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와대 ‘여론조사비 5억’ 이헌수가 ‘북악스카이웨이’서 전달
"이헌수 당시 국가정보원 기획조정실장이 북악스카이웨이에서 청와대 사람을 만나 현금 5억원을 전달했다." 검찰 관계자가 전한 박근혜 정부 시절 청와대가 국정원 특수활동비를 전달받은 과정이다. 검찰에 따르면 이 돈은 지난해 4ㆍ13 총선에 이른바 '진박계'(진짜 박근혜라는 의미) 예비 후보들의 경쟁력을 확인해 보는 여론조사 비용으로 쓰였다.
청와대 인근 ‘북악스카이웨이’서 접선 #안봉근, 이재만 영장 청구서에 적시 # 이헌수 전 국정원 기조실장 역할 주목
서울중앙지검 특수3부(부장 양석조)는 이헌수 전 국정원 실장이 이 돈을 직접 건넸다는 관계자 진술을 확보했다. 당시 청와대는 비공식적으로 여론조사 업체 A사에 의뢰해 조사를 벌였으나 대금을 지급하지 못했다. 총선 후 4개월가량 지난 2016년 8월 청와대 정무수석실 직원이 국정원에 요구해 현금 5억원을 받아 지급했다는 게 검찰 조사 내용이다.
검찰은 이 돈을 주고받는 데 관여한 관계자들을 추가 조사해 접촉 장소가 청와대 인근인 서울 성북구 북악스카이웨이였음을 확인했다.
이러한 내용은 1일 법원에 제출된 안봉근(51) 전 청와대 부속비서관과 이재만(51) 전 청와대 총무비서관에 대한 구속영장 청구서에 적시됐다. 검찰은 북악스카이웨이가 청와대와 가까우면서도 폐쇄회로 TV(CCTV)가 없고 인적이 뜸한 곳이라 ‘접선’ 장소로 고른 것으로 추정했다.
검찰과 정치권 등에서는 이번 사건의 ‘키맨’ 역할을 하고 있는 이 전 실장에 주목하고 있다. 박근혜 정부 내내 국정원 돈과 인사에 관여한 국정원 핵심 실세였던 그가 특수활동비 청와대 상납 사실 관련 조사를 받으면서 수사가 급물살을 탔기 때문이다.
이 전 실장은 마산고와 연세대 행정학과를 졸업하고 1981년에 공채로 국정원에 들어갔다. 국정원에선 기획예산관과 국정원장 비서실장 등을 거쳤다. 이후 박근혜 정부 출범 초기인 2013년 4월에 기조실장으로 발탁됐다. 박근혜 정부에서 원장과 2·3차장 등 국정원 핵심 인사들은 바뀌었지만 이 전 실장은 계속 그 자리를 지켰다.
이 전 실장이 박근혜 정부 내내 기조실장 자리를 유지한 것은 이른바 이 전 비서관 등의 '문고리' 권력과 가까웠기 때문이었다는 말이 나온다. 자유한국당 관계자는 “지난 2014년쯤 김기춘 청와대 비서실장이 이헌수 전 실장을 내치려고 하자 청와대 핵심 비서관들이 이를 막았다는 소문이 돌기도 했다”고 말했다.
박지원 국민의당 의원은 2014년 10월에 “이헌수 기조실장의 인사 문제에는 청와대 실세들이 개입돼 있다”고 주장했다.
현일훈 기자 hyun.ilhoon@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