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년중앙] 봄비 오는 날 시에 눈뜨고 싶다면

온라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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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 난 소년중앙 3기 학생기자 박율미(16·홈스쿨링)라고 해. 한 작가를 지정해서 그 작가가 쓴 유명한 작품뿐 아니라 작가에게 숨겨진 이야기도 알아보고 있어. 연재의 마지막으로 칠레의 시인이자 작가인 파블로 네루다(Pablo Neruda)를 소개할게. 노벨문학상을 받은 시인으로 유명하지.

박율미 학생기자의 작가 토크 <끝> 파블로 네루다

어린 시절 파블로 네루다의 이름은 네프탈리 리카르도 레예스 바소알토였어. 무척 길지. 그는 태어난 지 두 달 만에 어머니를 여의고 아버지와 새어머니 밑에서 자랐어. 아버지인 호세 레예스는 자갈 기관사였는데 지금 듣기엔 생소한 직업이지? 당시 기차선로에는 나무토막 사이 자갈이 깔렸는데 이를 제때 채우지 않으면 선로가 기차의 무게를 버티지 못하고 망가져버렸어. 네루다의 아버지는 그 자갈을 운반하고 채우는 일을 했지. 대단히 힘들어서 그 일을 하는 사람을 철인이라고 불렀대. 호세는 하는 일만큼 성격도 매우 거칠었어. ‘아버지가 들어올 땐 문이 흔들리고 집 전체가 진동했으며 계단은 삐걱거렸고, 험한 목소리는 악취를 풍겼다’고 책에 쓸 정도로. 하루는 아버지가 일터에 네루다를 데려갔어. 아버지와 동료들이 땀을 뻘뻘 흘리며 자갈을 옮기는 동안, 네루다는 철로가 지나가는 숲을 돌아다니며 솔방울·애벌레·새알 등을 주우며 놀았어. 아버지는 놀고 있는 네루다를 보고 심하게 화를 냈어. 네루다가 치과의사가 되길 원했거든. 자식들이 자신보다 더 나은 삶을 살았으면 좋겠다는 부모의 마음은 동서고금 차이가 없나 봐.

『모두의 노래』 파블로 네루다 글 고혜선 옮김 732쪽, 문학과지성사 2만2000원

『모두의 노래』 파블로 네루다 글 고혜선 옮김 732쪽, 문학과지성사 2만2000원

1915년 6월 3일, 네루다는 처음으로 시를 썼어. 부모님께 보여드리자 아버지는 네루다의 시를 건성으로 훑어보고 “어디서 베꼈니?”라고 말했어. 네루다는 그 일을 이렇게 기록했어. “그때 처음으로 문학비평의 쓴맛을 보았다.” 세월이 흘러도 날짜까지 생생하게 기억할 정도로 큰 충격을 준 사건이었대.

네루다는 감수성이 풍부한 소년이었어. 다친 고니를 발견하고 아버지 몰래 빵 조각과 생선 조각을 주며 돌봤대. 다행히 상처가 나은 고니는 네루다 곁을 떠나지 않았어. 그러던 어느 날 그만 죽고 말았지. 고니의 죽음은 네루다에게 큰 상처였어. 나도 초등학교 4학년 때 집에서 검은색 토끼를 키웠는데 네로(검은색이란 뜻의 이태리어야)라는 이름까지 붙여주고 얼마나 예뻐했는지 몰라. 네로는 얼마 지나지 않아 알 수 없는 이유로 내 곁을 떠났어. 그때 얼마나 슬피 울었는지…. 그래서 고니를 잃은 네루다의 심정을 더 잘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아. 어쩌면 그의 시에서 뿜어져 나오는 따뜻한 사랑과 애틋한 슬픔은 어린 시절 키웠던 고니에게 느꼈던 감정이 남아 있는 걸지도 몰라.

