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시론

국민 참여 개헌이 정답이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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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3면

이상수 나라살리는헌법개정 국민주권회의 공동대표·전 노동부 장관

이상수 나라살리는헌법개정 국민주권회의 공동대표·전 노동부 장관

헌법 개정이 어려운 국면에 접어들고 있다. 국회 개헌특위는 전국 11개 지역에서 국민 공청회를 열고 국민대표 5000명을 선발한 뒤 4차에 걸친 원탁 토론을 벌여 국민 의견을 수렴하겠다고 한다. 하지만 이런 노력을 통해 여야 간 의미 있는 합의안이 도출될 수 있을지 의문이다. 국민의 소리를 듣겠다고 하지만 자칫 국민의 갈등만 확인하는 결과를 가져올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그동안 특위는 제왕적 대통령제의 폐해를 극복하기 위해 분권과 협치가 필요하다는 원칙에 합의하고서도 막상 구체적 정부 형태의 논의에 들어가서는 정파적 이해관계 때문인지 한 발자국도 진전하지 못하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도 최근 “최소한 지방분권과 기본권을 위한 개헌에는 합의하지 못할 아무런 이유가 없다”면서도 “중앙 권력구조 개편을 위한 개헌에는 (정치권의 이해가 달라) 더 많은 논의가 필요할지 모른다”고 한 발 물러서는 모습을 보였다.

정부 형태 논란에 막혀 진전 없는 #정치권의 개헌 논의 활성화 위해 #국민개헌 공론화위원회 구성하고 #‘온라인 개헌 장터’로 관심 모아야

이런 상황이 지속하는 한 정치권의 합의가 어려워져 개헌이 물 건너가거나, 잘해 보았자 반쪽 개헌으로 전락할 가능성이 농후하다. 기본권과 지방분권도 중요하지만 권력구조 개편이 개헌의 핵심이라는 사실은 누구도 부인하기 힘들 것이다. 헌법 개정의 필요성이 제기된 것도 제왕적 대통령제의 폐해를 극복하기 위해서였다. 과거 권력구조에 대한 개헌이 일부 정치인의 정략적 의도에서 추진돼 국민에게 부정적으로 비치는 면이 있었으나 권력구조가 개헌의 핵심적 사항임은 분명하다. 사실 권력구조 개편 없이 기본권의 온전한 보장도 기대할 수 없다. 기본권은 권력의 올바른 행사를 통해서만 보장될 수 있기 때문이다.

국회는 개헌의 실행력을 담보할 수 있는 개헌 절차 청사진을 좀 더 분명하게 제시해야 한다. 촛불시위를 통해 드러난 국민의 뜻이 제대로 발현될 수 있도록 개헌 문제를 공론화해 교착된 개헌 논의에 새로운 활력소를 불어넣어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참여와 숙의를 결합해 국민들의 정제된 의견을 모을 수 있는 ‘국민개헌 공론화위원회’ 구성을 제안한다.

공론화위원회는 국회 특위가 구성하되, 산하에 일정 원칙에 따라 무작위로 추출된 ‘국민 배심원단’과 각계 전문가로 구성된 ‘전문가 위원회’를 둔다. 공론화위원회는 철저하게 절차 관리에 집중하며 참여 국민들의 의견을 공정하게 집약시켜야 한다. 공론화위원회의 투명성·공정성·전문성은 개헌 공론화의 성패를 좌우한다. 국민배심원단은 공론화 과정 내내 전문가위원회로부터 충분한 설명과 자료를 제공받으며 학습과 토론을 통해 주제에 대한 이해도를 높여 최종적인 결정을 도출해 낸다. 또한 전문가위원회는 국민배심원단의 학습과 논의 과정을 함께하면서 자문단의 역할을 수행한다.

또 온라인 플랫폼에 ‘개헌 장터’를 설치해 원하는 국민은 들어와 의견을 펼칠 수 있어야 한다. 전 국민이 온·오프라인에서 진행되는 국민배심원단의 논의 과정을 지켜보면서 온라인 공간에서 자기 의견을 제시하고, 국민배심원단이 온라인 공간에 나타나는 국민의 의견을 참고하면 상호 피드백이 가능해져 상호 공감대를 높일 수 있다. 숙의(熟議)란 이렇게 자유로운 참여와 반복적 상호작용을 통해 학습의 깊이를 더하며 애초에 가졌던 자신의 생각을 수정해 나가는 과정이기도 하다.

나아가 개헌특위와 공론화위원회 간에도 긴밀히 협의해 논의 수준을 차츰 높여갈 수 있다. 독립성과 공정성이 확보되는 한 상호 의견 교환도 가능할 것이다. 한마디로 국민과 공론화위원회·국회 개헌특위가 서로 교류하며 집단지성의 힘을 발휘해 국민적 개헌안을 만들어 내자는 것이다. 국민배심원단이 다룰 의제는 지금까지 쌓아온 특위 등의 논의 성과를 바탕으로 전문가위원회가 선정하되 정부 형태, 사회적 기본권의 확충 범위, 지방 입법, 재정권 확대 등 의견이 대립된 중요 사항에 논의가 집중되도록 의제를 줄여 선택과 집중의 효율성을 살려야 한다.

이제 국회는 정파적 이해관계를 뛰어넘어 국민의 집약된 의사를 최대한 존중할 것을 약속해야 한다. 교착된 상황을 타개해 국민 참여 개헌을 성취하기 위해 특위의 기득권 일부를 내려놓고 대승적인 자세로 임해야 한다. 신고리 원전 공론화 결과를 최대한 존중하겠다는 정부의 약속처럼 국회도 여야 합의를 통해 ‘국민개헌 공론화위원회’를 설치해 그 위원회에 힘을 실어주어야 한다. 그것이 어느 순간부터 우리 정치 현장에서 슬그머니 사라져버린 ‘선량(選良)’의 의미를 되살리는 길이다. 개헌 공론화로 국민 참여의 길을 열어 내년 6월 지방선거가 온 국민의 새로운 촛불 축제가 되기를 기대한다.

이상수 나라살리는헌법개정 국민주권회의 공동대표·전 노동부 장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