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 빌려주면 출근 안해도 10만원', 교장 '관리수당' 관행에 교육청 제동 나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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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4면

서울 강남의 한 중학교에서 공휴일에 대기업 입사 시험이 치러졌다.

서울 강남의 한 중학교에서 공휴일에 대기업 입사 시험이 치러졌다.

지난해 서울 강남구의 A중학교는 토익ㆍHSKㆍJLPT 등 외국어시험이나 자격증 시험, 기업 입사시험 장소로 학교를 52차례 대여해줬다. 이 학교 교장은 외부 시험이 치러지는 날 한번도 학교에 나오지 않았지만 '관리 수당' 명목으로 학교를 한차례 빌려줄 때마다 개인 계좌로 10만원씩 받았다. 학교를 빌려준 대가로 한해 520만원의 과욋돈이 생긴 셈이다. 이 학교 교사들은 "출근조차 하지 않은 교장이 수령한 관리수당은 사실상 정당한 노동의 대가가 아니라 학교 시설 사용을 허가해준 대가로 받은 일종의 사례금”이라며 "서울시교육청은 교사가 1만원만 받아도 징계를 하는 등 강력한 청렴정책을 시행하고 있는데, 이런 불로소득을 묵인하는 건 이해하기 어렵다"며 불만을 토로했다.
서울시교육청은 휴일에 치러지는 각종 외부 시험의 장소로 학교를 빌려주고 교장과 교감이 ‘관리수당’을 받는 관행에 대해 위법성이 있을 수 있다고 판단하고 제동 걸기에 나섰다. 교육청 감사실에서는 올초부터 일부 초·중·고교를 대상으로 탐문조사를 벌인 결과, 강남구나 영등포구 등 교통이 편리한 지역에 위치한 학교는 각종 시험 장소로 학교를 빌려주는 일이 연간 50~100회가 넘었다. 영등포구의 B중학교의 경우 지난해 외부 시험 장소로 150회나 사용돼, 이 학교 교장은 관리수당만 1500만원을 수령했다.
학교를 빌린 외부시험을 주관 업체가 시험 장소를 제공한 학교에 제공하는 비용은 시설 이용료와 감독 수당, 관리 수당으로 나뉜다. 시설 이용료는 교실과 방송 장비 등을 사용한 금액이고, 감독 수당은 교실과 복도 등에서 시험 감독 업무를 수행한 교사에게 지급한다. 감독 교사 1인당 9만원을 받는 게 일반적이다.
교육청 감사실 관계자는 “관리 수당의 지급 기준은 애매한 편”이라며 “통상적으로 교장 10만원, 교감 8만~9만원, 행정실장 8만원, 교무부장 8만원씩 개인 계좌로 받고 있다”고 말했다. 일부 교사들 사이에서 “관리 수당을 수령하는 교장·교감·교무부장 등이 외부 시험이 있는 날 학교에 나오는 것을 한번도 본 일이 없다”며 “출근도 하지 않고 연간 500만~1000만원 가량의 돈을 받는 건 명백한 불로소득”이라는 비판이 제기돼 왔다.
A중학교 교사는 “지난해 9월 김영란법 시행되면서 평교사들은 스승의 날 제자가 건네는 카네이션 한 송이조차 거부할 정도다. 이런 상황에서 교장·교감이 관행적으로 불로소득을 챙기는 것은 이해할 수 없는 일”이라 말했다.

지난해 강남구의 한 중학교에서 치러진 외부시험 일정표.

지난해 강남구의 한 중학교에서 치러진 외부시험 일정표.

국민권익위는 “학교 시설 관리 인력(교장과 교감 등)과 대여받는 자(외부 시험 주관사) 사이에는 ‘직무관련성’이 인정돼 원칙적으로 금품 수수가 금지된다”는 유권해석을 내놓으며, ‘외부 시험으로 인해 발생한 추가 업무를 수행하는 등 정당한 사유가 인정된다면 지급받을 수도 있다’는 단서 조항을 달았다.
이에 대해 교사들은 “출근조차 하지 않는 교장과 교감이 관리 수당을 받을 ‘정당한 사유’가 있을 리 없다”며 “관리수당은 학교 시설 사용을 허가해준 대가로 받은 일종의 사례금”이라는 주장도 했다.
교육청은 교장과 교감 등이 수령해온 관리 수당을 없애자는 ‘교육감 지침’을 준비 중이다. 감사실의 한 관계자는 “학교 시설물 관리 총 책임자인 행정실장은 관리 수당을 받는 게 정당하다. 하지만 교장과 교감이 관리 수당을 받을 명분이 없다”며 “교장·교감·교무부장 등이 받아온 관리수당은 일체 금지하자는 의견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시험 관리 위해 실제 출근한다면 관리 수당을 허용해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 내부 논의를 거쳐 교육감이 다음주 중에 최종 결정할 예정이다.
이런 논의에 대해 일부 교장들은 “이해할 수 없다”며 불만을 토로했다. 강남의 C고교 교장은 “학교에 사고가 나면 최종적으로 책임을 지는 건 교장·교감이다. 외부인이 대거 학교에 들어와 시험을 치르는 날이면 당연히 출근해서 사소한 것까지 챙겨왔다. 일부 교장이 출근하지 않고 관리 수당을 받았다고 해서, 실제 업무를 하는 교장들의 수당까지 전면 금지하는 건 과도하다”고 말했다.
박형수 기자 hspark97@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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