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도스’ 방식으로 성매매 막는다 … 업주 대포폰에 3초마다 전화폭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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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4면

서울시 민생사법경찰관이 성매매 전단에 적힌 전화번호를 ‘대포킬러’ 프로그램에 입력하고 있다. 번호가입력되면 성매매업자에게 3초마다 전화를 걸어 성매수자와 연락하기 어렵게 만든다. [사진 서울시]

서울시 민생사법경찰관이 성매매 전단에 적힌 전화번호를 ‘대포킬러’ 프로그램에 입력하고 있다. 번호가입력되면 성매매업자에게 3초마다 전화를 걸어 성매수자와 연락하기 어렵게 만든다. [사진 서울시]

성매매업소를 운영하는 김모씨는 서울시내 곳곳에 홍보 전단을 뿌려 성매수남과 ‘접선’을 해 왔다. 홍보물에는 경찰 단속을 피하기 위한 대포폰 번호를 적었다. 그런데 최근 이상한 일이 벌어졌다. 손님의 전화로 알고 받은 전화에서 “청소년 유해 매체물을 일반인이 통행하는 장소에 부착 또는 배포한 자는 2년 이하의 징역 또는 2000만원 이하의 벌금에…”란 안내음이 흘러나왔다. 깜짝 놀란 김씨는 전화를 끊었다. 전화가 걸려 온 번호를 차단했지만 3초 뒤 또 다른 번호로 같은 내용의 전화가 걸려 왔다. 매번 다른 번호로 전화가 걸려 오니 손님과 경찰 안내전화를 구분할 수 없었다. 김씨는 결국 통신사에 착신 금지 신청을 했다.

‘성매매 무력화’ 서울시의 역발상 #전단에 적힌 번호 ‘대포킬러’에 입력 #성매수자와 통화 안 되게 계속 전화

서울시 민생사법경찰단(이하 민사경)은 전단 살포 방식의 성매매를 무력화하는 프로그램 ‘대포킬러’를 개발해 지난 14일부터 운영 중이라고 23일 밝혔다.

대포킬러는 성매매업자의 전화번호에 3초마다 전화를 걸어 성매매업자가 수요자와 통화를 할 수 없게 만든다. 컴퓨터 해커들이 특정 서버나 홈페이지에 과도한 트래픽을 흘려보내 서버가 먹통되게 하는 디도스(DDoS·분산서비스거부공격) 공격과 비슷하다. 성매매업자들이 쓰는 대포폰을 무력화한다는 뜻으로 대포킬러라는 이름을 붙였다. ‘오랑캐로 오랑캐를 막는다’는 고사성어 ‘이이제이(以夷制夷)’처럼 해킹 범죄의 수법으로 전화 폭탄을 날려 성매매를 막는 아이디어다.

서울시는 그동안 통신 3사와 협력해 성매매업자의 전화를 정지시키는 등의 노력을 기울였지만 역부족인 경우가 많았다. 번호 정지에 평균 5~7일이 걸렸고 업자들은 수시로 번호를 바꿨다. 올해 초에는 오토바이를 타면서 전단을 뿌리는 성매매업자를 단속하다가 민사경 대원이 부상을 입기도 했다. 강필영 서울시 민사경 단장은 “검거 수사의 위험을 줄이고 전화 정지에 걸리는 시차를 극복하기 위해 5개월여에 걸쳐 대포킬러를 개발했다”고 말했다.

대포킬러 시스템은 민사경과 자치구, 자원봉사자의 협업으로 완성된다. 100여 명의 자원봉사자가 거리 곳곳의 성매매 전단을 수거해 민사경에 전달하면 민사경은 번호를 대포킬러에 입력한다. 입력된 번호로 대포킬러가 매일 오후 8시부터 다음 날 오전 3시까지 3초마다 자동적으로 전화를 건다. 강 단장은 “더 고도화하고 은밀해지는 성매매를 막기 위해 정보기술(IT) 등 활용할 수 있는 모든 방법을 동원하겠다”고 말했다.

홍지유 기자 hong.jiyu@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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