에 돌아온 그의 뺨엔 눈물이 흘렀다.

그의 행동이 갑작스럽게 이뤄진 쇼는 아니다. 그는 임신했을 때부터 젖먹이 아이를 회의장에 데려올 수 있게 해주거나 시 의회에 탁아소를 설치해 달라고 요청해왔다. 2년 전엔 의회 현장 시찰에 한 살짜리 젖먹이 딸을 데려온 적도 있다. 하지만 사무처는 “개인적으로 시터를 구하든가 알아서 하라” “동료 의원들과 상의해 보라”고 나 몰라라 했다. 오가타 의원은 “아무도 내 목소리를 들어주지 않아 비명이 될 지경”이었다고 토로했다.

이번 사건은 단순한 퍼포먼스로 봐선 안 된다고 생각한다. 워킹맘이 사회에서 어떤 취급을 받는지 보여주는 현실의 축소판이다. 그는 아이를 키우며 일하는 전형적인 ‘원 오페(ワンオペ·One Operation)’ 엄마다. 혼자서 물건 진열, 청소, 계산대까지 도맡아 일하는 편의점의 ‘원 오페’ 직원처럼 혼자 일과 육아를 전담하는 처지다.

그가 혼자 발을 동동 구르고 있을 동안 누구도 그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지 않았다. 구마모토 시 의회엔 6명의 여성 의원이 있는데 아무도 도움의 손길을 내밀지 않았다. “의원 외에는 아무도 회의장에 들어올 수 없다”는 규정 한 줄만 바꿨으면 될 일이다.

이번 사건이 일반 기업이 아닌 의회에서 일어났다는 점도 놀랍다. 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 ‘저출산·고령화’ 상황이 ‘국난(國難)’이라고 칭했던 게 무색할 정도다. 정치권의 의식이 이 정도라면 이 사회에서 뭘 기대할 수 있을까.

한국이라고 상황이 크게 다르지 않다. 오가타 의원처럼 속앓이를 하고 있는 워킹맘이 우리 사회에도 많다. 동료·상사 눈치 보느라 아이가 아파도 퇴근 못하고, 법으로 보장된 육아 휴직도 제대로 못 쓰는 여성을 주변에서 수없이 본다. 한국 국회 본회의장에 용기 있게 아이를 안고 들어올 수 있는 여성 의원이 누가 있을까. 그 여성 의원을 따뜻한 눈으로 봐줄 수 있는 동료 의원은 얼마나 있을까.

‘아이는 축복’이라고 말로만 하지 말고 당장 옆자리 여성 동료의 얘기에 귀 기울여보는 게 먼저다. 이번 사건을 계기로 일본에서도 엄마들이 일하기 더 좋은 곳으로 바꾸기 위한 사회적 논의가 활발해지기를 바란다. 일본 여성 동지들의 건투를 빈다.

윤설영 도쿄 특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