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 대통령, 인니와 '특별 전략적 동반자 관계' 격상…'신남방정책' 공식 천명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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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대통령이 9일(현지시간) 조코 위도도(조코위) 인도네시아 대통령과의 정상회담에서 양국 관계를 ‘특별 전략적 동반자 관계’로 격상하는 내용의 공동 비전 성명을 채택했다. 동남아 국가와 공동 비전 성명을 채택한 건 이번이 처음이다.

문 대통령, 인니 정상회담서 아세안 첫 공동비전 성명 채택 #'신(新)남방정책' 선포…"2020년까지 아세안서 中 잡는다" #'역사적 유사성' 강조하며 쇼핑몰서 전통옷 구입 깜짝행보 #

인도네시아를 국빈 방문 중인 문재인 대통령이 인도네시아 조코 위도도 대통령과 함께 9일 오후 보고르 대통령궁 테라타이 홀에서 열린 공동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청와대 사진기자단

인도네시아를 국빈 방문 중인 문재인 대통령이 인도네시아 조코 위도도 대통령과 함께 9일 오후 보고르 대통령궁 테라타이 홀에서 열린 공동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청와대 사진기자단

양 정상은 이날 오후 인니 수도 자카르타에서 60㎞ 떨어진 보고르 대통령궁에서 열린 조코위 대통령 주최 환영식과 정상회담에서 지난 2006년 수립된 ‘전략적 동반자 관계’를 격상하며 “양국의 협력을 구체화하고 지역 및 전 세계에 대한 기여를 강화하자”고 합의했다. 양 정상은 이날 회담에서 산업·교통·보건 분야의 정부 간 협력 양해각서(MOU)를 비롯, 11건의 MOU도 채결했다.

문 대통령은 회담 후 연 공동 기자회견에서 “안보에서 양국 간 전략적 소통이 원활해질 수 있도록 외교·국방 당국이 모두 참여하는 회의체를 모색하기로 했다”며 “차세대 전투기 개발 사업의 원만한 진행을 포함해 방산 분야에서 협력의 폭과 깊이를 더해 가기로 했다”고 말했다. 조코위 대통령도 "북한은 한반도 비핵화를 위해 모든 유엔의 제재에 복종하고 미사일 발사를 중단해야 한다"며 "문 대통령이 (북한과의) 대화 가능성을 열고 있는 것도 높이 평가한다"고 말했다.

인니를 비롯한 아세안 10개국은 모두 남북한과 동시 외교 관계를 맺고 있다. 청와대 핵심 관계자는 “한·미 동맹을 중심으로 한 북한에 대한 제재 국면에서도 동남아 국가의 역할이 절실하다”고 말했다.

문 대통령도 이날 방송된 싱가포르 ‘채널뉴스아시아’와의 인터뷰에서 “아세안 국가들이 북핵 문제의 평화적 해결과 한반도 비핵화에 한 목소리를 내주면 큰 도움이 될 것”이라며 “아세안 국가들이 북한과 다양한 관계를 맺고 있기 때문에 유엔안보리 결의에 의한 강도 높은 제재들을 함께 성실히 이행해주면 그것도 북핵 문제 해결에 큰 도움이 될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문 대통령은 정상회담에 앞서 아세안(ASEAN·동남아시아국가연합)과의 협력을 주변 4강국 수준으로 높이는 내용의 ‘신(新)남방정책’을 내놨다.

인도네시아를 국빈방문 중인 문재인 대통령이 9일 오후 보고르 대통령궁 베란다에서 조코 위도도 대통령과 얘기를 나누고 있다. 청와대 사진기자단

인도네시아를 국빈방문 중인 문재인 대통령이 9일 오후 보고르 대통령궁 베란다에서 조코 위도도 대통령과 얘기를 나누고 있다. 청와대 사진기자단

 그는 자카르타 리츠칼튼 호텔에서 열린 ‘한·인니 비즈니스 포럼’에서 “아세안과의 협력 관계를 획기적으로 발전시키기 위한 ‘신남방정책’을 강력하게 추진하겠다”며 “양측 국민의 삶을 잇는 인적 교류 활성화는 모든 협력을 뒷받침해 주는 튼튼한 기반이 될 것”이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사람과 사람, 마음과 마음이 이어지는 ‘사람(People) 공동체’, 안보 협력을 통해 아시아 평화에 기여하는 ‘평화(Peace) 공동체’, 호혜적 경제 협력을 통해 함께 잘사는 ‘상생번영(Prosperity) 공동체’를 함께 만들어 가자”고 제안했다.

인도네시아를 국빈 방문중인 문재인 대통령 내외가 9일 오후(현지시간) 보고르 대통령궁에서 조코 위도도 인도네시아 대통령이 마련한 공식환영식에 참석해 국기의례를 하고 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인도네시아를 국빈 방문중인 문재인 대통령 내외가 9일 오후(현지시간) 보고르 대통령궁에서 조코 위도도 인도네시아 대통령이 마련한 공식환영식에 참석해 국기의례를 하고 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김현철 청와대 경제보좌관은 이와 관련, “아세안 진출 전략의 핵심이 문 대통령이 언급한 ‘3P’”라며 “우리는 물량으로는 중국이나 일본과 경쟁할 수 없다. 전략의 핵심은 차별화”라고 설명했다.

