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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안부 TF 유감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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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김현기 기자 중앙일보 도쿄 총국장 兼 순회특파원
김현기 워싱턴 총국장

김현기 워싱턴 총국장

역사에 ‘만약’은 없다. 하지만 난 “역사는 과거와 현재의 끝없는 대화”(에드워드 카)란 말이 더 와 닫는다. 2015년 12월 28일 한·일 간 위안부 문제 합의를 돌이켜보려는 이유다. 당시 ‘49대 51 협상력 한계의 원죄’란 칼럼을 썼다. 이명박·박근혜 외교팀의 ‘헛발질’로 애초부터 우리에겐 50 이상의 협상력이 없었고, 그나마 49를 챙긴 게 다행이란 내용이었다. 지난 10년가량 지켜봐온 나름의 판단이 그랬다.

사후 절차적 정당성 부여는 자기만족 #명분도 실익도 없는 포퓰리즘 우려

경위는 이렇다. 이명박 정권이던 2011년 8월 헌법재판소는 위안부 문제에 대한 위헌결정을 내렸다. 청구권 협정으로 위안부 문제가 끝났다는 일본과 그렇지 않다는 한국 간에 분쟁이 존재함에도 협정 제3조, 즉 ‘①외교 경로를 통한 해결 시도 ②그게 여의치 않으면 3인 중재 방식으로 해결하라’는 조치를 따르지 않고 있는 건 위헌이란 것이었다. 헌재 결정은 위안부 문제를 정치적으로 타협하라는 게 아니라 청구권 소멸의 해석을 타결하란 주문이었다. 우리 정부는 공식문서를 일본에 보냈다. 답이 없었다. 또 한 번 보냈다. 그래도 안 왔다. 여기서 ‘실책 1호’를 범했다. 헌재 결정 취지에 따라 다음 ‘중재위 회부’로 갔으면 되는 걸 주저했다. “외교로 풀어야지 중재위로 갔다간 한·일 관계 파탄난다”란 논리에 밀렸다.

박근혜는 외교로 푼다면서 정작 위안부 문제를 정상회담 전제조건으로 자승자박 해버렸다. 그러다 오바마의 ‘한·미·일 헤이그 회담’ 압박에 몰려 일종의 알리바이로 ‘국장급 회담’이란 어설픈 카드를 내밀었다. 죽도 밥도 아니었다. ‘실책 2호’. 청구권 협정 검증은 사라지고 주고받기식 ‘정치적 타협’만이 남았다. 그래서 난 아쉬움은 있지만 ‘법적 책임’ 대신 ‘정부 책임’을 얻어낸 당시 위안부 합의는 오랜 기간 누적된 ‘총체적 한계’의 결과였을 뿐 ‘실책 3호’라 생각하진 않는다.

문재인 정부가 위안부 합의 결과를 검증하는 TF를 출범시켰다. 위안부 TF는 사드와 닮았다. 첫째, 환경영향평가. 검증위원회로 절차적 정당성을 확보하려 한다. 둘째, 이미 결론이 정해져 있다. 사드 배치 취소, 위안부 합의 파기·재협상은 염두에 없어 보인다. 대통령 스스로 그리 말하고 있다. 한데 정해진 결과를 따라가는 절차란 무의미하다. 오해와 갈등과 혼선만 자초한다. 사후에 갖다 붙이는 정당성은 자기만족의 수단일 뿐이다. 일본은 5년 전 ‘고노담화 검증’ 당시 나름의 정당성을 갖추기 위해서라 했다. 외교기밀을 다 들춰내곤 “담화는 한·일 간 정치적 흥정이었다”고 실컷 폄훼했다. 그러곤 “하지만 이를 계승한다”는 코미디 같은 결론을 내렸다. 그들은 만족해 했다. 국제사회는 비웃었다. 우리는 안 그럴 자신이 있는가.

외교는 명분과 실리다. 어느 쪽을 택하느냐는 지도자 몫이다. 하지만 명분도 실리도 없으면 그건 단순한 포퓰리즘이다. 위안부 TF는 어떤 명분과 실리를 외치는가. 먼저 명분. 우리 입장에선 굴욕적 협상을 손본다 하지만 국제사회 대다수가 ‘국제 약속’을 ‘국내 사정’으로 뒤집는 것으로 본다면 다른 이야기다. 다음은 실리. 재협상을 아베가 받아들일 공산은 0이다. 재협상한다 해도 더 나은 결과가 나올 수 없다. 무엇보다 북핵 위기가 우리 생각 이상으로 극한으로 치닫고 있다. 사드 레이더가 반신불수인 상황에서 북한 미사일 정보를 우리보다 먼저 탐지, 전달해주는 일본의 존재는 더 이상 계륵이 아니다. 난 위안부 할머니들의 존엄을 소중하게 생각한다. 하지만 지금은 명분과 실리가 뒷받침되는 ‘우리의 생존’이 우선이다. 부디 위안부 TF가 ‘실책 3호’가 되지 않길 바란다.

김현기 워싱턴 총국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