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양승태, 이정미 후임 내주 지명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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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승태 대법원장(왼쪽)과 헌법재판소장 권한대행을 맡고 있는 이정미 재판관. 양 대법원장은 다음달 13일 퇴임하는 이 재판관의 후임자 지명 때문에 고심해왔다. [중앙포토]

양승태 대법원장(왼쪽)과 헌법재판소장 권한대행을 맡고 있는 이정미 재판관. 양 대법원장은 다음달 13일 퇴임하는 이 재판관의 후임자 지명 때문에 고심해왔다. [중앙포토]

양승태(69) 대법원장이 곧 이정미(55) 헌법재판관 후임자를 지명한다. 대법원 관계자는 23일 “헌법재판소의 대통령 탄핵심판 최종변론일 뒤에 대법원장이 헌법재판관 후보자를 지명할 계획이다. 다음주 안에 발표될 가능성이 크다”고 밝혔다. 탄핵심판 최종변론일은 27일이다. 따라서 새 재판관 지명은 이르면 28일에 이뤄질 수 있다.

탄핵심판 지연 메시지 우려 #대법원장 몫 인선 미루다가 #27일 최종변론 다음날 유력 #이정미 퇴임 후 7인 체제 땐 #헌재 정상 가동 어렵다 판단

헌재소장 권한대행을 맡고 있는 이 재판관의 임기(6년)는 다음달 13일까지다. 지난달 31일에 박한철(64) 소장이 퇴임해 헌재는 ‘8인 체제’(1석 공석)로 운영되고 있다. 이 재판관이 퇴임하면 ‘7인 체제’가 된다.

헌법에 헌재는 재판관 9명으로 구성되도록 규정돼 있다. 헌법소원·탄핵심판 등 헌재가 다루는 사건은 재판관 6명 이상이 찬성하지 않으면 기각된다. 이에 따라 7인 체제에서는 재판관 두 명만 다른 의견을 내면 인용 결정이 내려지지 않는다. 신평 경북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헌재는 탄핵 사건 말고도 나라의 근본을 정하고 국가 장래를 결정하는 중요 사건들을 수없이 많이 다룬다. 이 상태를 방치하고 7인 재판관 체제로 두는 것은 큰 문제다”고 지적했다.

이처럼 학계 등에서는 황교안 대통령 권한대행이 지명과 임명을 모두 해야 하는 박 소장 후임자 인선은 미뤄두더라도 양 대법원장에게 지명권이 있는 이 재판관 후임자 임명 작업은 조속히 진행돼야 한다는 주장을 제기해 왔다. 헌재 재판관은 대통령·대법원장·국회에 3명씩의 지명권이 있는데 박 전 소장은 대통령이, 이 재판관은 대법원장이 지명했기 때문에 후임자 인선 과정이 다르다.

허영 경희대 법학전문대학원 석좌교수는 “법치국가는 그 규정대로 가는 것이 정답이다. 정치적 상황에 따라 하는 것이 아니라 헌법 규정대로 하는 것이 법치국가의 정도다”고 말했다. 김현 대한변호사협회 회장도 “대법원장은 좌고우면하지 말고 용기 있는 일을 해야 한다. 그것이 헌법과 법률을 수호하는 일이다”고 주장했다.

이 같은 원칙론이 제기됐음에도 불구하고 대법원은 그동안 이 재판관 후임자 지명 작업을 미뤄왔다. 고영한 법원행정처장은 지난 17일 국회에서 “대법원장 몫의 헌법재판관 후임 지명은 대통령의 관여 없이, 행정부의 관여 없이 바로 대법원에서 국회로 청문 절차를 요구하면 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도 “탄핵심판 등 여러 가지 상황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다”며 지연 상황에 대해 설명했다. 대법원 관계자는 “이 재판관 후임 지명을 원칙대로 강행하면 탄핵심판을 늦추려 한다는 비판이 곳곳에서 제기될 것이 분명한 상황이었다. 대법원이 정치적 논쟁에 휘말리는 것은 법치적 관점에서 바람직하지 않은 것으로 판단했다”고 말했다.

대통령 탄핵심판 과정에서 국회 소추위원단은 줄곧 “이 재판관이 퇴임하면 헌재가 7인 체제가 되기 때문에 그 전에 선고를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장영수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대법원이 새 재판관을 지명했을 경우 헌재에 그의 임기 뒤로 탄핵심판 선고를 미뤄도 된다는 메시지로 해석될 여지가 있었던 것도 사실이다”고 말했다.

이런 상황에서 대법원은 헌재의 대통령 탄핵심판 최종변론일 지정을 계기로 타협점을 찾았다. 대법원 관계자는 “대법원장이 헌재가 7인 체제로 운영되는 시간을 최소화하면서도 탄핵심판에 영향을 미치려 했다는 비판을 받지 않는 최선의 시기를 선택한 것이다”고 말했다.

헌재는 27일을 최종변론일로 못 박으면서 박 대통령 출석 여부를 26일까지 알려달라고 대리인단에 요청했다. 따라서 대통령 측에서 추가 변론일 지정이나 추가 증인 채택을 주장해도 받아들여질 가능성은 매우 작다. 2004년 노무현 전 대통령에 대한 탄핵심판 때 최종변론일로부터 2주 후에 선고가 내려진 점 때문에 헌재 안팎에서는 이 재판관 퇴임일인 13일까지는 결과가 나올 것이라는 예측이 나오고 있다.

헌법재판관 임명은 국회 인사청문회를 거쳐야 하지만 국회 동의가 필요하지는 않다. 그 뒤 대통령(탄핵 등에 의한 대통령 유고 사태일 경우에는 대통령 권한대행)이 임명하면 취임한다. 청문회 절차가 순조롭게 진행된다고 해도 이 과정에 약 한 달이 소요되기 때문에 이 재판관 퇴임 뒤 한동안 헌재는 7인 체제로 운영될 가능성이 크다.

윤호진·송승환 기자 yoongoo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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