문 대통령은 아세안과의 무역 확대 목표로 ‘2020년까지 교역량 2000억 달러’를 제시했다. 이는 현재 아세안과의 교역 1위인 중국의 연간 교역량(2100억 달러)에 육박하는 수준이다. 인니는 아세안 전체 인구와 국내총생산(GDP), 면적 등에서 모두 아세안 10개국 전체의 40%를 차지하는 동남아의 중심 국가다.

인도네시아를 국빈방문 중인 문재인 대통령과 조코 위도도 인도네시아 대통령이 9일 오후 보고르 대통령궁 테라타이홀에서 열린 양국 MOU 서명식에서 백운규 산업통상자원부 장관과 아이르랑가 하르타르토 인도네시아 산업부 장관이 '산업협력' MOU 체결 사인을 지켜보고 있다. 청와대 사진기자단

인도네시아를 국빈방문 중인 문재인 대통령과 조코 위도도 인도네시아 대통령이 9일 오후 보고르 대통령궁 테라타이홀에서 열린 양국 MOU 서명식에서 백운규 산업통상자원부 장관과 아이르랑가 하르타르토 인도네시아 산업부 장관이 '산업협력' MOU 체결 사인을 지켜보고 있다. 청와대 사진기자단

문 대통령은 첫 국빈 방문국인 인니에서도 특유의 ‘역사 코드’를 활용해 친밀감을 드러냈다.

그는 “양국이 공식 수교한 것은 1973년이지만, 600여 년 전 조선왕조 시대에 자바(Java)국의 사신이 두 차례 방문했다는 기록이 역사서에 남아 있다”며 “자바 국왕이 인도네시아 토산물을 보냈고 조선의 국왕 태종이 옷과 음식을 주며 사신을 후하게 대접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한국은 (일본의) 식민지 지배를 경험했고 권위주의 체제를 겪었다”며 “(아세안과) 비슷한 처지의 나라이기 때문에 한국과의 협력 확대는 아주 편하게 될 것”이라고도 했다.

 인도네시아 국빈 방문중인 문재인 대통령이 9일 오후(현지시간) 조코 위도도 인도네시아 대통령과 보고르대통령궁 인근 비티엠 보고르몰로 이동하며 카트차에서 대화하고 있다. 청와대 사진기자단

인도네시아 국빈 방문중인 문재인 대통령이 9일 오후(현지시간) 조코 위도도 인도네시아 대통령과 보고르대통령궁 인근 비티엠 보고르몰로 이동하며 카트차에서 대화하고 있다. 청와대 사진기자단

인니는 과거 350년간의 네덜란드 식민 통치에 이어 제2차 세계대전 때는 일본의 통치를 받은 경험이 있다. 이후 오랜 독재 체제와 탄핵 등을 거쳐 2004년 최초로 직선제 대통령을 배출한 나라다.

 현 조코위 대통령은 2014년 당선된 두번째 직선제 대통령으로, 정치 엘리트가 아닌 첫 서민 대통령으로 평가된다. ‘부패 척결을 통한 정치개혁’을 공약으로 내세운 점도 ‘적폐청산’을 약속했던 문 대통령과 유사하다.

인도네시아 국빈 방문중인 문재인 대통령이 9일 오후(현지시간) 조코 위도도 인도네시아 대통령과 보고르대통령궁 인근 BTM몰로 이동하여 인도네시아 대통령으로부터 전통의상 바틱을 선물 받은뒤 함께 입어보고 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인도네시아 국빈 방문중인 문재인 대통령이 9일 오후(현지시간) 조코 위도도 인도네시아 대통령과 보고르대통령궁 인근 BTM몰로 이동하여 인도네시아 대통령으로부터 전통의상 바틱을 선물 받은뒤 함께 입어보고 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조코위 대통령은 이날 단독 정상회담과 확대 정상회담 사이에 문 대통령을 인근에 있는 서민들이 주로 이용하는 마트로 인도했다. 마트까지 문 대통령을 태운 전기카트를 직접 운전했다. 조코위 대통령은 인니의 전통 염색 방식으로 만든 옷 바틱(Batik)을 구입해 문 대통령에게 선물했다.

쇼핑몰 방문은 동남아 순방 전 “서민행보로 유명한 조코위 대통령과 시장이나 국민이 사는 모습을 함께 보는 것이 어떠냐”는 문 대통령의 제안에 따라 이뤄졌다. 조코위 대통령이 직접 카트를 운전하는 일정은 인니측의 ‘깜짝 화답’이었다.

자카르타=강태화 기자 thka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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