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남북군사회담 불발, 베를린 구상이 첫 스텝부터 꼬였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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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6면

문재인 대통령의 ‘베를린 구상’이 남북군사회담 불발로 첫 스텝부터 꼬이고 말았다. 국방부가 판문점에서 남북군사회담을 열자고 지난 17일 제의했으나 회담 날인 어제까지 북한은 감감무소식이었다. 북한 반응이 없자 문상균 국방부 대변인은 27일까지 기다리겠다고 어제 다시 제의했다. 북한은 대한적십자사가 제의한 남북적십자회담에 대해서도 아무런 응답이 없는 상태다. 북한은 오히려 “추악한 보수 역적 무리를 박멸해야 한다”며 남남 갈등을 부추기고 있다.

남북군사회담이 이렇게 꼬이고 있는 것은 준비 없이 서두른 면이 없지 않다. 대통령의 ‘베를린 구상’의 성과를 빨리 내야 한다는 강박감이 작용한 때문이다. 사실 정부가 이렇게 중요한 회담을 추진할 때는 사전 정지작업과 회담 이후의 대안까지 마련했어야 했다. 국제 여건과 북한 상황 평가도 부족했다. 그 결과 정부의 소나기식 남북회담 제의에 북한은 무반응이고, 미·일과 불협화음만 불거졌다.

현재 북한 문제는 정부의 판단과는 반대로 가고 있다. 미국은 대북제재를 위해 지난 19일 미·중 경제대화에서 북한과 거래한 중국 기업을 제재한다는 입장을 전달했다. 미 상원에선 같은 날 북한의 국제금융을 제한하고 개성공단 재개에 반대하는 법안을 발의했다. 그런가 하면 외신에는 북한이 2주 안에 새로운 탄도미사일을 발사하고,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SLBM)의 발사 조짐도 있다는 보도가 나오고 있다. 북한이 이처럼 다양한 탄도미사일 발사를 준비하는 게 사실이라면 대화에 나오겠는가. 따라서 정부는 이제부터라도 명분보다 현실을 직시해야 한다. 대선 과정에서 내놓은 공약을 실천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북핵을 둘러싸고 돌아가는 국제 정치의 흐름부터 냉정하게 짚어봐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