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에서] 2012년엔 '무제한 토론' 촉구했던 문재인은 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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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 2ㆍ3위 주자들의 ‘끝장 토론’ 요구가 거세다.
안희정 충남지사의 대변인을 맡은 박수현 전 의원은 15일 “세 번의 토론이 끝났지만, 변별력 없는 ‘맹탕 토론회’라 지적되고 있다”며 “토론하지 못하고, 소통 능력 없는 대통령이 초래한 비극을 우리 눈으로 보고 있지 않나. 앞으로 예정된 토론회는 ‘후보 간 1대1 토론’을 원칙으로 하고, 주제와 시간 등의 제약 없는 무제한 끝장 토론 진행을 원한다”고 밝혔다.
이재명 성남시장 측도 즉각 화답했다. 김병욱 대변인은 “심도있는 검증과 생산적 토론을 위한 후보자 간 일대일 토론을 즉각 수용한다”며 “시기와 방법, 절차, 내용 등 모든 것을 문재인 캠프에 백지 위임하겠다”고 제안했다.

안희정, 이재명 "1:1로 무제한 끝장 토론 벌이자" #문재인 측, "이미 정해진 규칙 바꿀 수 없어" #일각에선 문재인 토론 기피 의혹 #2012년 문재인 "형식에 구애받지 않고 TV토론 하자" #지난달에도 "끝장 토론은 꼭 필요하다" 강조

더불어민주당 대선주자인 이재명 성남시장이 14일 오후 서울 여의도 KBS 본관에서 열린 더불어민주당 제19대 대통령선거후보자 방송사 합동토론회 준비를 하고 있다.

더불어민주당 대선주자인 이재명 성남시장이 14일 오후 서울 여의도 KBS 본관에서 열린 더불어민주당 제19대 대통령선거후보자 방송사 합동토론회 준비를 하고 있다.

하지만 문재인 전 민주당 대표 측은 ‘불가’ 입장이 확고하다. 문 전 대표 측김경수 대변인은 “후보자 토론 방식은 모든 후보의 합의로 결정된 것”이라며 “일부 후보 측의 토론방식 변경 요구는 경기 중에 갑자기 룰을 바꾸자는 격”이라고 거부했다.

문재인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

문재인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

이에 안 지사와 이 시장 측은 ”룰 변경을 내세우는 건 핑계에 불과하다“고 반박했다. 김병욱 대변인은 ”후보자 간 합의 내용은 어디까지나 토론회 횟수와 시기, 주관방송사 등“이라고 말했다. 박수현 대변인도 “토론회를 몇 번 하겠다는 원칙에 합의한 것”이라며 “토론의 세부적 구성까지 합의한 건 아니다”라고 설명했다. 14일 토론에서도 이 시장은 각 후보에게 ‘끝장 토론’을 즉석에서 제안했다. 당시 안 지사와 최성 고양시장은 찬성했지만 문 전 대표만 거부했다.

안희정 충남지사가 15일 서울대 글로벌공헌당 대강의실에서 사회복지학과 학생과들에게 강의하고 있다. 오종택 기자

안희정 충남지사가 15일 서울대 글로벌공헌당 대강의실에서 사회복지학과 학생과들에게 강의하고 있다. 오종택 기자

안 지사와 이 시장 측이 토론회에 대해 갖는 불만은 짧은 시간동안 ‘뻔한 질문’과 ‘뻔한 답변’을 주고받는 패턴이 이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이 시장 측 관계자는 “현재 토론은 국론 분열을 어떻게 해결할 것인지, 경제를 어떻게 살릴 것인지 등의 사전질문이 주어지고 미리 만들어온 답변을 읽는 데만 전체 토론회 시간의 절반 정도가 소요된다. 같은 질문과 대답이 토론회마다 반복된다. 반면 상호 토론은 1분 정도 질문하고 1분 30초간 듣는다. 이게 무슨 토론이냐”고 말했다. 실제로 지난 14일 민주당 당내 후보 토론회에서도 90분 중 사전 질문에 대해 준비한 내용을 답하는 데만 50여분이 걸렸다.

