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정부 탈원전 드라이브···국민이 브레이크 걸었다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공론조사 결과

공론조사 결과

시민참여단이 문재인 정부의 신고리 5·6호기 건설 중단 방침에 브레이크를 걸었다. 신고리5·6호기공론화위원회는 20일 공론조사 결과 '건설재개'로 결론이 났다고 발표했다.

공론화위, 공사 재개 방향 권고안 발표 #초박빙 예상 깨고 19%포인트 큰 격차 #원전 축소 정책은 53.2%가 지지 #정부, 24일 국무회의서 건설재개 결정 #탈원전 정책 추진 강행에 타격 불가피 #“신규원전 건설 축소해야” 의견 많아 #정부 탈원전 추진에 도움될 수도 #전문가, “5,6호기 짓고 노후 원전 폐로” #양쪽 입장 받아들이는 해결책 될 수 있어 #

공론화위는 이날 오전 10시 정부서울청사에서 브리핑을 열고 정부 권고안을 공개했다.  시민참여단의 최종 4차 조사결과 건설재개 의견이 59.5%로 건설중단 의견 40.5%보다 19%포인트 높았다. 이에 따라 '건설재개'로 결론났다. 정부는 시민참여단의 결론을 전적으로 수용한다는 입장이어서 신고리 5·6호기 공사는 신속하게 재개될 전망이다.

 김지형 공론화위원장은 "시민참여단 471명의 최종 4차조사결과 오차범위는 95% 신뢰수준에서 ±3.6% 포인트로 산출됐다.그리고 양쪽 의견의 편차는 정확히 19%포인트 차이가 나는 것으로 확인됐다"며 "표본 추출 오차범위 벗어나 통계적으로 유의미한 차이를 보였다"고 설명했다.

 김 위원장은 "조사회차를 거듭할수록 건설재개 비율이 높아졌다"며 "모든 연령대에서 조사회차를 거듭할수록 건설재개의 비율이 증가했다. 특히 20대, 30대의 경우 증가 폭이 더 컸다"고 말했다.  다만 시민참여단은 정부가 원전비중을 어떻게 가져가야 할 것인지를 묻는 질문에 53.2%가 '축소'(유지 35.5%)를 권고함으로써 새 정부 원전 축소 정책에는 힘을 실어줬다.

신고리 원전

신고리 원전

이어 "위원회는 현재 공사가 일시중단 중인 신고리5·6호기에 대해 건설을 재개하도록 하는 정책결정을 정부에 권고한다"고 발표했다. 공론화위가 출범한 7월 24일 이후 여러 차례 “공론화위 결정을 따라 신고리 5, 6호기 건설 재개 여부를 결정하겠다”고 밝혀온 정부도 조만간 건설 재개에 나설 수밖에 없을 것으로 보인다.

신고리 5, 6호기는 지난해 6월 착공을 시작해 현재 공정률이 약 29%다. 이미 1조6000억원의 사업비가 투입됐다. 여기에 사업 중단에 따른 보상비용 1조2000억원가량이 들 수 있었다. 하지만 공사재개로 결정이 나게 됨에 따라 이 같은 비용은 들지 않게 될 것으로 보인다.

공사는 곧 시작될 것으로 보인다. 공사 재개 절차는 크게 복잡하지 않다. 24일 문재인 대통령이 주재하는 국무회의에서 신고리 5ㆍ6호기 공사 재개로 결정을 내린다면, 한국수력원자력이 곧바로 이사회를 열고 공사를 계속하도록 의결하면 된다. 이렇게 되면 지난 100일간 멈췄던 신고리 5ㆍ6호기는 다시 공사에 착수하게 된다.

시민참여단의 결정은 원전 수출을 비롯해 꼬인 에너지 정책의 실타래를 풀 수 있는 계기를 만들게 됐다. 특히 약 29% 지어진 신고리 5, 6호기가 완성되지 않으면 국내 원전 생태계가 무너질 수밖에 없는데 일차적으로 이 같은 우려를 잠재우게 된다.

다만 공사를 재개해도 보상절차는 진행해야 한다. 일시 중단으로 인해 신고리 5, 6호기 공사 협력업체 등이 입은 피해에 대한 비용 때문이다. 하지만 산업통상자원부와 한수원이 최근 국정감사에서 공사 일시중단 기간 동안 협력업체 등이 정당하게 지출한 비용에 대해선 보상 조치를 하겠다는 뜻을 밝혀왔기 때문에 보상절차는 신속히 이뤄질 것으로 보인다.

