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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전 대안 태양·풍력 … 전국 수십 곳 갈등 중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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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일 오전 전북 고창군 구시포항 앞바다. ‘해상풍력단지 공사 중단’ 등 깃발을 단 고깃배 100여 척이 바다를 메웠다. 해상 시위에 나선 박진구(43)씨는 “고기잡이를 나갔다가 빈손으로 돌아오는 경우가 부쩍 늘었다. 어민들의 터전인 바다를 망치지 말아 달라”고 하소연했다.

주민들 “환경·농지·어장 망친다” #신재생에너지 단지 공사 반대해 #원전처럼 혐오시설로 전락한 셈 #지자체, 여론 반영해 “규제 강화” #신재생 정책 가로막는 걸림돌로

#5일 오후 경북 영천시 삼매리. 입구부터 시작해 마을 곳곳엔 ‘태양광 결사반대’ 등 현수막이 걸렸다. 정영준(69) 이장은 “태양광시설 주변 온도가 올라간다는 소문이 돌면서 주민들이 복숭아 농사를 망칠까 두려워하고 있다”고 말했다.

‘탈(脫)원전’을 선언한 정부가 원자력발전의 대안으로 태양광·풍력 같은 신재생 에너지(이하 신재생) 정책을 밀어붙이고 있다. 하지만 난개발·자연 파괴를 우려하는 지역 주민의 반발에 부닥쳐 전국 곳곳의 관련 사업이 난항을 겪고 있다. 아이러니하게도 친환경 논리가 탈원전 가는 길을 막고 있는 모양새다. 삼매리처럼 신재생 에너지 발전시설 설립과 관련해 마찰을 빚는 공사장이 본지가 확인한 곳만 전국에 수십 곳이 넘는다. 주민들은 태양광은 탄소 배출을 줄이는 나무를 없애고, 풍력발전의 소음·저주파로 고통을 겪는다고 호소한다. 신재생도 해당 주민들에겐 원전처럼 유해·혐오시설일 뿐인 것이다. 과거 신규 원전 부지 선정, 송전탑 건설 등에서 발생한 대립·갈등이 친환경이라는 신재생에서도 그대로 재연되고 있는 셈이다.

[그래픽=차준홍 기자 cha.junhong@joongang.co.kr]

[그래픽=차준홍 기자 cha.junho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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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종영 중앙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이런 갈등을 방치하면 2030년까지 에너지 사용의 20%를 신재생으로 충당하겠다는 정부의 목표는 달성할 수 없다”며 “갈등을 줄일 분쟁조정기구를 도입하고, 주민들이 직접 사업에 참여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지자체들도 반발 여론에 밀려 신재생이 들어서지 못하도록 장벽을 쌓아가고 있다. 자치법규정보시스템 등에 따르면 ‘거리 제한’ 등 신재생 관련 규제를 강화한 지자체는 78곳이다. 올해 관련 법규를 제·개정한 곳이 42곳으로 지난해(32곳)보다 되레 늘었다. 신재생 확대를 위해 규제를 풀려는 정부와 ‘엇박자’를 내고 있는 셈이다.

정부 부처 간 갈등 기류도 보인다. 산업통상자원부는 신재생 보급 확대를 위해 절대농지(농업진흥구역) 규제 완화를 검토 중이다. 그러나 농림축산식품부에서는 식량안보, 우량농지 보전 등을 이유로 “신재생 시설은 기본적으로 절대농지 밖 농지를 우선 활용하겠다”는 입장이다. 기술우위·경제성 등을 내세워 탈원전 속도 조절을 주문하는 주장이 거세지는 상황에서 정부로선 갈등 봉합의 짐까지 떠안은 것이다.

이덕환 서강대 과학커뮤니케이션학과 교수는 “신재생 정책은 지역의 반발은 물론 한국이 적합한 지리·환경을 갖췄는지, 경제성은 높은지 등을 따져야 하는 고차방정식”이라며 “현재 기술이나 한국의 여건을 고려하면 신재생이 탈원전의 완벽한 대안이 될 수는 없다”고 강조했다.

◆ 특별취재팀=손해용·이소아·김유경·문희철·윤정민 기자 sohn.yo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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