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혁재 사진전문기자의 Behind & Beyond] 지친 영혼 달래주는 ‘맨발의 디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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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9면

2주 전 가수 이은미씨가 검색어 상위에 오른 적 있었다.

뭔 일인가 하여 기사 검색을 해보았다.

모 방송 프로그램에서 맨발로 열창했다는 게 요지였다.

그녀의 맨발 열창은 여전히 화제인 게다.

그녀를 처음 만난 게 2012년이었다.

당시 그녀는 ‘나는 가수다’ 시즌2에 출연하면서 화제의 중심에 있었다.

그 무대에서도 그녀는 맨발이었다.

그리고 그즈음 그녀는 책을 발간했었다.

제목이 ‘이은미, 맨발의 디바’였다.

그녀를 만나러 가면서부터 맨발 사진을 상상했었다.

인터뷰를 듣는 내내 그 궁리만 했었다.

그래서 인터뷰가 끝나자마자 맨발로 사진을 찍자고 그녀에게 제안했다.

“맨발의 이은미는 무대에서 보여드릴게요”라는 게 그녀의 답이었다.

미소 띤 채 부드럽게 말했지만 내겐 청천벽력이었다.

게다가 약속된 시간조차 빠듯했다.

아쉬워도 ‘맨발의 이은미’는 포기해야 했다.

그녀를 다시 만난 게 2016년이었다.

이번엔 꼭 맨발인 채로 사진을 찍어야겠다고 작정했다.

마침 취재기자가 ‘맨발의 디바’를 주제로 인터뷰를 시작했다.

“노래할 때 구두 굽이 카펫을 누르는 소리까지 거슬리더라고요. 그래서 벗었죠.

그 때문에 ‘맨발의 디바’라는 별명을 얻었어요. 세상에서 저보다 멋진 별명을

가진 가수가 있을까요? 스타일리스트는 속상해 하죠. 패션의 완성인데

무대 위에서 벗어서 던져버리니…. 처음엔 이십 년 후에도 이렇게 불러 주시면

고맙겠다고 생각했는데 벌써 이십 년이 훌쩍 넘었네요.”

지난해 그녀는 데뷔 27년째였다.

그런데도 여전히 ‘맨발의 디바’로 불렸다.

그녀는 27년간 900회가 넘는 공연을 했으며 오래지 않아

1000회 공연을 이룰 것이라고 했다.

그런데도 무대는 어렵다고 했다.

공연 전엔 잠을 잘 못 이룰 정도로 예민해진다고 했다.

다음 생에 음악을 할 거냐는 질문에 안 한다고 하는 이유도 잠 때문이라고 했다.

그만큼 부담스럽고 힘들다는 의미였다.

이런 데도 그녀가 계속 무대에 서는 이유는 뭘까?

“제가 무대에서 잘 웁니다. 팬들에게 너무 감사해서죠. 한 가수의 목소리를

30년 가까이 들어준다는 게 너무 고맙습니다. 저도 많이 듣잖아요.

많이 들으면 지겹게 들리는 부분도 있죠. 그걸 아니 고마움을 더 느끼는 겁니다.

그래서 더 새로운 걸 하려고 애씁니다.”

당시 그녀가 낸 새 앨범의 표지에 ‘Amor Fati’라 적혀 있었다.

라틴어로 ‘네 운명을 사랑하라’는 뜻이었다.

그녀는 자신에 대한 위로로 이 앨범 작업을 시작했다고 했다.

자신이 받았던 그 위로가 다른 어떤 이에게도 위로가 되었으면 좋겠다고 했다.

인터뷰가 끝난 후 그녀에게 이렇게 말했다.

“이은미씨의 맨발은 우리에게 27년의 위로였습니다.

오늘은 맨발의 사진을 꼭 찍게 해 주십시오.”

그녀는 빙긋이 웃기만 했다. 답을 기다리며 조마조마했다.

“맨발의 이은미는 무대에서 보여주겠다”던 4년 전의 기억 때문이었다.

한동안 웃던 그녀가 신발을 벗었다. 그러면서 말했다.

“제 발이 키에 비해서 워낙 작아요. 이럴 줄 알았으면 발 정리라도 하고 올 걸 그랬어요.”

그녀의 말 그대로 워낙 작은 발이었다.

하지만 그 작은 발로 27년간 우리에게 준 것은 분명 ‘위로’였다.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shotgu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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