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용 “박 전 대통령 독대 때 뭘 부탁할 분위기 아니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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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이재용. [연합뉴스]

이재용. [연합뉴스]

이재용(49·사진) 삼성전자 부회장은 2일 박근혜 전 대통령과의 독대에서 삼성의 경영권 승계 문제에 대한 언급은 없었다고 말했다. 이 부회장은 2014~2016년 박 전 대통령과의 세 차례 독대에서 미르·K스포츠재단 출연이나 최순실씨의 딸 정유라씨 지원 등에 대한 대화도 없었다면서 박영수 특별검사팀의 공소 사실을 부인했다.

"경영권 승계 문제 언급 있었나” #특검 질문에 이 부회장 "없었다” #“독대 당시 정유라 언급 없었고 #정씨가 누군지도 그땐 몰랐다” #“2015년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 #양사 사장과 미전실서 알아서 해” #최지성 “정유라 지원은 내가 결정 #이 부회장에게는 보고 안 했다”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7부(부장 김진동)는 이날 삼성 전·현직 임원들의 뇌물 공여 혐의 재판에서 이 부회장에 대한 피고인 신문을 진행했다. 이 부회장이 자신의 혐의에 대해 발언한 것은 지난 3월 첫 재판 이후 처음이다.

이 부회장은 박 전 대통령과의 2차 독대(2015년 7월 25일) 직전에 청와대가 작성한 ‘삼성그룹 관련 말씀 자료’에 ‘이 정부 임기 내에 승계 문제가 해결되기를 희망’이라고 적힌 내용과 관련해 박 전 대통령이 언급을 했느냐는 특검팀의 질문에 “없었다”고 답했다.

이 부회장은 특검팀이 안종범 전 정책조정수석의 수첩을 제시하며 “3차 독대(2016년 2월 15일)를 마치고 박 전 대통령이 불러준 내용을 안 전 수석이 적은 것인데 봤느냐”고 하자 “봤는데 (독대에서) 나왔던 얘기도 있고, 저도 모르는 얘기도 섞여 있었다”고 말했다.

최지성 전 삼성그룹 미래전략실 실장이 2일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린 뇌물 공여 혐의 재판에 출석하고 있다. [연합뉴스]

최지성 전 삼성그룹 미래전략실 실장이 2일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린 뇌물 공여 혐의 재판에 출석하고 있다. [연합뉴스]

특검팀이 수첩에 적힌 문구를 토대로 “독대에서 삼성생명의 금융지주사 전환에 대해 언급한 것 아니냐”고 묻자 이 부회장은 “전혀 없었다. 제가 삼성전자와 그 계열사 쪽 일만 해서 잘 모르는데 함부로 꺼낼 얘기가 아닌 것 같다”고 답변했다. 이 부회장은 안 전 수석의 진술과 관련, “안 전 수석이 왜 그렇게 말씀하셨는지 모르겠는데 면담 장소에는 제가 있었다”고도 했다.

이 부회장은 미르·K스포츠재단의 출연과 관련한 특검팀의 주장도 부인했다. 그는 “제가 미르와 K스포츠재단의 이름을 들은 건 언론 보도가 되고 나서다”고 말했다.

지난해 2월 15일 세 번째 독대와 관련해 특검팀이 “단독 면담이 잡혔는데 그전에 정씨 지원과 관련해 보고받은 것 없느냐”고 질문하자 “그때까지도 정씨가 누군지 몰랐다. 최지성 전 미래전략실 실장에게 물어보니 ‘잘 돌아가고 있다’고 해 그냥 그렇게 믿었다”고 답했다.

이 부회장은 당시 면담에서 박 전 대통령이 JTBC를 비판하는 발언을 했다고 말했다. “조서에는 기재가 안 돼 있지만 독대 분위기가 전달되니 설명드린다”고 진술하면서다. 그에 따르면 박 전 대통령은 “중앙일보 자회사인 JTBC의 뉴스 프로그램이 어떻게 그럴 수가 있느냐. (삼성이) 중앙일보·JTBC의 제일 큰 광고주 아니냐”며 질책했다. 이 부회장은 이날 법정에서 “할 말이 없었다. 대꾸하면 화만 돋우는 일 같았다”며 “뭘 부탁하고 그럴 분위기가 아니었다”고 설명했다.