김지형 신고리 5·6호기 공론화위원장이 20일 오전 정부서울청사에서 '건설 재개' 권고를 발표하고 있다. [연합뉴스]

김지형 신고리 5·6호기 공론화위원장이 20일 오전 정부서울청사에서 '건설 재개' 권고를 발표하고 있다. [연합뉴스]

신고리 5, 6호기 건설이 재개된다고 해도 정부의 탈원전 방침이 바뀌진 않을 전망이다. 정부는 최근 탈원전 정책 용어를 에너지 전환 정책이라 바꿔 부르면서 신고리 5, 6호기 건설중단여부와 에너지 전환 정책은 별개의 문제로 앞으로도 추진할 뜻을 지속적으로 밝혀왔다. 공론화위가 시민참여단의 의견을 반영해 “앞으로 원전을 축소하는 쪽으로 에너지 정책결정 권고를 했다”고 밝힌 대목도 정부 정책에 힘을 실어주는 요인이 될 수 있다.

신고리 5, 6호기가 건설됨에 따라 정부가 탈원전 정책을 지속적으로 추진하더라도 대한민국에 원전이 완전히 사라지는 시점은 7년 연장되게 됐다. 당초엔 2015년 10월 가동한 신고리 원전 3호기 수명 다하는 2075년 10월이었다. 하지만 이젠 신고리 5, 6호기가 수명을 다하는 2082년이 될 전망이다.

정부의 탈원전 방침 자체가 달라질 가능성도 있다. 이번에 시민참여단이 신고리 5, 6호기 부분에 대해서만 결정을 내렸지만 이 결정 자체가 정부의 탈원전 정책에 대한 심판으로 받아들이는 여론이 만만치 않기 때문이다. 향후 2년 뒤 9차 전력수급기본계획 등에서 에너지 정책 수정 압력을 받을수도 있다.

신고리 5·6호기 백지화 울산시민운동본부가 20일 울산시청 앞에서 공론화위원회의 권고안 발표 결과를 들으며 침울한 표정을 짓고 있다.[연합뉴스]

신고리 5·6호기 백지화 울산시민운동본부가 20일 울산시청 앞에서 공론화위원회의 권고안 발표 결과를 들으며 침울한 표정을 짓고 있다.[연합뉴스]

물론 공사중단 측에서 공론화위의 권고안과 정부의 결정에 불복을 선언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이들은 공론화 기간 동안 공론화위가 시민참여단에게 배포할 자료집ㆍ동영상 강의 등의 검증을 위해 발탁한 전문가위원 가운데 건설재개 입장을 표명해 온 교수가 포함됐다면서 ‘보이콧’을 시사한 전례가 있다. 아직 공론조사 결과에 대한 ‘수용여부’를 밝히지 않은 터라 비록 공론화위가 건설재개 의견을 표명했더라도 향후 소송전 등으로 나설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신고리공론화위원회 공론 결과 권고안 제작 과정. [자료제공=신고리 5, 6호기 공론화위원회]

신고리공론화위원회 공론 결과 권고안 제작 과정. [자료제공=신고리 5, 6호기 공론화위원회]

특히 건설 중단 측은 원전 반대 측은 부산, 울산, 경남 등 특정 지역에 원전이 몰려 있는 ‘다수호기’ 문제를 이슈화할 가능성이 크다. 건설 중단 측은 신고리 5ㆍ6호기가 예정대로 건설될 경우 한 지역에 원전 10기가 몰리는 다수호기 위험이 생긴다고 주장한 바 있다.

세계에 유래가 없는 원전 사고 위험이 밀집되는 지역이 생기는 만큼 공정률이 30%에 달했어도 신고리 5ㆍ6호기 건설을 멈추는 것이 맞다는 것이다.

신고리 5, 6호기 건설재개 결정에도 노후 원전을 조기에 해체 하자는 제안을 할 나올 확률이 있다. 이 때문에 공사 재개로 결정이 나더라도 정부가 추가 대책을 제시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전문가들의 중론이다.

8차 전력수급계획 전력정책심의회 위원장을 맡고 있는 김진우 연세대 특임교수는 “오차범위 밖에서 건설재개 의견이 우위에 선다면 정부의 탈원전 정책에 브레이크가 걸리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나올 것”이라며 “반원전 측에서는 자연스럽게 노후 원전을 조기 폐로해야 한다는 의견을 제시할 수 있는데 정부는 아직 이에 대한 입장 변화가 없어 이러한 논란에 대한 대비를 미리 해야 한다”고 말했다.

재개 결정과는 별도로 원자력안전위원회를 견제하는 움직임이 확산할 가능성도 제기된다. 정권 차원의 탈원전 의도가 무산된 탓에 정부 입김이 보다 강해질 수 있는 형태로 지배구조를 바꿀 수 있다는 얘기다. 유승훈 서울과학기술대 에너지정책학과 교수는 “원안위를 대통령 직속으로 바꿔 권한을 강화하면서 내부 인사들도 원자력계를 견제할 수 있는 그룹으로 키울 가능성이 있다”고 내다봤다.

