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플CEO 팀 쿡, 그가 중국에 백기를 든 이유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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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이라는 시장은 대체 우리에게 어떤 의미를 갖는 곳인가?

요즘처럼 이 질문이 절실하게 다가온 적은 없다. 중국의 '사드 보복'은 완화될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시장에서 밀려난 기업은 중국의 행태에 울분을 토한다. 중국이라는 나라는 이제 점점 더 많은 사람들 마음에서 '불편한 존재', '위협의 대상'으로 자리 잡아가고 있다. 제3의 시장을 개척해야 한다는 말이 힘을 얻고 있다.

그래! 이참에 중국 없이 살아보자. 다른 곳에서 시장을 찾으면 될 것 아닌가...

그런 생각이 굴뚝같다. 오늘 애플을 얘기하려고 한다. 애플 역시 바로 지금 그 질문으로 고민하고 있기 때문이다.

최근 파이낸셜타임스(FT)는 '애플이 중국 수수께끼를 풀기 위해 골몰하고 있다(Apple struggles to solve China conundrum)'이라는 기사를 보도했다(8월 21일 13면). 보도는 이렇게 시작한다.

중국을 방문한 애플 CEO 팀 쿡이 스타벅스에 들렸다. 아이폰을 꺼내 애플페이로 계산을 하려고 했으나 되지 않았다. 아이폰으로는 중국 지불 시스템에 접근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결국 옆에 있던 동료가 커피값을 대신 치러야 했다...

중국 스타벅스

중국 스타벅스

팀 쿡은 애플페이가 되지 않는 것을 확인하고는 당황했을 것이다. '위챗 페이는 돼요..'라는 중국 직원의 말을 들었다면, 거의 '망신' 수준이다. 애플이 중국에서 직면하고 있는 문제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례다. FT는 '2년 전까지만 해도 가장 유망했던 중국 시장이 이제는 가장 큰 골칫거리(headache)로 변했다'라고 지적했다.

통계가 말해준다. 애플의 지난 분기(4~6월) 중화권(대륙, 홍콩, 대만 등)매출은 전년 동기 대비 10% 감소했다. 6분기 연속 감소세다. 미국에 이은 두 번째 시장이 지금 흔들리고 있는 것이다.

애플의 분기별 중화권 매출액 추이

애플의 분기별 중화권 매출액 추이

애플의 경쟁력은 콘텐츠와 서비스의 우위를 바탕으로 하드웨어(아이폰)을 판매한다는데 있다. 그 경쟁력 생태계가 중국에서는 통하지 않는다는데 애플의 고민이 있다. 이런 식이다.

베이징 당국이 최근 교통 시스템 전산화를 정비하면서 지불시스템도 개편했다. 그런데 안드로이드 핸드폰만 지불시스템에 접근할 수 있도록 했다. 애플의 iOS 운영 체계는 배제했다. 아이폰으로는 베이징의 전철, 버스 등에서 결재를 할 수 없게 된 것이다.(FT보도)

결과가 어떻게 될지는 눈에 뻔하다. 텐센트의 위챗페이, 알리바바의 알리페이 등 안드로이드 지불 시스템에 밀릴 수밖에 없다. 애플폰은 한 마디로 '먹통'이 된 셈이다. '페이 천국' 중국에서 지불이 안되는 폰이 팔릴 리 있겠는가?

애플 아이폰의 중국 내 시장 점유율 변화

애플 아이폰의 중국 내 시장 점유율 변화

애플의 콘텐츠와 서비스, 하드웨어는 최고다. 세계 각지에서 검증된 사실이다. 그러나 베이징 버스에서는 안 통한다. 왜? 베이징 시정부가 막고 있으니까...결국 정부가 문제였던 셈이다. 지금은 베이징시 지방정부의 일이겠지만, 중앙정부 차원에서 또 어떤 규제가 내려질지 모른다. 거기에 애플의 고민이 있는 것이다.

우리가 지금 중국 시장에 대해 하고 있는 고민과 다르지 않다. 시장은 분명 있는데 정부의 사드 보복이 진입을 막고 있다. 중국 정부는 '소비자들이 알아서 움직인 결과'라고 말하지만, 그걸 누가 믿겠는가?

애플은 어떤 선택을 했을까?

