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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불 발언 복기와 사드 갈등의 교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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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영준 기자 중앙일보
예영준 베이징 총국장

예영준 베이징 총국장

1년 반 가까이 끌던 한·중 갈등이 봉합된 건 다행스러운 일이다. “사드 철회 이외의 다른 방법은 없다”던 중국이 왜 사드를 덮어둔 채 관계 개선에 합의한 것일까. 혹자는 한국은 실리를 챙기고 중국은 체면을 차렸다고 평가한다. “사드 추가 배치도, 미사일방어(MD) 체계 편입도, 한·미·일 군사동맹도 없다”는 강경화 외교부 장관의 ‘3불(三不)’ 발언은 중국의 체면을 세워 주기 위한 고육책이었다는 의미다. 과연 중국은 이를 체면용으로만 간주했을까. 결코 그렇지 않다고 본다. 정부는 아무런 이면 합의도 없었고 중국의 요구에 따른 약속도 없었다고 하지만 곧이곧대로 듣기 어려운 대목이 있다.

첫째, 발언의 상황이 그렇다. 강 장관 발언은 합의문 발표 하루 전 국회에서 박병석 의원의 질문에 답하는 형식으로 나왔는데 박 의원은 ‘3불’의 세 가지를 꼭 집어서, 그것도 표현이나 단어 선택 하나 어긋나지 않게 말했다. 합의문 내용을 누군가가 알려줬다는 얘기가 된다. ‘약속 대련’을 의심케 하는 부분이다.

둘째는 답변의 내용이다. 합의문에는 중국의 세 가지 우려 사항만 나열돼 있지, ‘불(不)’자는 한 군데도 없다. 중국은 우려했고 한국은 이를 주의해서 들었을 뿐 앞으로 어떻게 하겠다는 내용은 합의문에 없다. 그렇다면 국정감사에서 질문이 나왔어도 발표문 수준의 답변으로 넘어갈 수 있었다. “중국이 그런 우려를 갖고 있다는 점을 잘 안다. 긴밀한 소통으로 우려를 불식시키고 관계 개선을 위해 노력 중이다”는 정도가 평소 외교부 스타일에 따른 모범 답안이었을 것이다. 그런데도 굳이 강 장관은 세 가지 모두에 ‘불’자를 새겨 넣어 답했다.

요컨대 ‘3불 원칙’을 문서화하자는 중국의 요구에 한국이 난색을 표시했고, 결국은 책임 있는 당국자가 구두로 표시하는 선에서 중국이 받아들이는 것으로 절충이 이뤄진 결과일 것이다. 이는 강 장관 발언 이후 중국의 태도를 보면 더욱 명확히 드러난다. 중국 외교부 산하 국제문제연구원의 양시위 시니어 펠로는 “한국이 미국에 얽매이지 않겠다는 의지를 표명했다. 사드에 대한 중국의 가장 큰 전략적 우려가 해소됐다”고 말했다. ‘3불’ 발언을 체면용이 아니라 중국의 전략적 이익과 직결된 중대 문제로 봤다는 의미다.

더 중요한 것은 중국이 한국을 대하는 전략적 관점이 이번 합의 과정을 통해 분명히 드러났다는 점이다. 중국은 미국(+동맹국)과의 전략적 경쟁 구도 속에서 한·중 관계와 한·미 관계를 저울질하며 한국에 대한 밀고 당기기를 적절히 안배한다. 이 점만큼은 박근혜 정부 초·중반의 밀월기나 사드 빙하기, 그리고 다시 찾아온 해빙기에도 근본적 변화가 없을 것이다. 사드 갈등을 겪으면서 비싼 대가를 치르고 얻어낸 가장 귀중한 교훈은 여기에 있다.

예영준 베이징 총국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