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솟는 국제유가 … 내년 전망은 안갯속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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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3면

바닥을 헤매던 국제유가가 7월 이후 상승세를 타고 있다. 지난 6월 말 배럴당 40달러대까지 떨어진 국제유가는 4개월 만인 이달 초 60달러(브렌트유 기준)를 넘어섰다. 이런 상승세는 2년 반 만에 최고 수준이다. 국제 유가가 오르고 내리는 이유는 복합적이다. 석유수출국기구(OPEC)의 원유 감산 약속이 효과를 보고 있다는 시각과 사우디아라비아를 중심으로 한 중동 지역의 정치적 긴장 때문이라는 분석이 공존한다.

“사우디·이란 갈등으로 유가 상승” #다른 쪽선 “원유 수요 줄어 내릴 것” #미국 셰일 석유로 값 안정 시각도 #OPEC 30일 추가 감산할지 주목

내년 가격 전망은 불투명하다. 가장 기본이 되는 내년도 석유 수요 전망조차 발표 기관마다 엇갈리기 때문이다. OPEC은 이달 30일 오스트리아 빈에서 정례 회의를 연다. 감산 연장과 추가 감산을 둘러싸고 치열한 논쟁이 일 것으로 예상된다. OPEC 회원국과 러시아를 비롯한 10개 OPEC 비회원국은 1년 전 세계 원유 생산량을 2%가량 줄이는 데 합의하고 감산을 이행했다.

[그래픽=이정권 기자 gaga@joongang.co.kr]

[그래픽=이정권 기자 gaga@joongang.co.kr]

14일(현지시간) 국제유가는 소폭 하락했다. 이날 뉴욕상업거래소(NYMEX)에서 12월 인도분 서부 텍사스산 원유(WTI)는 전날보다 배럴당 1.9%(1.06달러) 하락한 55.70달러에 거래를 마쳤다. 런던 ICE 선물거래소의 내년 1월물 브렌트유는 배럴당 1.45%(0.92달러) 떨어진 62.24달러에 거래됐다.

이날 국제유가 하락은 국제에너지기구(IEA) 보고서의 영향이 컸다. IEA는 올해와 내년 세계 석유 수요가 각각 일평균 150만 배럴과 130만 배럴씩 증가할 것으로 전망했다. 이는 기존 IEA 전망치에서 각각 10만 배럴씩 하향 조정한 수치다. 보고서는 “국제유가가 오르고 예년보다 따뜻한 겨울이 예상되면서 수요 증가에 제동이 걸렸다. 소비가 줄고 일부 생산국의 공급이 급격히 증가해 2018년 상반기 원유 공급 과잉을 초래할 가능성이 있다”고 밝혔다.

이는 OPEC의 전망과는 다소 차이가 있다. OPEC은 최근 월간 보고서에서 올해와 내년 원유 수요 전망치를 상향 조정했다. 내년 석유 수요를 올해보다 하루 40만 배럴 증가한 3340만 배럴로 전망했다. 이는 지난 3분기 OPEC의 생산량보다 하루 67만 배럴 많은 량이다. IEA의 하루 수요 전망치(3240만 배럴)보다 100만 배럴 많다.

전문기관마다 서로 다른 수요 전망을 함에 따라 OPEC 국가들이 추가 감산에 합의할 수 있을지 불투명해졌다. 애초 투자자들은 감산 기간 연장을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였다. 블룸버그는 “감산 연장에 대한 기대감이 최근 유가 상승을 이끈 측면도 있다”고 전했다.

에드 모스 씨티그룹 글로벌 커머디티 리서치 헤드는 “사우디와 러시아가 주도한 감산이 원유 가격을 2년 반 만에 최고점으로 이끌었다. 이를 연장하지 않으면 가격이 폭락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사우디와 러시아의 ‘브로맨스(브러더+로맨스)’가 깨질 경우 트레이더들이 실망해 원유를 대거 내다 팔 수 있다”고 덧붙였다. 모하메드 바르킨도 OPEC 사무총장도 “유가 안정을 위해서는 감산만이 유일한 선택”이라고 말했다.

무함마드 빈 살만 알사우드 사우디아라비아 왕세자는 OPEC 회의에서 추가 감산을 지지하겠다고 밝혔다. 사우디아라비아와 정치적 긴장 관계에 있는 이란의 아미르 자마니니아 에너지 담당 차관도 “수요와 공급의 균형을 위한 OPEC의 감산 결정을 지지한다”고 말했다. 블룸버그는 “사우디아라비아와 이란은 정치적으로 서로 칼을 겨누고 있지만, OPEC 내에서는 한 편”이라고 전했다.

열쇠는 러시아가 쥐고 있는 모양새다. 러시아는 감산 지지 여부를 아직 결정하지 않았다. 알렉산드르 노박 러시아 에너지장관은 “에너지 기업과 논의하겠다”고 말했다.

중동 사태도 변수다. 국제 원유 전문가인 닉 버틀러는 블룸버그 칼럼에서 “지난 4주 동안 국제유가가 거의 20%가량 올랐다”며 “수요와 공급이 크게 변하지 않은 상황에서 가격이 급등한 것은 향후 중동 지역의 정치지형 변화에 대한 우려를 반영한 것”이라고 분석했다.

국제 원유 시장에서 가격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칠 정치적 변수는 사우디와 이란의 긴장 고조다. 세계 석유 공급의 약 20%를 담당하는 호르무즈해협의 긴장 고조는 유가 상승으로 직결된다. 미국 셰일 석유 생산도 변수다. 미국 정부는 다음달 미국산 셰일 석유 생산량이 하루 평균 8만 배럴 증가할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국제유가가 오름세를 보이면 셰일 석유의 채산성이 높아져 셰일업자들이 생산량을 즉각 늘릴 수 있다. 그래서 유가가 과거처럼 급격히 오르기 힘들 것이라는 전망에 힘이 실린다.

박현영 기자 hypar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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