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롱”하던 개구쟁이 딸 매리언, 사탕 물리자 잠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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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8면

로버트 켈리 교수와 부인 김정아씨가 15일 부산대 캠퍼스에서 딸 매리언을 손그네 태우고 있다. 김씨가 안고 있는 아이는 9개월 된 아들 제임스. [부산=송봉근 기자]

로버트 켈리 교수와 부인 김정아씨가 15일 부산대 캠퍼스에서 딸 매리언을 손그네 태우고 있다. 김씨가 안고 있는 아이는 9개월 된 아들 제임스. [부산=송봉근 기자]

“딸 매리언이 거실 TV(BBC 생방송)에 나온 아빠 모습을 보고 자연스럽게 아빠 방으로 들어간 것 같다. 평소 어깨춤을 추면서 돌아다니진 않는데 그날 어린이집에서 생일파티를 해 기분이 너무 좋았던 것 같다.(웃음)”

‘방송사고’로 스타된 켈리 교수 가족 #요가강사 출신 아내와 남매 회견 #“일 터진 뒤에 아이들 혼내지 않아” #BBC 페북 동영상 조회수 벌써 1억

영국 BBC ‘방송사고’ 동영상으로 지명도가 치솟은 로버트 켈리(45) 부산대 정치외교학과 교수와 아내 김정아(41)씨가 전한 지난 10일 방송사고 전후 상황 설명이다. BBC 페이스북에 오른 화제의 동영상은 15일 현재 조회수가 1억 회를 돌파했다.

미국인인 켈리 교수는 동영상 보도 이후 인터뷰 요청이 쇄도하자 15일 오후 부산대에서 국내외 언론들과 기자회견을 했다. 아내와 네 살 된 딸 매리언(한국명 예나), 9개월 된 아들 제임스가 자리를 같이 했다.

이날 딸 매리언은 BBC 동영상에서처럼 시종일관 개구쟁이 같은 표정이었다. 취재진이 매리언에게 한마디를 청하자 김씨는 한국말로 “말하고 싶은 거 있어요?”라고 딸에게 물었다. 잠시 머뭇거리던 매리언은 마이크에 대고 혀를 쑥 내밀며 “메롱”하고 외쳤다. 당황한 김씨가 매리언의 한국 이름을 부르며 “예나야, 스톱(stop·멈춰)”이라고 했지만, 매리언은 더 큰 목소리로 마이크에 대고 “으악”하고 소리쳤다.

결국 김씨가 매리언 입에 사탕을 물리자 조용해졌다. BBC 방송 당시 매리언의 돌발 행동 때문에 아빠가 세계적으로 유명인사가 된 사실을 매리언이 인식하고 있느냐고 묻자 김씨는 “딸에게 그 이야기를 해주자 ‘와우’라고 반응했지만 정확한 상황은 모르는 것 같다”고 전했다.

아들 제임스도 기자회견 내내 가만히 있지 않았다. 김씨는 제임스에게 과자를 주며 얌전하게 있도록 달랬지만 기자회견이 시작된 지 30분이 지나자 몸을 비틀며 연신 옹알이를 했다. 결국 김씨와 ‘개구쟁이 남매’는 더 이상의 돌발사고를 피하기 위해 기자회견장을 서둘러 나가야 했다.

혼자 남은 켈리 교수는 가족 이야기를 그만하고 일과 관련된 내용을 질문해 달라고 부탁했다. 취재진이 스타가 된 심경을 물었다. 그는 이에 대해 “이번 일이 아니라 내가 한 일(연구)로 유명해지는 것을 더 원하지만 그 동영상 덕분에 여기서 기자회견을 가질 수 있었다”며 미소를 지었다.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결정날인 지난 10일 켈리 교수는 오전 9시30분부터 탄핵(파면)이 외교 관계에 미치는 영향을 여러 외신과 인터뷰했다. BBC와의 생방송 화상 인터뷰는 이날 오후 8시쯤 진행됐다.

켈리 교수는 평소 인터뷰 때 방문을 잠갔지만 그날은 문 잠그는 것을 깜빡했다고 한다. 딸이 방에 들어온 걸 안 켈리 교수는 당황했고 딸을 내보내기 위해 손으로 밀었지만 곧이어 아들이 보행기를 타고 들어오는 것을 보고 좌절했다고 한다.

거실에서 TV를 보던 아내가 화면에 아이들이 등장하자 슬라이딩 하듯 방으로 들어와 아이들을 데리고 나갔지만 이미 엎질러진 물이었다고 한다. 켈리 교수는 “당시 상황이 절망적이었지만 화상 인터뷰 이후 아내와 싸우지 않았다. 아이들을 혼내지도 않았다”고 말했다. 그는 “생방송 당시 바지를 입고 있지 않았느냐는 질문을 여러차례 받았는데 청바지를 입고 있었다고 분명히 말해둔다”며 익살스럽게 해명했다.

켈리 교수는 다만 “동영상을 본 주위 사람들이 아이들을 보고 비웃지 않을까 걱정된다”고 말했다. 아내 김씨는 일부 외신에서 동양인이라는 이유로 자신을 ‘보모’로 표현한 데 대해 “크게 개의치 않았다”면서도 “이번 일을 계기로 사람들의 인식이 바뀌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켈리 교수는 2008년 가을 당시 요가 강사였던 김씨를 서울 코엑스에서 만났고, 이후 서울과 부산을 오가며 사귀다 2010년 결혼했다고 소개했다. 현재 아내는 육아에 전념하고 있다고 한다.

켈리 교수는 2005년 오하이오주립대에서 정치학 박사학위를 받고 2008년 9월 부산대에 부임해 미국정치론과 미국외교정책론 등을 강의하고 있다.

부산=이은지 기자 lee.eunji2@joongang.co.kr

사진=송봉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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