타협이었다. 아니 더 정확하게는 중국 정부에 굽히고 들어갔다. 애플이 지난달 중국의 인터넷 통제를 우회할 때 사용하는 가상사설망(VPN)앱을 아이폰의 앱 스토에서 제거한 건 이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중국 정부는 이른바 '만리장성 방화벽(Great Firewall)'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구글의 검색 서비스와 동영상 서비스 유튜브, 페이스북, 인스타그램 등 해외 정보망과의 접속을 차단하는 장치다. 하지만 중국의 애플 제품 사용자들은 VPN 앱을 이용해 만리장성 방화벽을 우회하는 방법을 택했다. 이걸 삭제했으니, 우회로마저 차단된 것이다. '애플이 결국 중국 정부에 아부하고 있다'는 말이 나온 이유다.

중국의 애플 제품 사용자들은 VPN 앱을 이용해 만리장성 방화벽을 우회하는 방법을 택했다.

중국의 애플 제품 사용자들은 VPN 앱을 이용해 만리장성 방화벽을 우회하는 방법을 택했다.

이뿐만 아니다. 애플은 아이폰 및 아이패드의 아이클라우드(iCloud) 데이터 센터를 중국 현지(구이저우)에 구축한다고 밝혔다. 기존 애플의 정책이라면 당연히 미국에 둬야 했지만, '중국에서 사업을 하려면 중국 내에 서버를 둬야 한다'는 정책에 굴복한 것이다. 애플은 지난해 뉴욕 타임스가 만든 뉴스 앱을 (정부의 요청에 따라) 앱스토어에서 삭제했다. 뉴욕타임스가 최근의 이 같은 행태를 두고 '애플은 중국 정부의 인터넷 검열 공범자'라고 맹비난한 이유다(뉴욕타임스 8월 2일 자, How Apple and Amazon are aiding Chinese Censors).

애플의 정보 보안은 엄격하기로 유명하다. 총기 난사로 14명을 숨지게 한 테러 용의자의 범죄 정보를 넘겨달라는 FBI의 요구를 거부하기도 했다. '고객의 사생활 보호'가 이유였다. 그런 애플이 중국의 검열 앞에서는 한없이 약한 모습을 보인 것이다. 이유는 분명하다. 정부와 타협을 해서라도 중국 시장을 놓칠 수 없다는 판단에서다. 글로벌 시장에서의 우위를 지키기 위해서는 중국 시장을 결코 포기할 수 없다는 판단, 그게 바로 애플을 주저앉힌 이유다.

자, 우리는 다시 한 번 위 질문을 던져야 한다. '중국이라는 시장은 대체 우리에게 어떤 의미를 갖느냐?"고 말이다.
중국 밉다. 경제 보복에 분개할 수 있다. 그러나 현실은 냉혹하게 봐야 한다. 중국은 GDP 11조 4000억 달러 규모의 시장이다. 우리보다 10조 달러 크다. 매년 6~7%의 성장세를 유지하고 있는 우리 이웃 시장이기도 하다. 이를 피해 어느 다른 시장을 찾을 수 있을까? 게다가 중국은 여러 산업에서 우리를 추월했고, 우리 기업을 옥죄고 있다. 그 시장에 뛰어들지 않으면 우리가 고사(枯死)당할 수도 있다.

이쯤이면 독자 상당수는 "그럼 중국에 고분고분 굴복하자는 거야?"라고 반박할 것이다.

사드를 '넣자, 빼자'라고 말하는 게 아니다. '에이 상대 못할 존재~'라는 식으로 중국에서 돌아서지 말아야 한다는 얘기다. 우리가 갖고 있는 경쟁력을 중국 시장에서 발휘하고, 거기서 번 돈을 연구개발에 투자해 다시 경쟁력을 높이는 선순환 구조를 이어가야 한다.

중국의 보복에 굽히지 않겠다는 결기는 필요하다. 그렇다고 중국 연구를 중단해서는 안된다. 이럴 때일수록 더 눈을 부릅뜨고 중국을 워치하고, 시장을 공부해야 한다. 더 그래야 중국에 더 당당해질 수 있다. FT의 애플 보도가 지금 우리에게 던지는 메시지다.

차이나랩 한우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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