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시론

북핵 마주한 탈원전 정책 수정해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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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김명현 경희대 원자력공학과 교수

김명현 경희대 원자력공학과 교수

북한의 수소폭탄과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개발의지는 한·미의 레드라인을 넘어서는 것이다. 초강경 응징을 다짐하지만 이렇다 할 방안을 찾지 못하는 것 같다. 숨겨 둔 비상대책이 양국 정부에 있겠거니 믿고 싶다. 그러나 전쟁을 상정하지 않는 평화적 묘책은 없지 않은가 싶다. 일반 국민도 비슷한 걱정을 할 것이다.

개방경제인 한국의 핵무장은 #경제제재 역풍으로 비현실적 #원자력 농축·재처리 기술로 #핵개발 능력 시위에 나서야

북핵 해결방안을 좀 다른 각도에서 모색해 보자. 돌이켜 보면 시작점은 1993년 북한의 핵확산금지조약(NPT) 탈퇴였다. 당시 세계는 6자회담을 통해 한반도 문제를 풀고자 했다. 북한의 핵 기술은 플루토늄을 추출했을 거라는 초보적 단계로 추측됐다. 이때 담판 지었다면 쉬웠을 텐데 낙관으로 방치하는 동안 우리 기대를 저버리고, 결국 대한민국을 넘어선 전 세계적 문제로 비화됐다. 몇 차례의 위기상황마다 우리는 멍하니 중국과 미국만 바라보며 낙관에 기댔다. 어쩌면 이제 북한이 원하는 대로 주변 국가가 북한을 핵보유국으로 인정하고, 그에 상응하는 대우를 해 줘야 할지 모른다. 그렇게 되면 우리나라는 누가 수호하는가? 주변 4대 강국의 틈바구니에서 어렵게 유지하던 균형이 깨져 버린 상황에서 누가 제3차 세계대전을 불러올 가능성을 안고 북한을 견제할 수 있을 것인가? 자연스럽게 우리도 핵무장을 해야 한다는 논리가 튀어나온다.

이제 북한 핵을 억지하는 셈법이 아니라 북핵 위협하에서 우리가 어떻게 생존하느냐의 문제다. 핵에는 핵으로 대응하는 것만큼 효과적인 게 없지만 우리는 대외무역으로 먹고사는 나라다. 핵무기를 갖는 대신 경제가 무너진 파키스탄과 같은 사례를 돌아볼 필요가 있다. 우리는 에너지의 95%를 수입하고 자동차·반도체·휴대전화를 내다 팔아야 생존하는 나라다. 중국의 조그만 고고도미사일방어(THAAD·사드) 체계 보복에도 관광과 화장품업계가 휘청거린다. 핵무장은 합리적 방안이 될 수 없다.

그러면 핵무장 없이 북한을 위협하는 수단은 없을까? ‘Bomb in the basement(지하실의 폭탄)’라는 말이 있다. 드러난 실체는 없지만 갖고 있지 않을까 느껴지는 상황을 빗댄 말이다. ‘Bomb in the brain(머릿속 폭탄)’은 어떤가 생각해 본다. 마음만 먹으면 폭탄을 만들 능력을 갖춘 상황이다. 우리 주변에 평화를 절대적으로 지지하면서 핵폭탄 실험은 한 번도 안 했지만, 핵무기 보유국과 같은 지위를 누리는 나라가 있다. 거리낌 없이 핵연료 농축·재처리를 하고, 자국 내에 핵무기 원료인 플루토늄도 많이 비축하고 있다. 바로 일본이다. 일본은 핵무기만 없지 관련된 모든 기술을 다 갖고 있다.

이제 우리나라야말로 일본의 예를 따라야 할 때가 아닌가 한다. 원자력발전은 핵무기 기술이 전용돼 평화적 목적으로 바뀐 것이다. 동전의 양면과 같다. 우리에게 재처리 기술은 두 가지 측면에서 시급하다. 첫째, 핵무기는 터뜨리기 위함이 아니고 보유국의 군사·외교적 지위를 얻고자 함이다. 비록 100% 평화적 목적으로 농축·재처리를 제한적으로 해도 일본처럼 핵무기 보유 기술이 있는 것처럼 인정받을 수 있다. 둘째, 사용후 핵연료 처리방안으로서 필요하다. 고준위 방사성폐기물을 분리해 원자로에서 다시 태우는 방안을 여러 나라에서 연구 중이다. 아직 자유롭게 연구할 수 없는 답답한 처지다. 우리 원자력발전 규모는 세계 6위다. 이만한 나라 중에서 농축·재처리 기술이 없는 나라는 우리뿐이다.

재처리 기술을 갖기 위해 기존 핵무기 보유국과 관련 국가의 암묵적 동의가 필요하다. 이제 우리는 북한 핵에 맞서 농축과 재처리 기술을 가져야 할 명분을 얻었다. 그러나 북한 대치국인 우리에게 향하는 의구심을 떨쳐내기 쉽지 않다. 의심을 걷어내기 위해 기술을 100% 투명하게 공개하고 국제 감시체계 안에서 평화적 목적으로만 활용해야 한다. 우리나라는 국제원자력기구(IAEA)와 NPT 회원국 중 모범 국가로서 이미 상당 부분 제도적 기틀을 갖췄다.

물론 국제사회의 동의를 쉽게 받기는 어려울 것이다. 따라서 첫째, 정치권이 한목소리를 내야 한다. 국제사회를 설득할 때 정확한 목적을 제시해야 한다. 당장 써 먹을 핵폭탄을 만들지 않고, 준비된 핵 대응 능력으로만 활용하며, 방사성폐기물 문제를 평화적으로 풀어 갈 수단이라는 명확한 입장을 천명해야 한다. 둘째, 국민 지지다. 원자력은 수출 산업화까지 된 주요 국가 에너지원이며, 군사적 기반도 된다는 점을 널리 설득해야 한다. 탈핵은 북한이 우리를 얕잡아 보게 할 빌미다. 경수로를 우리가 지어 주겠으니 핵 개발을 포기하라고 호언하던 때가 그리워진다.

김명현 경희대 원자력공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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