2015년에 이뤄진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에 대해서도 이 부회장은 개입하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특검팀은 2014년 5월 이건희 회장이 심근경색으로 쓰러진 뒤 이 부회장이 경영권을 승계받기 위해선 합병이 필요했다고 의심하고 있다. 이에 대해 이 부회장은 “제가 제일모직 주식을 많이 갖고 있긴 했지만 (합병) 업무에 대해 잘 몰랐고, 양사 사장님들과 미래전략실이 다 알아서 했다”고 말했다.

또 경영권 승계와 관련, “(이건희) 회장님이 중병으로 와병 중이시고 의식은 없었지만 생존해 있기 때문에 (회장 취임은) 아들로서 도리가 아니라고 생각했다”며 “당시 저희 계열사들이 좋은 실적을 내고 있어 조직 체제를 흔들기 싫었다”고 상황을 설명했다. 이 부회장은 차분하고 담담한 목소리로 특검팀의 질문에 답변했다. 합병 등 핵심 쟁점에 대해서는 손짓을 하며 적극적으로 설명했다.

이 부회장은 변호인 신문에서는 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의 법정 증언에 대해서도 반박했다. 변호인이 “김 위원장이 법정 증인으로 나와 이 부회장과 미래전략실 최지성 실장(부회장), 장충기 차장(사장), 김종중 팀장(사장)이 거의 매일 회의하는 집단 의사결정 체제라고 했는데, 4명이 회의한 적이 있느냐”고 묻자 “저도 증언을 듣고 생각해 봤는데 4명이 회의를 한 적도, 식사를 한 적도 없다”고 말했다. “미전실 회의를 주재한 적도 없다”고 덧붙였다.

박상진 전 삼성전자 사장이 2일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린 뇌물 공여 혐의 재판에 출석하고 있다. [연합뉴스]

박상진 전 삼성전자 사장이 2일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린 뇌물 공여 혐의 재판에 출석하고 있다. [연합뉴스]

최지성 “정유라 지원 보고 안 한 것 후회”

이날 이 부회장에 앞서 피고인 신문을 받은 최지성(66) 전 삼성그룹 미래전략실 실장은 정씨 승마 지원에 대해 자신이 최종 결정을 내렸다고 주장했다. 최 전 실장은 미래전략실을 이끌며 이건희 회장의 와병 뒤 회장을 대리해 그룹 경영 전반을 책임진 인물이다. 특검팀은 최 전 실장이 정씨의 승마 지원을 혼자 결정하지 않고 이 부회장과 상의했다고 의심하고 있다.

최 전 실장은 2015년 7월 박 전 대통령과 이 부회장의 두 번째 독대에서 삼성의 승마 지원 미흡을 질책하자 이 부회장, 박상진(64) 전 삼성전자 사장과 대책회의를 한 사실은 인정했다. 이후 황성수 전 삼성전자 전무를 독일로 보내 최순실씨 측근인 박원오 전 대한승마협회 전무를 만나게 했고, 최씨와 박 전 대통령의 친분 관계를 전해 들은 뒤 정씨에 대한 지원을 결정했다는 게 최 전 실장의 진술 요지다.

최 전 실장은 “최순실씨 요구대로 (정씨를 지원)하지 않으면 안 되는 상황이라는 보고를 받고 그대로 해주기로 했느냐”는 특검팀의 질문에 “그렇다”고 답했다. 그러면서 “저야 40년 넘게 (직장생활)한 사람이니 책임지고 물러나면 되지만 후계자 맡을 사람을 구설에 오르게 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해 (이 부회장에게) 보고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또 “지금 와서 생각해 보면 ‘이 부회장에게 보고해 (이 부회장이) 스톱이라도 해줬으면 이런 일이 없지 않았겠나’ 하는 후회도 한다”고 덧붙였다.

이날 오후 11시가 넘어 재판을 마친 재판부는 3일 오전에 이 부회장에 대한 피고인 신문을 이어가기로 했다. 재판부는 이어 특검팀과 변호인 측의 주장을 정리하는 ‘공방 기일’ 재판을 4일까지 진행한다. 이후 7일 결심공판을 열고 재판을 마무리할 계획이다.

김선미·문현경 기자 calli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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