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미로 꾸민 얘기"…'약촌오거리 살인' 진범에 징역 15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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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11월 17일 광주고법에서 열린 '익산 약촌오거리 택시 살인 사건' 재심에서 무죄를 선고받은 최모(33·오른쪽 두 번째)씨와 변론을 맡은 박준영(왼쪽 두 번째) 변호사 등이 법원 앞에서 만세를 부르고 있다. [사진 박준영 변호사]

지난해 11월 17일 광주고법에서 열린 '익산 약촌오거리 택시 살인 사건' 재심에서 무죄를 선고받은 최모(33·오른쪽 두 번째)씨와 변론을 맡은 박준영(왼쪽 두 번째) 변호사 등이 법원 앞에서 만세를 부르고 있다. [사진 박준영 변호사]

전북 익산에서 발생한 '약촌오거리 택시기사 살인사건'의 진범으로 지목된 김모(36)씨에 대해 법원이 중형을 선고했다. 김씨는 2000년 사건 발생 이후 17년 만에 법의 심판을 받았다.

전주지법 군산지원, 25일 진범 김씨에 1심 선고 #"피고인 진술 일관성·합리성 떨어져 중형 불가피" #2000년 당시 16세 다방배달원 10년간 억울한 옥살이 #지난해 11월 재심서 무죄 선고…당일 진범 김씨 체포

'익산 약촌오거리 살인사건' 진범에 대한 1심 선고 공판이 열린 전주지법 군산지원. 김준희 기자

'익산 약촌오거리 살인사건' 진범에 대한 1심 선고 공판이 열린 전주지법 군산지원. 김준희 기자

전주지법 군산지원 형사1부(부장 이기선)는 25일 택시기사의 돈을 빼앗으려다 살해한 혐의(강도살인)로 기소된 김씨에게 징역 15년을 선고했다.

재판부는 "피고인이 범행을 부인하지만 2003년 경찰 조사 당시 본인 진술과 친구 임모씨의 진술은 이 사건의 범행 경위와 방법, 범행 후 느낌 등 주요 부분과 대체로 일치한다"며 징역형을 선고했다.

김씨는 2000년 8월 10일 오전 2시7분쯤 익산시 영등동 약촌오거리에서 택시기사 유모(당시 42세)씨에게 돈을 빼앗으려다 여의치 않자 뒷좌석에서 유씨의 목 등을 흉기로 12차례 찔러 살해한 혐의로 구속기소됐다. 김씨는 "살인을 한 적이 없고 2003년 경찰 조사에서 범행을 인정한 것은 재미 삼아 꾸며낸 이야기"라며 무죄를 주장했다.

'익산 약촌오거리 살인사건' 진범에 대한 1심 선고 공판이 열린 전주지법 군산지원. 김준희 기자

'익산 약촌오거리 살인사건' 진범에 대한 1심 선고 공판이 열린 전주지법 군산지원. 김준희 기자

재판부는 "'칼을 찔렀을 때 뼈에 걸린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칼끝이 휘어져 있고 피와 비계처럼 보이는 하얀 물질이 묻어 있었다' 등의 피고인과 친구 임씨 등의 진술은 직접 경험한 사람이 아니고는 말할 수 없는 부분"이라고 설명했다.

두 사람이 사건 발생 3년이 지난 뒤 재미 삼아 지어낸 이야기가 이 사건만이 갖는 고유한 특징과 일치한다는 것은 경험칙상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재판부는 "피고인이 현재까지 전혀 뉘우치지 않는 점 등을 감안할 때 엄벌이 불가피하다"면서도 "범행 당시 19세의 미성년자였고 범행 이후 다른 범죄를 저지르지 않은 점, 범행 당시 구 형법상 소년범 살인의 유기징역 상한이 15년인 점을 감안했다"고 설명했다.

전주지법 군산지원 공판안내. 김준희 기자

전주지법 군산지원 공판안내. 김준희 기자

앞서 검찰은 지난 16일 열린 결심공판에서 징역 30년을 구형했다.

약촌오거리 사건은 초기부터 검찰과 경찰의 부실·강압수사 논란을 일으켰다. 당시 검찰은 인근 다방의 커피 배달원이었던 최모(33·당시 16세)씨를 살인 혐의로 구속기소했다. 최씨는 이듬해인 2001년 5월 항소심에서 징역 10년이 확정돼 2010년 만기 출소했다.

하지만 법원의 확정 판결 이후에도 '진범이 따로 있다'는 제보가 경찰에 입수되는 등 논란이 이어졌다. 2003년 재수사에 나선 군산경찰서는 김씨 등 2명을 진범으로 지목해 긴급체포했지만 증거 부족과 진술 번복 등을 이유로 수사를 종결했다.

'익산 약촌오거리 살인사건' 진범에 대한 1심 선고 공판이 열린 전주지법 군산지원 201호 법정. 김준희 기자

'익산 약촌오거리 살인사건' 진범에 대한 1심 선고 공판이 열린 전주지법 군산지원 201호 법정. 김준희 기자

최씨는 2013년 3월 "경찰의 강압 수사 때문에 허위 자백을 했다"며 재심을 청구했고, 대법원은 2015년 12월 재심을 확정했다.

광주고법은 지난해 11월 17일 살인 혐의로 기소된 최씨에 대한 재심에서 "당시 피고인이 자백한 살해 동기와 경위가 객관적 합리성이 없고 목격자의 진술과 어긋나는 등 허위 자백일 가능성이 크다"며 무죄를 선고했다. 10년간 옥살이를 한 최씨가 16년 만에 누명을 벗은 것이다.

최씨는 무죄를 선고받은 뒤 "살인범이라는 꼬리표가 가장 힘들었다. 아들에게 부끄럽지 않은 아빠가 되겠다"고 말했다. 전주지검 군산지청은 최씨에게 무죄가 선고된 지 4시간 만에 경기도 용인에서 진범으로 지목된 김씨를 체포했고 지난해 12월 6일 구속기소했다.

최씨의 재심 변론을 맡았던 박준영 변호사는 "어떻게 '가짜 살인범'이 만들어졌고 진범이 어떻게 풀려났는지 당시 수사를 담당한 공권력에 대한 책임 추궁이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군산=김준희 기자 kim.junhe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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