서원대 엄태석 행정학과 교수는 “현재 민주당 경선 후보들의 지지율을 합치면 60%가 넘는다. 사실상의 본선이나 다름없는 상황인만큼 충분한 검증이 필요하다”며 “미국 민주당 경선에서 힐러리 클린턴 후보와 버니 샌더스가 사전원고 없이 2시간 가량 치열하게 맞붙었던 것에 비교하면 지금 토론 형식은 수박겉핥기 같은 측면이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하지만 무제한 토론을 하면 특정 주제에 만 함몰되거나 인신공격성 소재로 흐를 수도 있으니, 주제별로 충분한 시간을 갖는 정도로 절충하는 방식이 적절할 것 같다"고 덧붙였다. 이와 관련해 방송사 측 관계자는 “만약 각 후보 측이 합의한다면 토론 구성을 바꿀 수는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일각에서는 문 전 대표가 토론회에 지나치게 소극적이라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지난달 12일에도 민주당이 광주에서 대선후보 토론회 열기로 했지만 문 전 대표 측은 일정 등의 이유와 박근혜 전 대통령의 탄핵에 집중할 것을 내세우며 거부했다. 하지만 당시 JTBC ‘썰전’ 녹화에는 참여해 대선 후보로서의 면모를 부각했다.
당시 이 시장 측 관계자는 ”‘썰전’ 녹화에 걸리는 시간이 토론보다 더 길 것“이라며 ”애초 박 전 대통령 탄핵에 집중하자는 것은 토론을 피하기 위한 핑계인 것 같다“며 불만을 토로했다.
15일에도 광주의 한 언론사가 주최해 광주 지역 방송 3사에서 중계 예정이던 토론회 제안도 문 전 대표 측이 일정 등을 이유로 거부해 무산됐다.
문 전 대표 측은 ”사전에 후보 간에 합의된 일정이 아닌데 무조건 참여하라는 것은 무리한 요구“라고 말했다.

한편 이같은 문 전 대표 측의 입장이 지난 대선과 180도 달라졌다는 지적도 있다. 시계를 2012년으로 되돌려보면 당시 각 후보 진영에 TV토론 참여를 강하게 촉구했던 것은 문 전 대표 측이었다.

2012년 11월 4일 당시 민주통합당의 대선 후보로 나선 문 전 대표는 박근혜 당시 새누리당 후보가 TV토론 불참을 비판하며 자신의 페이스북에 이렇게 적었다. ”TV토론에 참여하는 것은, 국민의 알권리를 충족시켜야 할 대선 후보의 책임이자 의무입니다. 저는 형식에 구애받지 않고 방송사 연속 초청 토론에 응하겠습니다. 박근혜 후보와 안철수 후보에게 TV토론 참여를 거듭 제안합니다.”
당시 문 후보 측 진성준 대변인도 “문 후보는 단독이든, 양자든, 3자든 형식에 구애받지 않고 토론을 환영한다”며 “박 후보와 안 후보도 텔레비전 토론에 나오라”고 말했다.

문재인 페이스북

문재인 페이스북

역시 캠프 대변인이었던 김현 전 의원도 “TV토론보다 더 효과적인 선거운동 방식은 없다”고 강조했다. 김 대변인은 “유세장을 찾는 국민들의 불편함을 생각하면 TV토론을 통해 국민들이 편안하게 후보의 정견을 들을 기회다”며 “그런 점에서 유세 일정이 빡빡해서 TV토론이 불가하다는 새누리당의 주장은 이해 불가다”고 주장했다. 또 “후보의 철학과 정견, 비전을 분명하게 전달할 편리한 방법이 있는데도 이를 마다할 이유가 없다”며 “더욱이 박근혜 후보는 준비된 후보임을 강조하고 있다. 모든 것이 다 준비되어있다면 박 후보가 토론에 응하지 못할 이유가 없지 않은가”라고 압박했다.
문 전 대표는 지난달 5일 SBS와의 인터뷰에서 “끝장토론 또는 치열한 토론, 후보자들에 대한 평가를 위해서는 꼭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라고 강조한 바 있다.

유성운 기자 pirat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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