네루다의 삶에 큰 영향력을 끼친 사람이 있어. 바로 가브리엘라 미스트랄이라는 시인으로 1945년 노벨문학상 수상자야. 네루다는 그녀가 추천해주는 책들을 읽으며 감성의 폭을 넓혀갔어. 그 무렵 체코의 작가 얀 네루다의 성과, 바울에서 영감을 얻은 파블로라는 이름을 더해 파블로 네루다라는 필명을 짓고 시를 쓰기 시작했어. 파블로 네루다는 학교에서 학생 시인으로 인기를 얻었어. 하지만 네루다의 아버지는 네루다의 시를 너무나 싫어해서 그의 노트를 창 밖으로 던지고, 불태워버리기도 했어. 참다 못한 그는 가출을 했어. 그리고 가부장적인 아버지의 기억에서 벗어나기 위해 실제 이름도 파블로 네루다로 바꿨지.

1971년도 노벨문학상 수상자로 선정된 파블로 네루다가 소감을 말하고 있다. [중앙포토]

1971년도 노벨문학상 수상자로 선정된 파블로 네루다가 소감을 말하고 있다. [중앙포토]

이후 공산당에 입당한 네루다는 의회 연설을 통해 공산당과의 협약을 파기한 당시 가브리엘 곤살레스 비델라 칠레 대통령을 신랄하게 비판했어. 그의 연설은 『나는 고발한다』라는 제목의 책으로 출간됐어. 그 탓에 네루다의 삶은 평탄하지 않았지. 대법원에서는 네루다를 국가원수 모욕죄로 체포영장을 내렸고 그는 전 세계로 도망 다녀야 했어.

고국으로 돌아온 네루다는 여러 번 대통령 후보에 올랐지만 대통령이 되진 못했어. 하지만 뛰어난 작품성을 인정받아 1971년 노벨문학상을 수상했지. 네루다는 자서전에 이렇게 썼어. “유년 시절 얘기를 하자면 잊을 수 없는 것이 딱 하나 있다. 바로 비다. 남반구에서는 비가 정말 어마어마하게 쏟아진다. 마치 케이프혼이라는 하늘에서 개척지라는 땅을 향해 쏟아지는 폭포수 같다. 나는 이 땅에서, 칠레의 ‘서부’와 같은 개척지에서 삶에 눈을 뜨고, 대지에 눈을 뜨고, 시에 눈을 뜨고, 비에 눈을 떴다.”

네루다(왼쪽)와 국제펜클럽회의 의장 아서 밀러가 1966년 만난 모습. [중앙포토]

네루다(왼쪽)와 국제펜클럽회의 의장 아서 밀러가 1966년 만난 모습. [중앙포토]

파블로 네루다는 그의 정치적인 선택 때문에 지금까지도 논란이 되고 있어. 모든 것을 얼릴 듯이 추운 겨울이지만 동토를 녹이는 봄비가 온다면 네루다를 기억해줬으면 해. 거칠고 험한 아버지 아래 불우한 어린 시절을 보내고, 정치적 신념으로 인해 힘든 떠돌이 생활을 마다하지 않았던 네루다처럼 시에 눈을 뜨고, 비에 눈을 뜨게 될 거야. ‘가느다란 부리의 잉꼬’라는 네루다의 시는 내 마음에 잔잔한 울림을 줬지. 마지막으로 소년중앙 친구들이 그동안 내 부족한 글을 읽고 작가별로 책을 찾아보는 재미를 느꼈다면 난 정말 행복할 것 같아.

가느다란 부리의 잉꼬
- 파블로 네루다

그 나무에는 잎이 너무 많았다
보물들로 넘어질 듯했고
수많은 초록빛 속에서 눈을 꿈벅이며
한시도 눈을 붙이지 못했다.

그렇게는 잠들 수가 없었다.

그러나 팔락이는 잎이
푸르고 싱싱한 채로 날아가 버리고
싹들도 나는 법을 배워
헐벗고 홀로 남게 된 나무
겨울비 속에서 흐느끼며 운다.

박율미 학생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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