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정담] 한국당 예비경선, 9명 중 3명은 1억 내고 15분 연설로 끝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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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오른 대선 경선

자유한국당 제19대 대통령후보선거 후보자 비전대회가 17일 오후 서울 여의도 63빌딩에서 열렸다. 조경태·원유철·신용한·김진태·김진·김관용·안상수·이인제·홍준표 후보(왼쪽부터)가 선서하고 있다. [사진 박종근 기자]

자유한국당 제19대 대통령후보선거 후보자 비전대회가 17일 오후 서울 여의도 63빌딩에서 열렸다. 조경태·원유철·신용한·김진태·김진·김관용·안상수·이인제·홍준표 후보(왼쪽부터)가 선서하고 있다. [사진 박종근 기자]

17일 서울 63빌딩에서 열린 자유한국당 대선 1차 예비경선. 김진태 의원이 정견 발표를 위해 단상에 올랐다. 김 의원이 인사를 한 뒤 처음 한 얘기는 “이 연설 1분에 700만원이 넘는다”는 것이었다. 그러면서 김 의원은 “제 말씀 들어야 됩니다”라고 강조했다.

예비경선 등록자 기탁금만 1억 #여론조사 1차 컷오프서 3명 탈락 #조기대선에 후원금 모금 못해 비명 #김문수는 “돈 없다” 경선 참여 포기 #당 “본인 알리는 홍보비로 생각을”

한국당은 전날 9명의 경선후보 등록자에게 기탁금 1억원을 받았다. 예비후보 9명은김진태·안상수·원유철·조경태 의원, 이인제 전 최고위원, 김관용(경북)·홍준표(경남) 지사, 김진 전 중앙일보 논설위원, 신용한 전 대통령 청년직속위원장이다.

이들 중 3명은 이날 한 차례, 15분간 연설한 뒤의 여론조사에서 떨어진다. 1차 컷오프자들은 15분 연설을 위해 1억원을 쓴 셈이다.

한국갤럽이 17일 발표한 여론조사에서 한국당 지지율은 12%였다. 새누리당 시절 30%를 웃돌던 것과는 격세지감으로, 한마디로 내리막길을 걷고 있는 중이다. 한국당이 배출한 대통령은 탄핵당했고, 비주류들은 탈당해 바른정당을 만들었다. 문재인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나 안철수 전 국민의당 대표의 경우 한국당과는 연정(聯政)도 불가하다는 입장이다.

그런 한국당의 예비경선 기탁금은 다른 당에 비해 높다. 민주당은 예비경선이 없고, 국민의당은 예비경선에 5000만원을, 바른정당은 예비경선에 2000만원을 낸다. 정의당은 예비경선과 본선 구분 없이 후보기탁금이 500만원이다.

그런데도 1억원의 기탁금을 내고 경선에 나선 이유는 뭘까.

신용한 전 위원장은 “이런 상황에서 1억원을 내라는 건 정말 과하지만 책임지지 않는 보수 문화, 진정한 보수의 가치가 뭔지 알려주지 않는 것에 대해 울림 있는 메시지를 던져야겠다고 생각해 깃발을 들었다”고 말했다. 김진 전 논설위원은 “중앙선관위에 대통령 예비후보로 내는 기탁금도 6000만원”이라며 “국가에서 제시한 기준보다 더 높은 돈을 당에서 대선후보에게 받는 이유는 납득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하지만 그는 “나에게는 엄청난 부담이지만 이 도전을 포기하기에는 국가적 사태가 너무 위중하다”며 “보수 입장에서 정권을 뺏길 위험이 있기 때문에 나서지 않을 수 없었다”고 말했다. 원유철 의원도 “진정한 보수의 가치를 바로 세우기 위해 선당후사의 마음으로 존중하고 뛰기로 했다”고 밝혔다.

반면 김문수 전 경기지사는 대선 기탁금 문제로 경선 참여를 포기했다. 김 전 지사는 “첫째 돈이 없다. 그 돈을 어떻게 볼지 모르겠지만 나는 60년 모은 재산이 4억이 안 된다. (경선을 하려면)전 재산이 다 들어가야 된다”고 털어놓았다. 그는 “지난번 2012년 (새누리당) 대선 때는 현직 도지사였기 때문에 후원이 됐고, 기간이 두 달 정도로 길어 펀딩도 가능했는데, 지금은 며칠 만에 다 해야 되니 도저히 방법이 없다”고 토로했다.

민주당을 탈당해 입당한 조경태 의원은 “컷오프 제도를 하는 것은 기회균등의 측면에서 맞지 않다”고 경선룰에 불만을 터뜨렸다. 홍준표 경남지사도 “당이 비상 상황인 점은 이해하지만 기탁금 1억원을 포함해 본선비용까지 총 3억씩을 내라는 건 좀 과한 측면이 있다”고 했다.

본경선 기탁금은 한국당 2억, 민주당 4억

당 사무처에선 실제 들어가는 경비가 많아 어쩔 수 없다는 입장이다. 예비경선 총경비가 여론조사 비용을 포함해 3억~4억원 선이 될 것으로 사무처는 예상하고 있다. 정견 발표회와 TV 토론 등에만 1억원 내외의 비용이 들어간다고 한다. 당 관계자는 “예비 경선 탈락자들이 낸 비용 일부가 본경선에서 사용된다는 점에서 조금 억울해할 수도 있지만 결국 본인을 알리는 홍보비라 생각하면 된다”고 말했다.

예비경선 통과자가 본경선에서 치르는 기탁금은 한국당이 오히려 낮은 편이다. 본선에서는 민주당 4억원, 국민의당 3억5000만원, 한국당·바른정당 2억원 순이다. 보통 후원회를 통한 모금이 경선자금을 마련하는 방법이다. 그러나 탄핵으로 조기 대선이 열리게 되는 바람에 상대적으로 지지율이 낮은 후보들은 비명을 지르고 있다.

글=박성훈·백민경 기자 park.seonghun@joongang.co.kr

사진=박종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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