재개 결정이 났지만 에너지 전문가들은 신고리 5, 6호기 공론조사가 국가 에너지 정책에 대해 ‘벌집을 쑤신 상황을 만들었다’는 진단을 많이 한다. 신고리 5,6호기의 공사를 재개하느냐 중단하느냐의 단순 접근만 강조돼 에너지 정책이 정치적 쟁점화 돼 문제가 더 복잡하됐다는 것이다. 이로 인해 앞으로 이 혼란을 수습할 대안을 제시해야 한다는 의견이 많다.

전문가들은 원전이 특정 지역에 몰린 ‘다수호기’가 문제라면 보다 안전한 새 원전을 짓고 노후 원전은 조기 폐로(廢爐)하는 것이 ‘솔로몬의 해법’일 수 있다고 조언한다. 그래야 정부가 원하는 탈원전에 방점이 찍힌 ‘점진적’ 에너지 전환도, 원전 수출 지원책도 힘을 얻을 수 있다는 것이다.

한수원에 따르면 2023년 고리2호기가 설계수명을 다해 가동을 정지할 예정이다. 고리 3호기는 이듬해인 2024년, 고리5호기도 2025년 차례로 문을 닫는다. 신고리 5ㆍ6호기(2021년ㆍ2022년 준공 예정)가 당초 계획대로 진행되더라도 2025년이 되면 부산 기장, 울산 울주 지역에서 가동되는 원전은 6기로 줄어드는 셈이다. 고리 1호기는 지난 6월 영구 정지됐다.

공론결과 발표 앞둔 신고리   (울산=연합뉴스) 김용태 기자 = 신고리 5·6호기 공론 조사 결과 발표를 하루 앞둔 19일 울산시 울주군 서생면 신고리 5·6호기 건설 현장의 모습. 2017.10.19   yongtae@yna.co.kr (끝)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공론결과 발표 앞둔 신고리 (울산=연합뉴스) 김용태 기자 = 신고리 5·6호기 공론 조사 결과 발표를 하루 앞둔 19일 울산시 울주군 서생면 신고리 5·6호기 건설 현장의 모습. 2017.10.19 yongtae@yna.co.kr (끝)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신고리 5ㆍ6호기 공사를 재개하되 설계수명이 다해가는 노후 원전의 가동을 멈추는 것이 건설재개와 중단 양측의 지적을 수용하는 방법이란 것이 전문가들의 제안이다. 이 경우 허공에서 증발할 수 있는 매몰비용 2조6,000억원을 살리는 동시에 공사 중단 측이 우려하는 다수호기의 위험도 줄일 수 있다.

황주호 경희대 부총장은 “다수호기가 문제라고 하면 신고리 5ㆍ6호기를 짓되 노후 원전을 조기 폐쇄하는 것도 방법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김창섭 가천대 에너지IT학과 교수도 “전문가 집단에서는 오래전부터 신고리 5ㆍ6호기를 재개하면 다수호기 문제를 해결하는 것을 대안으로 제시해왔다”며 “전체 고리 원전 3개를 멈출지, 월성 2개 중 전부 중단할지, 아니면 순차적으로 중단할지 논의를 거쳐야 한다”고 말했다.

정부 정책과도 배치되지 않는다. 문재인 대통령은 8월 취임 기자회견에서 “지금 가동되고 있는 원전의 설계수명이 만료되는 대로 하나씩 문을 닫아나가겠다는 뜻”이라며 “적어도 탈원전에 이르는 데 60년 이상의 시간이 걸린다”며 급격한 탈원전 정책이 아니라고 강변한 바 있다. 또한 탈원전 정책을 추진하면서 원전 수출은 적극적으로 지원하겠다는 정부의 모순된 태도도 어느정도 설명이 가능하게 된다.

어쨌든 신고리 5, 6호기 공론화 과정에선 건설 중단과 재개 양측의 불신이 깊었다. 과장된 정보가 난무하면서 양측 모두 ‘공포’를 조장했다는 것이다. 은재호 한국행정연구원 연구위원은 “공론화 기간 사실이나 과학의 토론이 이뤄진 게 아니라 쌍방이 과장된 공포로 단언을 하는 등의 주장을 해 공론조사의 취지가 퇴색됐다”며 “건설 재개 결정이 났지만 이번 과정을 잘 반추해 향후 공론조사를 다시 사용할 수 있는 토대를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승호 기자 wonderman@joongang.co.kr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