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의제기 않겠다" 동의 요구한 세월호 배상금 청구서는 위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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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 피해자 유족들에게 국가 배상금을 받는 조건으로 ‘일체의 이의제기를 하지 않겠다’는 동의를 받게 한 세월호특별법 시행령은 헌법에 위반된다는 헌법재판소 결정이 나왔다.

헌법재판소, 세월호특별법 시행령 위헌 결정 #"정치적 의사표현까지 가로막는 행동의 자유권 침해 가능성"

헌법재판소(소장 권한대행 김이수)는 29일 세월호 참사 유족 10명이 ‘4·16 세월호 참사 피해구제와 지원 등을 위한 특별법’ 시행령의 일부 조항에 대해 “행동의 자유를 침해한다”고 위헌 결정했다.

헌법소원이 제기된 특별법 조항은 배상금을 받은 피해자들의 사고 책임자에 대한 손해배상 청구권을 국가에 위임토록 하고,
배상금을 받은 뒤 국가를 상대로 추가 손해배상을 요구할 수 없도록 규정하고 있다. 또 시행령의 배상금 청구서 서식에는 '세월호 참사에 관해 어떤 방법으로도 일체의 이의를 제기하지 않을 것을 서약한다'는 조항이 들어있다.

배상금을 받으면 일체의 이의제기를 못하도록 한 동의 조항(밑줄친 부분)에 대해 헌법재판소가 위헌 결정을 내렸다.

배상금을 받으면 일체의 이의제기를 못하도록 한 동의 조항(밑줄친 부분)에 대해 헌법재판소가 위헌 결정을 내렸다.

이 청구서를 접한 유족들은 “정부가 보상금 지급을 미끼로 피해자와 유족들이 진상규명 및 책임자 처벌을 요구할 권리를 막고 있다”고 반발했다. 또 “피해자의 재산권과 국가배상청구권 등을 침해한다”며 위헌소송을 제기했다.

배상금 지급 대상인 피해자와 유족 461명 중 113명이 배상금 지급신청 종료기한인 2015년 9월 28일까지 배상금 지급신청과 수령을 거부했다.

헌재는 결정문에서 이의제기 금지 조항(시행령)에 대해 “법률적으로 의미 없는 규정으로 해석될 가능성이 다분하지만 참사와 관련된 일체의 이의제기 금지 의무를 부담시키는 것은 일반적 행동의 자유를 침해한 것”이라고 밝혔다. 이어 “기본권 제한은 법률로써만 가능한데 이 부분은 법률의 근거도 없다”고 덧붙였다.

헌재는 다만 배상금 수령 후 국가를 상대로 한 손해배상청구권을 제한한 특별법 16조에 대해선 “신속한 피해구제와 분쟁의 조기종결이란 입법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적절성이 인정된다”며 합헌으로 결정했다.

헌재 관계자는 "이번 결정은 이미 종료된 배상금 신청 기한의 효력과는 관련 없다"며 "배상금을 신청하지 않은 피해자들은 추후 국가를 상대로 손해배상 청구소송 등 민사적인 방법으로 해결해야 한다"고 말했다.
유길용 기자 yu.gilyo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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