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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의 어게인 2016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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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정효식 기자 중앙일보 사회부장
정효식 워싱턴 특파원

정효식 워싱턴 특파원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지난 8일 중국으로 향하는 에어포스원 기내에서 최측근 5명과 대선 승리 1주년을 자축했다. 대통령 보고서를 수발하는 로버트 포터 백악관 부속실장, 트위터를 관리하는 대니얼 스캐비노 소셜미디어 국장, 사위인 재러드 쿠슈너 선임고문, 연설문을 전담하는 스티븐 밀러 정책보좌관과 호프 힉스 공보국장 등 캠프 출신 젊은 보좌진과 ‘엄지 척’을 하는 기념사진을 찍어 트위터에 공개했다. “304 대 227이란 압도적인 선거인단 승리를 안겨준 모든 개탄스러운 사람들을 축하한다”는 글도 함께 올렸다. ‘개탄스러운 사람들(The deplorable)’이란 민주당 힐러리 클린턴 후보가 대선 때 트럼프 대통령 지지자들은 편견이 심한 집단이라며 비난하며 쓴 표현이다. 딸 이방카도 자신의 인스타그램에 사진 7장을 올리며 “엄청난 한 해였다. 정확히 1년 전, 위대한 나라를 위한 아버지의 헌신과 열정에 자부심을 느낀다”고 자축했다.

아시아 순방 중이라 텅 빈 백악관엔 축하 화환도, 플래카드도 없었지만 사실 트럼프 대통령은 1년 동안 과할 정도로 대선 승리를 자랑해 왔다. 9일 오후 중국 베이징 인민대회당에서 열린 미·중 경제인 행사에서도 “너무너무 유명하고 지금 매우 중요한 11월 8일 선거 이래로 미 주식시장은 5조5000억 달러의 가치를 더해 사상 최고이며 실업률은 17년래 최저다. 대선 이후 미국에 나타난 위대한 일들이 너무 많아 일일이 언급하기 어렵다”고 했다. 트럼프식 어게인 2016이다.

워싱턴포스트에 따르면 트럼프 대통령은 대선 이후 초반 6개월은 사흘에 한 번, 365일 통틀어선 닷새에 한 번꼴로 대선 승리를 자랑하거나 상대 클린턴 후보를 비판하는 공개 발언을 했다. 클린턴은 대선 패배 이후 “2020년 대선에 도전할 계획이 없다”고 거듭 밝히고 있지만 최근 한 달 동안에만 비난하는 트윗을 14번 했다. “사기꾼 힐러리가 다음 대선에 나오길 바란다” “사기꾼 힐러리가 민주당 대선후보 경선을 버니 샌더스에게 도둑질했다” 등이다. 이런 대통령의 트윗만 읽다 보면 1년 전 끝난 미국 대선이 아직 한창 진행 중이라고 생각하게 만들 정도다.

이게 착각은 아니다. 내년 11월 6일 미 연방 하원의원 435명 전원과 상원의원 100명 중 33명을 뽑는 중간선거가 있다. 또 2020년 재선을 위해 트럼프 대통령 본인도 대선자금 모금을 지난 6월 시작했다. 한국처럼 선거운동 규제가 없기 때문에 유력 주자가 없는 민주당을 대신해 힐러리 때리기에 집중하는 것이다. 문재인 정부 6개월도 촛불 혁명과 적폐청산 구호가 잦아들긴커녕 점점 거세지는 게 거울상처럼 닮았다. 내년 6월 지방선거는 물론 2022년 대선을 위한 어게인 2017로 보인다.

정효식 워싱턴 특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