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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 세월호 7시간 때 불성실” 헌재 기록으로 남겼다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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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0면

김이수 재판관(左), 이진성 재판관(右)

김이수 재판관(左), 이진성 재판관(右)

“국가 최고지도자가 국가위기 상황에서 직무를 불성실하게 수행해도 무방하다는 그릇된 인식이 우리의 유산으로 남아선 안 된다.”

김이수·이진성 재판관 보충의견 #탄핵 사유로는 인정 안 했지만 #“수많은 국민 안전 위험한 상황에서 #출근 안하고 관저서 원론적 지시만 #대통령 불성실로 국민 생명 상실 #불행 반복 안 되게 지적하는 것”

김이수·이진성 헌법재판관은 10일 박근혜 전 대통령의 세월호 7시간을 파면 사유로 인정하진 않았지만 “헌법 및 국가공무원법에 따라 대통령에게 부여된 성실한 직책수행 의무를 위반했다”는 기록을 따로 남겼다.

보충의견을 통해 "박 전 대통령은 국민의 생명과 안전에 급박한 위험이 초래되어 국가위기 상황이 발생했음에도 대응이 지나치게 불성실했다. 또 그 심각성을 아주 뒤늦게 안 뒤에도 무성의한 태도로 일관했다”고 명시하면서다.

두 재판관은 구체적으로 "박 전 대통령은 늦어도 오전 10시쯤에는 세월호 사건의 심각성을 인지했거나, 조금만 노력을 기울였다면 인지할 수 있었을 것”이라며 "사고의 심각성 인식 시점부터 약 7시간이 경과할 때까지 별다른 이유 없이 집무실에 출근하지 않고 관저에 있으면서 전화로 원론적인 지시만 내렸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박 전 대통령의 지시 내용을 봐도 현장에 구체적으로 어떤 문제가 있는지에 관한 인식이 없고, 어느 해법을 강구할지에 관해 어떤 고민도 담겨 있지 않다”고 덧붙였다.

이어 "박 전 대통령이 관계기관의 잘못된 보고와 언론사의 오보 때문에 오후 3시에야 상황의 심각성을 인지했다고 하는 건 상황의 위험성을 경고하는 보고에 대해선 전혀 주의를 기울이지 않고 낙관적 보고에만 관심을 가져 상황이 종료된 것으로 판단한 셈이 되는데 그 자체로 위기 상황에서 불성실함을 드러내는 징표”라고 말했다.

대통령 탄핵심판 결정 뒤 권성동 탄핵소추위원장(왼쪽)과 대통령 측 이중환(오른쪽)·이동흡 변호사가 악수하고 있다. 앞쪽은 서석구 변호사. [사진공동취재단]

대통령 탄핵심판 결정 뒤 권성동 탄핵소추위원장(왼쪽)과 대통령 측 이중환(오른쪽)·이동흡 변호사가 악수하고 있다. 앞쪽은 서석구 변호사. [사진공동취재단]

또 박 대통령이 당일 집무실에 출근하지 않고 관저에 머문 점을 재차 꼬집으며 "국가위기 상황에서 최고행정 책임자인 대통령은 청와대 상황실에 위치해야 했다”며 "당시 국민 모두가 대통령이 최소한의 지도력이라도 발휘해 국민 보호에 앞장서 주기를 간절하게 바라고 있었다”고 지적했다.

두 재판관은 국정 최고책임자가 재난 상황 해결을 최우선 과제로 여기고 있다는 점을 보여주는 것 자체가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런 모습을 보여줌으로써 구조 작업자에게 강한 동기부여를 하고 피해자나 그 가족들에게 구조에 대한 희망을 갖게 하며 결과가 좋지 않더라도 최소한의 위로를 받고 재난을 딛고 일어설 힘을 갖게 한다”고도 했다.

또 "국정 책임자의 지도력을 가장 필요로 하는 순간은 일상적인 상황이 아니다. 국가위기가 발생해 예측할 수 없는 방향으로 흘러가고, 이를 통제·관리해야 할 국가 구조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을 때가 그 순간”이라며 "세월호 참사가 있었던 2014년 4월 16일이 바로 이러한 경우에 해당된다”고 말했다.

두 사람은 박 전 대통령의 ‘세월호 성실성’ 위반을 기록으로 남긴 배경도 설명했다. 이들은 "대통령의 불성실 때문에 수많은 국민의 생명이 상실되고 안전이 위협받아 국민의 가슴이 무너져 내리는 불행한 일이 반복돼서는 안 되므로 피청구인(대통령)의 성실한 직책수행 의무 위반을 지적하는 것”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진정한 국가 지도자는 국가위기 순간에 신속하게 상황을 파악하고 대처함으로써 피해를 최소화하고, 피해자 및 그 가족들과 아픔을 함께하며, 국민에게 어둠이 걷힐 수 있다는 희망을 줘야 한다”고 강조했다.

◆세월호 유가족 "3년 가까이 싸웠는데…”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농성 중이던 세월호 유가족들은 대통령 파면 소식에 서로 껴안으며 "수고했다”고 인사를 나눴다. 아쉬움을 나타내는 이들도 있었다. 희생자 임경빈군 어머니 전인숙씨는 "참사 이후 3년 가까이 힘들게 싸워왔는데 탄핵소추 사유에 세월호 의혹은 결국 안 들어갔다”며 울먹였다. 희생자 김유민양의 아버지 김영오씨는 "대통령이 그 시간에 관저가 아닌 중앙대책본부에 있었어도 아이들이 죽었을까 싶다”고 말끝을 흐렸다.

현일훈·윤재영 기자 hyun.ilhoo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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