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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시론

북핵 해법에 관한 불편한 진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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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3면

김근식 경남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김근식 경남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문재인 대통령은 레드라인을 규정했고 김정은은 보란 듯이 수소탄을 주장하며 6차 핵실험을 강행했다. 급진전하는 북한의 기술력과 무지막지한 김정은의 핵 질주를 고려하면 레드라인은 시간문제일 뿐 임박한 현실이 되고 있다. 북한이 레드라인을 넘을 경우 우리의 대응은 지금까지와는 확연히 다른 것이 되어야 한다. 단호한 군사적 대응을 불사하거나 그게 아니라면 비참하게 레드라인을 다시 후퇴시킬 수밖에 없다. 레드라인이라는 진실을 맞닥뜨리는 순간 문 대통령의 선택은 진퇴양난이 될 것이다. 당장의 뾰족한 북핵 해법이 없는 무기력한 현실 탓이다. 북핵을 제거하는 방법은 현실적으로 세 가지가 있다. 그러나 지금은 마땅한 해법이 되지 못한다는 ‘불편한 진실’에 우리는 마주하고 있다.

김정은의 6차 핵실험 감행으로 #레드라인 넘는 건 시간 문제이나 #뾰족한 북핵 해법 없어 무기력 #장기적으로 북 체제 변화 꾀해야

첫째, 강제로 핵무기를 탈취하는 방법이다. 군사적 방법으로 김정은의 핵물질과 핵시설, 핵폭탄과 핵미사일을 일거에 제거하는 것이다. 대량파괴무기 제거라는 명분으로 미국이 이라크를 침공한 방식이다. 그러나 한반도의 현실은 이라크와 근본적으로 다르다. 군사적 수단으로 강제 탈취에 나서려면 적어도 세 가지의 확실성이 담보되어야 한다. 즉 공격 목표의 위치를 정확히 파악하거나, 공격에 대한 북한의 군사적 보복이 없다는 확신이 있거나, 중국이 어떤 경우라도 개입하지 않을 것이라는 확증이 있어야 한다. 셋 중 하나라도 단 1%의 불확실성이 존재한 경우 한반도에서 군사적 옵션은 결심할 수 없다. 한반도에서 전면전을 각오하는 것은 아직 무리다. 1994년 북한 영변 폭격을 막판에 철회한 이유다. 북핵 해법으로 군사적 옵션은 여전히 비현실적인 게 사실이다. 그러나 대안이 없다면 군사적 옵션을 피해서도 안 된다.

둘째, 김정은이 스스로 핵무기를 내놓는 방식이다. 날로 강화된 유엔 제재가 김정은을 옥죄고 북한 체제의 내구력을 무력화한다면 결국 견디지 못하고 핵무기를 포기할 것이라는 생각이다. 그러나 북한의 현실은 간단치 않다. 북한은 대북제재 강화를 거치면서도 오히려 경제상황이 호전되었다는 평가를 받는다. 여기저기 제재의 구멍이 뚫려 있는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제재가 만병통치약이 아닌 본질적 이유는 김정은에게 핵의 의미다. 김정은은 자신의 생존을 위해 핵무기에 집착한다. 핵무기를 포기했다가 서방에 제거당한 리비아 가다피의 교훈을 반복해서 강조한다. ‘생존’을 위한 핵무기는 대북제재로 인한 ‘고통’ 정도로는 포기할 수 없다. 살기 위한 핵무기인데 제재로 고통스럽다고 포기할 리 만무하다. 더욱이 중국은 북을 고통스럽게 할 정도는 찬성하지만 정작 북을 붕괴시킬 정도의 제재는 찬성할 생각이 없다. 제재만으로 북핵 해법이 부족한 이유다. 그럼에도 북의 잘못된 행동에 대해서는 꾸준히 일관되게 제재를 지속해야 한다. 제재를 포기하면 북한에 대한 우리의 카드를 스스로 버리는 셈이 된다.

북핵 제거를 위한 셋째 방법은 협상을 통한 거래다. 김정은이 핵무기를 흥정에 부치고 거래가 이뤄지는 방식이다. 협상을 통해 핵 포기의 대가를 지불하는 방식이다. 그동안 6자회담이나 북·미 양자협상 등의 방식이었다. 대화를 통한 평화적 해결이라는 문 대통령의 접근이 바로 이것이다.

그러나 이 역시 지금은 상황이 다르다. 당장 김정은은 핵을 팔고 싶은 생각이 전혀 없다. 비핵화에 동의해야 핵무기 가격 흥정을 벌일 텐데 김정일과 달리 김정은은 핵무기를 흥정에 부칠 생각이 없다. 거래를 위해 장이 서야 하는데 장도 서지 않는다.

문 대통령이 북한과 대화를 아무리 강조해도 김정은은 한사코 거부한다. 어렵게 협상이 시작된다 해도 이미 물건 값이 치솟아서 파는 쪽도 사는 쪽도 쉽사리 거래가 형성되기 어렵다. 김정은은 비핵화 및 평화체제 병행마저 거부하고 비핵화 말고 평화체제만 먼저 논의하자는 입장이다. 도저히 우리가 살 수 없는 높은 가격을 부르는 셈이다. 협상이 가장 평화적이고 바람직하지만 이제 북핵 상황은 타협과 거래의 길을 지나 버렸다. 협상을 통한 해결은 비현실적이지만 그래도 상황 관리용 협상은 여전히 필요하다.

군사적 옵션에 집착해서도 안 되고 제재 만능주의에 빠져서도 안 되며 가능치도 않은 협상에만 순진하게 기대해서도 안 된다. 지금까지와는 전혀 다른 새로운 북핵 해법이 절실하다. 핵무기를 스스로 포기한 남아공의 사례는 백인 정권에서 흑인 정권으로의 교체라는 내부 체제 변화 때문에 가능했다. 전쟁도 제재도 협상도 아니라면 당장은 북핵 상황의 전략적 관리에 치중하면서 북한의 체제 변화를 긴 안목에서 도모해야 하지 않을까.

김근식 경남대 정치외교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