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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사설

성급한 정책의 어두운 그림자 … 무인화와 프리터족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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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6면

LG전자가 개발한 안내·청소 로봇이 인천공항에 배치돼 시범서비스를 시작했다. 안내로봇은 항공편 정보, 탑승구, 편의시설 위치 안내를 한국어·영어·중국어·일본어 등 4개 국어로 제공하고 공항 내 목적지까지 에스코트도 해준다. 청소로봇도 청소가 필요한 구역의 지도를 데이터베이스에 담아 스스로 찾아다닌다. 인천공항에는 이미 무인 체크인 기기, 무인 출입국 심사대도 운영되고 있다. 안내·청소·발권은 물론 출입국 관리까지 사람이 필요 없는 시대가 가까워지고 있다. 새 정부 들어 가장 먼저 ‘비정규직의 정규직화’를 다짐했던 인천공항의 또 다른 단면이다.

최저임금 1만원과 정규직화 서둘면 #무인화·프리터족 늘어나는 풍선효과

무인기기는 이제 일상에서도 낯설지 않은 존재가 됐다. 많은 패스트푸드 가게가 아르바이트생 대신 무인 키오스크를 통해 주문을 받는다. 대형마트 푸드코트와 동네 우동집에도 무인 키오스크가 하나둘 들어서기 시작했다. 교통분야는 변화가 더 빠르다. 셀프 주유소와 무인 주차장이 보편화됐고, 무인 개찰구를 지나 운전사가 없는 지하철을 타는 게 이상하지 않은 세상이 됐다. 한국도로공사는 2020년까지 전국 고속도로 요금소를 전면 무인화할 예정이다.

정부가 최저임금 1만원과 비정규직의 정규직화 공약을 밀어붙이면서 풍선 효과와 부작용을 우려하는 지적이 고개를 들고 있다. 로봇이 저임 근로자를 대체하는 ‘무인화 시대’를 앞당기고 ‘(아르바이트로 생계를 유지하는) 프리터족’을 양산시킬 수 있다는 것이다. 최저임금 인상이 발표된 직후 무인단말기업체들의 주가는 10~20%씩 뛰어올랐다. 인건비 부담을 줄이기 위해 무인화 설비가 대폭 늘어날 것이란 기대 때문이다. 실제로 최저임금을 올린 미국의 시애틀 등에서도 매장에 사람 대신 무인화 기계가 늘어나는 ‘최저임금의 역설’이 일어났다.

일부에선 최저임금 인상이 곧 프리터를 양산한다는 ‘공포론’에는 고개를 젓고 있다. 아르바이트는 여전히 더 좋은 일자리를 찾기 위한 임시직에 머물 것으로 본다. 하지만 일본처럼 평생 아르바이트로 먹고사는 프리터족이 늘어나지 않는다는 보장은 없다. 더 큰 문제는 프리터족 양산이 초래할 부작용이다. ‘잃어버린 20년’ 동안 일본은 프리터족의 고용 불안으로 만혼(晩婚) 현상이 보편화되고, 출산율이 떨어졌다. 현재 30~40대인 이들이 고령화될 경우 연금 사각지대에 놓여 노인 빈곤이 한층 심각해질 것이란 우려도 나오고 있다.

그렇지 않아도 인공지능(AI)의 발달로 무인화가 가속화되고 일자리가 급감할 것이란 묵시록이 쏟아지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정부가 지나치게 정규직화를 밀어붙이면 기업들은 고용을 줄이고 무인화를 서두를 수밖에 없다. 과도한 최저임금 인상도 자칫 일본처럼 프리터족 급증으로 비혼(非婚)과 저출산 등 심각한 사회문제를 낳을 수 있다. 정부의 호흡 조절이 필요하다. 아무리 중요한 대선공약이라도 실제 정책은 풍선 효과와 부작용까지 감안해 세심하고 신중하게 수립돼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