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신성식의 요람에서 무덤까지

묘수 필요한 적정 의료 수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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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8면

신성식 기자 중앙일보 복지전문기자
신성식 논설위원 겸 복지전문기자

신성식 논설위원 겸 복지전문기자

엊그제 서울대병원에서 열린 심포지엄에서 한 토론자가 “병원 약사들이 ‘열정 페이’로 일하지만 처방 오류를 걸러내는 걸 보람으로 여긴다”고 말했다. 처방·조제·투약 등의 약물 오류를 잡아내는 데 병원 약사의 역할이 적지 않지만, 보상 체계가 제대로 돼 있지 않은 점을 지적했다. 흔히 의료 수가(酬價)라고 하는 것이다.

보건·의료 관련 토론회에 가면 결론은 정해져 있다. 뭘 얘기해도 ‘기-승-전-수가’로 끝난다. 감염 관리, 환자 안전 등 거의 전 분야에 해당한다. 수가가 낮거나 미비해서 이런 일이 생긴다. 진료 수가는 원가의 89% 수준으로 알려져 있다. 의료인은 부가가치가 높은 직종이다. 이들한테서 제 서비스를 받으려면 그만한 대가를 지불해야 한다. 그게 수가다. 건강보험 재정에서 나가니까 내 돈이 안 드는 것처럼 보이지만 건보 재정이란 게 우리 보험료·세금이다.

선진국에 비하면 한국의 보험료·수가 둘 다 낮다. ‘저부담-저수가-저급여’ 방식이다. 이런 체제에서 정부가 31조원을 들여 2022년까지 건보 보장률을 63%에서 70%로 올리기로 했다. 비급여의 급여화가 핵심이다. 그동안 의료기관들이 원가에 못 미치는 수가를 비급여 진료로 벌충해 온 측면이 있다. 정부도 용인했다. 비급여를 급여화할 때 시장 수가를 낮추기 때문에 의료기관 수입이 줄어든다.

그래서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달 31일 보건복지부 업무보고 자리에서 “보장성 강화 정책의 성공을 위해 의료 수가를 적정화해야 한다”고 말했다. 지난달 초 보장성 강화 정책을 발표할 때도 “적정 보험 수가를 보장하겠다”고 말했다. 대통령 말대로 적정 수가를 보장하지 않고서는 나은 서비스를 받을 수 없다. 또 적정 수가는 적정 부담 없이 불가능하다. 하늘에서 돈이 떨어지지 않는다면야, 보험료건 세금이건 다 국민 몫이다.

정부는 매년 3% 이내 보험료 인상만으로 보장률 70%를 달성할 수 있다고 자신한다. 게다가 적정 수가까지 약속했다. 하지만 세부 재원 조달 계획은 공개하지 않는다. 또 내년 건보료는 1%포인트 적은 2% 정도만 올리기로 했다. 첫 단추부터 꼬이는 듯하다. 어떤 묘수가 있는지 모르겠지만 국민·의료계 양쪽 모두에게 박수 받을 생각을 하는 듯하다. 제발 그리 됐으면 좋겠다.

신성식 복지전문기자·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