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주 세월호 분향소 불지른 60대 노숙인…범행 동기엔 '횡설수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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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9일 오후 8시25분쯤 전주시 전동 풍남문 광장에 설치된 세월호 분향소가 불에 타 훼손됐다. 경찰은 분향소에 불을 지른 60대 노숙인을 붙잡아 조사하고 있다. 사진 전북자치도소방본부

지난 19일 오후 8시25분쯤 전주시 전동 풍남문 광장에 설치된 세월호 분향소가 불에 타 훼손됐다. 경찰은 분향소에 불을 지른 60대 노숙인을 붙잡아 조사하고 있다. 사진 전북자치도소방본부

60대 노숙인 구속영장 신청 예정 

전북 전주에 있는 세월호 분향소에 불을 지른 60대 노숙인이 붙잡혔다. 현재 천막 형태 세월호 분향소는 전주밖에 없다. 세월호 참사와 연관 있는 진도·안산·제주와 수도인 서울은 건물 내부에 기억관을 설치·운영한다.

전주 완산경찰서는 21일 "일반물건 방화 혐의로 체포한 A씨를 조사하는 대로 구속영장을 신청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A씨는 지난 19일 오후 8시25분쯤 전주 한옥마을 인근 풍남문 광장(전주시 전동)에 설치된 세월호 분향소에 불을 낸 뒤 달아난 혐의를 받고 있다.

불이 나자 소방당국이 출동해 10여분 만에 껐다. 인명 피해는 없었으나, 천막(몽골 텐트) 한 면과 가스히터·플래카드 등이 타 소방서 추산 19만원가량 재산 피해가 났다.

지난 19일 오후 8시25분쯤 전주시 전동 풍남문 광장에 설치된 세월호 분향소가 불에 타 훼손됐다. 60대 노숙인이 불을 지른 것으로 조사됐다. 사진 전북자치도소방본부

지난 19일 오후 8시25분쯤 전주시 전동 풍남문 광장에 설치된 세월호 분향소가 불에 타 훼손됐다. 60대 노숙인이 불을 지른 것으로 조사됐다. 사진 전북자치도소방본부

"횡설수설…범행 동기 조사해야"

경찰은 주변 폐쇄회로TV(CCTV) 분석 결과 화재 직후 현장을 배회한 A씨를 용의자로 특정했다. CCTV 영상엔 A씨가 라이터를 이용해 분향소 천막에 불을 붙이려다 실패하자 근처 쓰레기 더미에서 종이 가방을 가져와 다시 불을 붙인 뒤 천막에 가져다 놓는 모습이 찍혔다. 경찰은 범행 20여시간 만인 20일 오후 4시30분쯤 풍남문 광장 인근에서 A씨를 붙잡았다.

A씨는 일정한 주거지 없이 풍남문 광장에서 노숙해 온 것으로 조사됐다. 주민 등록은 돼 있으나 가족이 있는지는 확인되지 않았다. 경찰에 따르면 A씨는 범행 후 객사(전주 풍패지관) 등 전주시내를 떠돌아다녔다. "체포 당시 저항은 없었고, 꼬질꼬질한 차림의 전형적인 노숙인이었다"고 경찰은 전했다.

경찰 관계자는 "A씨가 횡설수설하는 단계라 정확한 범행 동기는 조사해 봐야 한다"며 "범행 당시 음주 여부나 지적장애가 있는지 등도 살펴볼 예정"이라고 말했다. 이병무 세월호 분향소 지킴이는 중앙일보와 통화에서 "놀랐다"며 "천막은 다시 설치했고, 내부 정비는 시민 모금을 통해 추진할 계획"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광장에서 술을 마시거나 '분향소를 철거하라'고 항의하던 사람은 있는데 경찰이 보여준 사진 속 남성(A씨) 인상착의는 처음 봤다"고 했다.

21일 오전 방화 이후 새 몽골 텐트로 설치한 세월호 분향소(왼쪽). 그 옆에 이태원 참사 분향소가 있다. 사진 이병무 세월호 분향소 지킴이

21일 오전 방화 이후 새 몽골 텐트로 설치한 세월호 분향소(왼쪽). 그 옆에 이태원 참사 분향소가 있다. 사진 이병무 세월호 분향소 지킴이

분향소 철거 두고 전주시와 갈등  

한편 세월호 분향소는 2014년 8월 민주노총 등이 세웠다. 2017년 12월 자진 철거 이후 시민단체 등이 2018년 4월 다시 설치했다. 세월호 분향소 바로 옆엔 2022년 12월 들어선 이태원 참사 분향소가 있다. 서울을 제외하고 전국에 남아 있는 유일한 분향소다.

분향소 철거를 두고 전주시는 세월호·이태원 참사 유족과 갈등을 빚어 왔다. 시는 "'도시 미관을 훼손하고, 영업에 방해된다'는 시민·상인 민원이 끊이지 않는다"며 2022년 8월 강제 철거 시도에 이어 지난해 11월 자진 철거를 요청했다. 그러나 "진상 규명과 책임자 처벌이 안 된 상황에서 희생자를 애도하고 시민과 소통하는 공간마저 없앨 수는 없다"는 유족과 시민단체 반발에 부닥쳐 무산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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