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시론

인구 변동 막기보다 적응에 힘써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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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3면

조영태 서울대학교 보건대학원 교수·인구학

조영태 서울대학교 보건대학원 교수·인구학

요즈음 언론엔 인구 관련 통계와 기사가 하루가 멀다 하고 등장하고 있다. 지난달 말 문재인 대통령이 직접 올해 우리나라의 합계출산율이 1.04 수준이 될 거라고 언급했다. 남녀 한 쌍이 만나서 1명의 자녀만 낳는다는 이야기다. 올해 1~6월 혼인신고 건수가 약 14만4000쌍으로 작년 같은 기간에 비해 거의 8% 줄어든 수치라는 통계청 발표도 있었다. 우리나라 국민 가운데 65세 이상 고령자가 차지하는 비율이 14%를 넘었다고도 한다. 농어촌 지역은 말할 것도 없고 지방 중소도시까지 젊은 인구가 서울 수도권으로 빠져나가 말 그대로 지방 소멸이 목전에 도래했다는 전망도 나왔다. 정부와 정치권은 이러한 인구 현상을 매우 심각한 사회문제로 보고 대응책 마련에 절치부심하고 있다.

인구구조는 항상 변하게 마련 #저출산·고령화는 시대적 특징 #변동을 되돌리려는 노력보다 #현실 인정하고 대처에 힘써야

인구구조는 언제 어느 사회에서나 항상 변동한다. 우리나라 인구는 과거에도 변화해 왔고 미래에도 그럴 것이다. 그러므로 인구가 변화한다는 것 자체가 문제인 것은 절대 아니다. 문제는 우리가 지금까지 경험해 보지 못한 일들이 너무도 빨리 일어나고 있다. 전 세계 어느 나라도 이러한 인구 현상들을 동시다발적으로 경험한 나라는 없다. 이웃 일본의 인구 변동 경험이 유사하지만 우리나라의 변화 속도와 강도가 훨씬 빠르고 광범위하다. 그만큼 인구 변동의 결과를 준비할 시간이 충분치 않고, 그로 인한 혼란도 클 것이기 때문에 위에서 언급된 우리나라 인구 현상이 문제로 인식되는 것이다.

정부는 저출산 대응책을 마련하고 시행해 온 인구 관련 정부 조직을 재정비하고 0~5세 자녀에게 지급하는 아동수당을 마련하는 등 가족정책을 강화하겠다고 최근 발표했다. 과연 정부 조직이 바뀌고 보다 적극적인 가족정책이 마련되면 인구 ‘문제’가 해소될 수 있을까? 남녀 한 쌍이 원하는 수의 자녀를 낳고, 결혼을 원하는 커플이 미루지 않고 결혼하고, 고령인구가 늘어도 사회적 부양 부담을 걱정하지 않고, 젊은이들이 서울과 수도권이 아닌 지방에서 사는 것을 원하게 될까? 누가 봐도 어려운 일이다. 문제시되는 인구 현상을 되돌릴 수 있는 대책을 정부와 정치권이 마련해야 함은 마땅하다. 하지만 그것이 쉽지 않다면 보다 현실적 대책도 함께 강구되어야 한다. 그것은 바로 위에 언급된 인구 현상들의 결과로 인해 앞으로 국민의 삶에 어떠한 변화가 생길지 미리 예측해 정보를 국민에게 제공하고, 변화된 환경이 가져올 혼란을 최소화할 수 있게 미래를 기획하는 것이다. 필자가 볼 때 후자가 전자보다 훨씬 중요하고 필수적이다.

인구는 되돌리기가 쉽지 않고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 즉 위에 열거된 현상들을 되돌리기가 현실적으로 거의 불가능하고 그 결과로 가까운 미래에 일어날 일들은 반드시 일어날 것이라는 말이다. 저출산과 고령화, 인구의 수도권 집중 같은 인구 현상은 비록 지금과 같은 수준은 아니었지만 이미 10여 년 전에도 존재했다. 또 10년이 지난 오늘날 그 정도가 더 심해질 것을 미리 알고 있었다. 상황의 악화가 이미 정해진 미래였다면 그 상황을 되돌리려는 노력뿐만 아니라 악화될 상황을 상정하고 그것이 가져올 사회적 혼란으로 어떤 것들이 있으며 어떻게 극복할 수 있는지 고민도 함께 했어야만 했다. 안타깝게도 정부와 정치권은 이런 현상들을 문제 혹은 비정상으로 규정하고 그것을 되돌리려고만 했지(그마저 효과 없는 정책에 천문학적 예산을 써 가면서), 그 현상이 10년 뒤 혹은 20년 뒤 한국 사회에 어떠한 영향을 줄 것인지에 대한 고민은 하지 않았다.

지난달 불거져 아직도 뚜렷한 해결책이 제시되지 못한 서울 지역 초등학교 교사 수급 혼란이 명백한 예다. 학령인구가 줄면 필요 교사 수가 줄어드는 것은 당연하다. 초등교사는 교원대를 통해 양성하니 교원대 학생 정원이 줄지 않으면 졸업생이 선생님이 될 수 있는 문이 좁아지는 것은 뻔한 이치다. 지금과 같은 혼란이 올 것은 누구라도 예측할 수 있는 당연한 결과였다. 그렇다면 지난 10년간 정부는 대학에 큰 부담을 주지 않으면서 교원대의 입학정원을 줄이고 공교육 질을 향상하는 방안을 마련해야 했다. 이번의 혼란이 시사하는 바대로 정부가 그런 노력을 했을 리 만무하다.

지금이라도 정부와 정치권은 저출산과 고령화, 인구의 수도권 집중 등 인구 현상을 바라보는 시각을 바꾸어야 한다. 이제 인구 현상을 더 이상 해결 과제로만 봐서는 안 된다. 오히려 오늘의 인구 현상이 정해 놓은 미래를 정확히 예측하고 국민이 슬기롭게 적응할 방법을 기획하는 데 더 많은 정책적 노력을 경주해야 한다. 그것이 진정으로 국민을 섬기는 인구정책이 될 것이다.

조영태 서울대학교 보건대학원 교수·인구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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